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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치명적인 오류 / 한경선

치명적인 오류 / 한경선


 

 

그는 짐짓 차가운 문자 메시지 하나를 툭 띄웠다. 힘이 없는 듯했지만 다분히 위협을 가하는 말투로 짧고 단호하게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했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화면 여기저기를 뒤적이며 무방비 상태에 있는 내게 웬 뜬금없는 소리란 말인가. 거두절미하고 그리 말하면 대체 어쩌라는 것인지 그는 움직이지 않는 화면을 들이대고 침묵시위를 했다.

처음부터 우리가 저를 혹사시킨 것은 아니다. 멀리 사는 친구와 우체국에 가지 않고도 편지를 나눌 수 있다는 정보를 듣고 이메일이라는 것을 조심조심 신기해하며 나눌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컴퓨터는 빠르게 보급되었고 우리가 그 편리함을 알아갈수록 그는 쉴 틈이 없어졌다. 아들 녀석이 그 앞에 딱 붙어 앉아 게임을 할 때도 애꿎은 컴퓨터에 눈을 흘기곤 했다.

식구가 돌아가면서 강의를 듣고, 자료 검색을 해서 과제를 해결하고, 때때로 노래를 듣거나 여러 가지 영상을 찾아서 본다. 가끔 감기몸살을 앓는 것처럼 잔고장은 있었지만 그동안 깊은 속병이 생겼다거나 우울하다는 내색도 않다가 갑자기 앵돌아져서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했다니. 그야말로 치명이란 목숨이 끊어질 지경에 이름을 일컫는데 치명적이라는 말을 그리 함부로 써도 되느냐 말이다.

속으로 투덜거리긴 했어도 이러다가 자료 복구가 불가능하고, 목돈 들여 새것을 장만해야 하는 것 아닌가 불안했다. 당장 대책이 없으니 강제 종료를 해서 그 입을 닫아버렸다.

컴퓨터가 생활에 차지하는 자리가 꽤 크다. 컴퓨터를 마음껏 쓰지 못하면 안절부절못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컴퓨터에 인간인 내가 끌려가서는 안 된다고, 컴퓨터 없어도 아무 문제없다고 마음을 다스려 보지만 그건 불안을 감추려는 수단에 불과하다.

서비스를 시작하는 가장 빠른 시간에 고장 신고 접수를 하고 기다렸다. 수리 기사가 몇 번 작동을 해보고 본체를 열더니 가지고 가서 고쳐와야겠다고 했다. 마치 입원이라도 시키는 것 같았다. 그 치명적인 오류라는 것이 마치 암 선고라도 받게 될 것 같고, 치료비는 얼마가 들지, 치료 기간은 얼마일지 또 걱정이 되었다. 보내고 난 빈자리가 허전했다.

컴퓨터는 이틀 만에 부품을 갈고 업데이트를 해서 되돌아왔다. 다소 많은 수리비를 냈고, 문서 몇 개가 날아갔지만 치명적인 피해는 입지 않았다. 컴퓨터는 치명적인 오류소동에 대해 시치미를 딱 떼고 늘 있던 자리에 앉아 다시 과중한 업무를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니 살면서 생기는 오류쯤 유쾌하게 털어내고 싱그럽게 살고픈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