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숨은 그림 찾기 / 염정임

숨은 그림 찾기 / 염정임


 

 

나에게 있어서 수필을 쓴다는 것은 일상에 숨어 있는 그림을 찾으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보고 듣는 사물들과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그리고 나의 의식이나 기억 속에 숨어서 밝혀지기를 기다리는 희미한 그림들을 찾아내려는 것이다.

가끔 잡지나 신문에 보면 숨은 그림 찾기란 난이 나온다. 산이 있고 강이 있고 집과 사람들이 있는 바탕그림에 숨겨진 조그만 그림을 찾는 게임이다.

잎이 무성한 나무 속에 물고기도 숨어 있고, 기와지붕 골 사이에는 촛불도 켜져 있다. 여인의 치마 주름살을 잘 살펴보면 조그만 새 한 마리가 날개를 접고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우리 삶의 갈피갈피에 숨어 있는 보석처럼 귀한 그림들, 나는 이들을 찾아내어 나와 함께 같은 공기를 숨 쉬고 사는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것이다.

어쩌면 이 세상은 보이지 않는 그림들로 미만해 있는 경이로운 것이 아닐까? 우리가 무심코 스쳐 지나는 일상의 사막에도 우물이 있고, 허물어져가는 빈 집 어딘가에 보물지도가 감춰져 있다는 것을 알 수만 있다면때로는 꼭꼭 숨어 보이지 않는 그림 때문에 많은 날들을 안절부절 못하며 보낼 때도 있다.

숨은 그림을 잘 찾아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바탕그림을 잘 살펴 보아냐 한다. 그러나 밑그림에 너무 집착하지 않고 조금 멀찍이 떨어져서 무심히 스쳐볼 때 선명하게 떠오르는 윤곽을 포착할 수도 있으리라. 때로는 텅 비어 있어 그림의 배경으로만 보이는 빈 여백이 커다란 숨은 그림의 일부분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내 마음이 잔잔한 물처럼 맑고 고요할 때, 깊숙이 숨어 있던 그림이 서서히 자태를 드러낸다. 내가 지나친 집착이나 욕심에 사로잡혀 있을 때, 나는 아무 그림도 찾아낼 수가 없었다. 범상하게 지나치던 돌멩이 하나가 어느 날 빛을 받아 음영을 만들면서 굴곡 있는 아름다움을 발하는 것을 볼 때가 있다. 내가 사랑의 눈으로 볼 때 숨어 있는 그림들도 그들의 비밀을 다소곳이 열어 보이는 것을 수시로 깨닫는다.

나는 내 삶이란 바탕 그림이 이왕이면 격조가 있고 색체가 아름다웠으면 한다. 수묵의 임리(淋漓)가 절묘한 한 한 폭의 동양화이어도 좋겠고 보기에도 즐거운 기호와 간결하고 선명한 선으로 이루어진 추상화여도 좋겠다.

혹시나 하늘을 나는 염소와 날개가 달린 괘종시계 또는 바이올린을 켜는 수탉이 있는 샤갈의 그림처럼 숨 막히도록 환상적인 그림이 된다면 오죽이나 좋겠는가.

숨은 그림을 찾아내어 형상화하기 위해서는 역시 고달픈 작업이 뒤따른다. 그러나 그 순간은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나만의 고독과 자유를 향유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때 시공은 무한한 우주를 향해서 열리고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연민과 근원을 알 수 없는 그리움에 떨며 나는 영감이 떠오르길 기다린다. 마치 꼬마전구에 불이 켜지듯 문득 스치는 상념을 붙들고 나는 원고지를 펼친다.

모두가 잠든 밤에 홀로 깨어 하얀 원고지를 한자 한자 메워가며 나는 백설의 능선을 묵묵히 종주하는 외로운 알피니스트를 떠올리곤 한다. 그것은 글에 대한 나의 애정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는 쓰고 지우고 또 고쳐 쓰기를 계속한다. 나는 숨은 그림을 너무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자제한다. 되도록 너울을 씌운 듯 은은한 색체로 두드러지지 않게 나타내려고 애쓴다.

나는 가능하다면 상징이 풍부하고 함축성이 있는 유연한 글을 써보고 싶다. 그래서 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내 글 속에 숨어 있는 그림들을 즐겨 찾아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어쩌면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은 독자들이 이 숨은 그림 찾기게임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그림을 미리 숨겨두려는 하나의 꿈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같이 어리석고 붓끝이 둔한 사람에게는 이러한 바람은 부질없는 짓일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찾는 것(연목구어緣木求魚)만큼이나 힘든 일이리라. 그러나 하나님은 이 세상 어딘가, 높다란 나뭇가지 속 반짝이는 잎들 사이에 싱싱한 물고기 한 마리를 숨겨두었으리라 믿으며, 나는 오늘도 설레는 마음으로 수필-숨은 그림 찾기-에 매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