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토출 / 주인석

토출 / 주인석

 

 

 

나는 선짓국을 먹지 않는다. 먹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선짓국 비슷하게 생긴 음식만 봐도 식욕이 뚝 떨어진다. 특히 시커먼 덩어리가 보이는 음식은 아예 숟가락도 대지 않고 국그릇을 밀쳐놓는다. 그러다보니 국을 끓일 때도 단출한 재료로 맛을 내는 것을 좋아한다. 색깔도 선명하고 깨끗한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선짓국은 그 색깔부터가 싫다. 또 그것이 소의 피라는 것은 더욱 싫다. 선짓국은 옛날 우리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영양가 많은 음식임에도 내가 이토록 싫어하는 것은 엄마의 지나친 사랑 때문이다. 무엇이든 지나칠 때 문제가 생기는 법이다.

유난히 병치레가 많았던 나는 어릴 때부터 빈혈이 심해 늘 어지러웠다. 앉았다 일어서면 세상이 새까맣게 보일 때가 많았다. 시골에 영양가 높은 음식이 흔하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지만 너무 약한 엄마 몸을 받은 까닭이 더 컸다. 육류라고는 계란도 못 드시는 엄마가 열 달 동안 나를 품고 있었으니 내 몸은 풀처럼 약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고령출산이었으니 더 했다.

내가 일곱 살 쯤 되었을 때다. 엄마는 노란색 양철 양동이를 들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대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엄마를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쪼르르 달려들었던 나는 겁에 질려 뒤로 움찔 물러났다.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노란 양동이 안에 빨간 피가 가득 담겨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피를 보는 것은 너무 싫다.

부엌에서 요리하는 엄마의 손놀림은 신들린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런 엄마를 문지방에 작은 엉덩이를 얹고 꽃잎 모양으로 손바닥을 오므려 턱을 괸 채 지켜보았다. 이따금 엄마는 내게 활짝 웃어보였지만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그 할머니 같은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무서움마저 들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멀찍이 엄마를 지켜보다고 지겨워진 나는 앞마당 뒷마당을 뛰어다니며 놀았다. 그 사이 날이 어둑어둑해졌고 사랑채 굴뚝에서도 연기가 올랐다. 저녁 밥 먹을 시간이 되어, 엄마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매일 밥상에는 엄마가 만든 음식들이 소복소복 올랐는데 이날은 김치만 있었다. 대신 김이 술술 오르는 국이 식구들 앞에 한 그릇씩 놓였다. 엄마는 내 앞에 국그릇을 놓고 시커먼 덩어리를 자꾸 건져 넣었다. 그러면서 대단한 보약이라도 먹이듯이 그 시커먼 덩어리를 내게 떠먹였다. 남기지 않고 다 먹으면 피가 많이 생긴다고 했다. 어떤 맛이었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다. 그렇지만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절반을 먹고 그만 먹겠다고 했을 때 엄마는 나를 달래고 윽박지르기를 반복하면서 한 그릇을 다 먹였다. 억지로라도 먹어야 피가 생긴다는 말에 꾸역꾸역 참고 먹었던 터라 맛에 대한 기억은 없다.

나는 지금까지 그날 밤을 잊지 못한다. 자고 일어나면 피가 샘처럼 생겨 발그레한 얼굴로 엄마를 기쁘게 해 드려야 하는데 밤사이에 하나도 남김없이 다 토해 버렸던 것이다. 창자가 입 밖으로 딸려 나오는 고통이 뒤따랐다. 얼마나 아팠던지 세상이 뱅글뱅글 돌고 암흑천지였다. 그 와중에 엄마는 내 등을 두들기면서 아까운 것을 다 토했다고 야단을 쳤다. 나와 선짓국과의 인연은 그렇게 아프게 끝이 났다. 참고 먹어야한다는 엄마 말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던 방이었다.

엄마는 하기 싫어도 참아야한다는 말을 좌우명처럼 달고 살았다. 나는 무조건 참는 것보다는 속마음을 털어 놓는 것이 더 낫다는 쪽이다. 속에 눌러 담은 것들은 위장을 뒤틀리게 하여 토하지 않으면 오히려 병이 될 수도 있다. 엄마의 참으라는 말은 내가 결혼한 후에도 계속되었다.

시어머니는 다섯 며느리 중에 넷째인 내게 지나치게 서운한 말씀도 자주 하셨고 잡다한 일도 많이 시켰다. 시댁에서든 친정에서든 여자는 남편의 힘에 따라 대우를 달리 받는 경우가 많다. 다들 먼 곳에 살기 때문에 내가 더 많이 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힘없는 남편이 원망스러웠고 나도 먼 곳으로 이사를 가서 살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았다.

특히나 명절이 다가오면 울화가 더 치밀었다. 튀김 종류나 닭요리를 만들 때는 더욱 그렇다. 나는 하루 종일 튀김솥을 안고 있어야 했기에 저녁엔 말만 해도 입에서 기름내가 났고 심지어 소면 속에서도 느끼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목줄만 끊은 피 묻은 닭을 들고 와서는 물 끓이고 털 뽑으라는 일도 내게 시켰다.

내 좁은 소견인지 모르지만 나는 늘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시댁이라는 곳이 어디 말이나 쉽게 할 수 있는 곳이던가. 친정에 가면 엄마한테 이 모든 것을 일러바쳤다. 한번 쯤 내 편이 되어 줄 수도 있으련만 엄마는 늘 참으라고만 했다. 내 속이 좁은지 시댁에서 일들은 오장육부에 가득 차올라 늘 속이 메슥거렸다. 엄마의 당부는 내 억울함을 누르지 못했다.

간이 커질 만큼 세월이 흘렀다. 십여 년간 속으로 눌러 넣기만 했던 말을 기어이 토해내고 만 날이 왔다. 시어머니께 모두 말하고 나니 속이 후련해졌다. 무조건 복종해야 할 며느리가 대든다고만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가까이 살고 말 잘 들어 편한 마음으로 대했는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오히려 무척 서운해 하셨다. 옛날에 내가 엄마의 정성도 모른 채 선짓국을 다 토해냈을 때처럼 언짢아 하셨다.

어떨 땐 속에 담아 두는 것보다 뱉어 내는 것이 더 나은 소통 방법이 될 수도 있다.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이해하는 것이나 통하는 것이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꽁하게 담아두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이다. 무엇이든 너무 지나치면 병이 도는 법이다. 사랑하는 마음도 수위 조절을 잘하여 찰랑찰랑 넘치지 않으면 보기가 좋다. 주는 쪽과 받는 쪽이 평행선이 되기까지는 제법 많은 고통이 따라야 하는 모양이다.

사랑과 관심도 폭식 상태에서는 괴로운 법이고 소화가 안 되고 쌓여 있을 때는 위로든 아래로든 토해내야 위기를 넘길 수 있다. 마음속이든 위장 안이든 뭔가를 오래 담고 있으면 병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