[좋은수필]거실 정원 / 김외남

거실 정원 / 김외남

 

 

 

동장군이 기세를 떨치는 전날, 휴일을 이용하여 마당의 분들을 말끔히 씻어 거실로 옮겼다. 상추는 비닐로 온상을 만들고 일부는 작은 온실로 들였다. 가시 숭숭한 유자나무는 지하실로 보내고 내 키보다 훌쩍 커버린 벤자민은 가운데 두었다. 꼭꼭 찔러서 성가시고 덩치가 커 자리를 많이 차지하는 소철은 구석으로 밀친다. 잎이 예쁘고 부드러워 내 맘에 드는 작은 것들은 앞으로 햇살 잘 드는 창 쪽으로 촘촘히 놓는다. 서로 비좁게 부딪히며 창턱 위에 열댓 개의 난분을 놓았다.

오는 봄에는 서너 개의 꽃대를 피워야 된다고 분마다 암시를 준다. 운동기구는 한쪽으로 밀고

손자들이 올라앉아 빙글빙글 돌리기 놀이하는 의자도 벽 쪽으로 밀쳤다. 그리고 생화도 한줌씩 물 담은 병에 꽂아 요소요소에다 둔다.

진짜 손끝이 시려서 떨어져나갈 것 같다. 핸들 잡은 두 검지는 감각도 둔하다. 으으 으으 곱은 손으로 목도리를 풀며 장갑을 벗는데 먼저 와서 벼르고 있는 남편의 우악스런 질책에 움찔한다.

“당신 진짜 이렇게 추운데 자전거 끌고 다닐 건가. 자전거를 확 부숴버릴까 부다. 따뜻한 봄날에나 타고 다니란 말이다.”

“낮에는 따뜻해서 서너 군데 들리는 볼일 때문에 편해서, 진짜 추운 날은 안 탄다고.” 맞받아치며 시리던 손은 괜찮은 듯 태연히 변명을 늘어놓는다.

벤자민의 싱싱한 가지 밑을 스치고 지나면 새로운 힘을 얻는다. 아니 말을 걸어온다. 추위를 많이 타는데 덕분에 좋은 환경에서 춥지 않게 잘 지낸다고. 에쁜 리본을 두어개 단다. 들며 나며 분마다 눈인사를 나눈다.

산세베리아가 꽃대를 두 대궁 올려놓고 자랑스럽게 나를 본다. '활짝 피면 향기 끝내주겠지.' 호야도 긴 줄기 다치지 않게 뻗어 키 큰 나무에 이리저리 걸친다. '쟈스민 너희도 이른 봄에 보라색 꽃 많이 피워야지.

'그 향기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황홀하다. 군자란은 꽃대에 빨간 열매를 달고 있다. 저 열매가 싹이 터나 한번 심어 볼까. 거름기 짙고 잎들이 무성하니 이른 봄 꽃 피면 화려하다만 향기가 없으니 뒤 쪽으로 가 있어라. 엽란, 너는 잎이 넓어 공기정화작용에 탁월하다지. 잎사귀의 타원곡선이 덕이 있어 보인다.

꽃이 안 핀다고 알지만 이른 봄 줄기 하단에 딱 붙어서 자줏빛 꽃이 조그맣게 핀다. 자기 깜냥대로 큰 나무는 큰대로 작은 것은 작은 대로 타고난 생김새대로 다투지 않고 정해준 자리에서 해바라기하는 모습이 평화롭다. 이 엄동에 눈 보호색이라는 초록의 잎새를 보면서 바깥에서 지친 마음 안정을 얻는다. 인간들처럼 비좁다 부딪힌다. 소리 않고 저네들의 잎을 반짝인다. 꽁꽁 춥지만 방에서 한 발짝만 떼어도 싱싱한 거실정원이 반겨주어서 올겨울도 마냥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