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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찬밥들의 수다 / 권남희

찬밥들의 수다 / 권남희


 

 

찬밥은 당연한 듯 내 몫이던 때가 있었다. 시집에서 얹혀살며 학교를 다닐 때 왜 내 도시락은 밥이 노란 건지 이유를 몰랐다.

어느 날 아침 식사자리에서 시동생이 비명을 질렀다. “엄마 왜 형수 도시락에 찬밥을 넣어요?” 낡은 보온밥통 한 구석에 잘 모아두었던 변색이 된 누런 밥을 내 도시락에 담다가 시동생 눈에 띈 것이다. 그 일이 있고도 찬밥은 변함없이 내 차지였다. 복학생 남편과 아기와 내가 눈칫밥을 먹어야하니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며느리는 찬밥 먹는 게 당연하다는 듯 대했던 시어머니도 일찍 남편의 사랑을 잃은 일을 견디지 못하고 우울증을 앓았다. ‘찬밥은 먹어도 냉대에는 못산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한숨을 쉬곤 했다. 찬밥은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인생 찬밥 되고 가족들까지 찬밥을 먹인다는 분위기가 느껴지면 그때부터 힘들어지고 만다.

언제나 금방 차린 따뜻한 밥상을 원하는 남편도 혼자 찬밥 먹어야하는 날은 시무룩하다. ‘찬밥 한 덩이로 때웠다.’며 그런 자신을 불쌍히 여긴다. 혼자 점심을 먹어야 하는 퇴직남들 모임에서 아내 없는 식탁책을 냈는데 남편에게 그 모임을 추천하고 싶어진다.

은퇴자의 신세계는 찬밥덩어리를 잘 관리하면서 열린다. 그것은 천지창조처럼 혼란의 뭉치로 있다가 첫째 날이라고 봐주지 않은 채, 느닷없는 것처럼 찬밥의 세계가 활짝 열린다.

첫째 날은 뭐 그럴 수도 있지하는 마음으로 너그럽게 넘어간다. 워밍업으로 볶아먹는 게 좋지하며 얼마든지 볶음밥 만들 준비를 한다. 냉장고 어딘가 굴러다니는 남은 야채를 쫑쫑 썰어 소금 후추 뿌린 버터와 볶고 찬밥도 따로 버터와 볶은 뒤 섞어 간을 살짝 맞추면 일품이다. 따뜻함도 더하니 분노조절 장애도 겪지 않는다.

내친 김에 둘째 날 찬밥이면 어때 인생의 누룽지가 되면 더욱 구수하지스스로 위로하면서 프라이팬을 잘 달구어 누룽지 만들기에 도전하는 일도 좋을 것 같다. 찬밥은 누룽지를 만들어서 먹으면 최고다. 부수적인 재료도 들어가지 않고 오로지 불의 사랑을 받으며 은근하게 구우면 스스로 맛을 내준다. 찬밥끼리 어울리면 알알이 흩어질 뿐이니 뜨거운 기운을 받아야 한다. 뜨끈한 기운은 찬밥도 감동시켜 프라이팬에서 스스로 제 몸을 구워가며 뒤집고 엎어진다. 덜 구워졌을 때 건드리거나 뒤집으면 알알이 흩어진다. 찬밥일 때는 자꾸 건드리지 말 것이다. 온기 위에서 시간을 두고 누르스름하게 구워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뒤집어주어야 한다. 기다림은 늘 미덕의 얼굴로 끈끈이를 만들어 서로를 연결하고 구수한 맛을 내준다. 누룽지는 찬밥의 놀라운 반전이다.

알밥 만들기는 셋째 날 안성맞춤이다. 그때까지도 은퇴가 실감이 나지 않기에 알밥은 때맞추어 분위기를 살려준다. 일식집에서 회식할 때 마무리처럼 꼭 나오는 알밥은 맛있었다.

집사람은 외출에서 돌아오지 않고 찬밥 한 그릇만 식탁에 덩그러니 있다면 과감하게 그 밥을 일인용 돌솥이나 뚝배기에 앉힌다. 뜸 들이는 화력으로 시간을 벌면서 그 위에 김치 다져 올리고 김도 부숴 넣는다. 냉장고에 날치알이라도 있다면 살짝 올려 마지막으로 참기름 한방울 똑! 떨어뜨려 자작자작 소리가 날 때 비벼서 먹는다.

인간은 삼세번으로 완결 짓고 정리하고자 하는 버릇이 있다. 넷째 날은 웬지 시들해진다.

그때는 초 간단 김밥 만들기도 매력적이다. 끈끈한 기운이 남아 있는 식은 밥을 한주먹 뭉쳐서 날김으로 감싸면 충무할매 김밥으로 제격이다. 전날 먹고 남은 된장국이 있다면 천생배필이고 오징어와 무초무침이 설마 준비되지는 않았겠지만 어떠랴!

찬밥 없으면 안 되는 국민 필살기 라면에 밥 말아먹기는 어떤가. 라면과 찬밥은 찰떡궁합이다.

시간이 흘러 슬슬 날이 더워지고 입맛이 없다면 찬물에 말아먹기다. 조상들이 해온 나름의 전통이지만, 사회에서 받았던 은총의 온기가 남아 인생 찬밥이 되었다는 실감 나지 않아 찬밥이 있으면 물 말아 먹던 추억을 떠올리며 너그러워진다. 어렸을 때 더운 여름이면 찬물에 보리밥 한 덩이 말아먹는 맛은 일품이었다. 간이 센 장아찌나 조기 올려서 먹는다면 더위에 지친 입맛 제대로 돌아온다.

찬밥 좀 먹는다고 품위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여름도 아닌데 입맛을 빼앗기고 우울증 환자처럼 마음이 더위를 먹어 지쳐가는 게 문제인 것이다.

인생 찬밥이여! 따뜻한 밥에 목숨 걸수록 민심은 사나워진다. 사회활동이 많아진 아내가 나가면서 차려주고 간 찬밥이 대수인가. 서구남성들에 비해 혼자 밥 먹는 일에 한국인들은 적응을 하지 못한다.

따뜻할 때 몰랐던 사실은, 찬밥이 되고나니 밥 먹는 방법도 다양하게 시야가 트여 더 즐겁다는 것 아닌가. 찬밥을 먹기 시작할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사랑할 수 있어야 진짜 인생이지 않을까.

찬밥보다 냉대가 보이면 참을 수 없는 존재감으로 화가 폭발하지만 까짓 것 찬밥이여 오라. 얼음 밥도 얼마든지 깨물어주겠다는 일념으로 150세를 누려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