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대합실(待合室) / 류영택

대합실(待合室) / 류영택

 

 

 

여행은 마음을 들뜨게 한다. 한 번도 가지 않은 곳은 더욱 더 그렇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마치 꿈속을 헤매듯 온갖 상상을 다 하게 된다.

어둠에 적응이 됐는가보다. 주위가 한층 밝아졌다. 그렇다고 옆에 서 있는 사람의 얼굴에 나 있는 점까지 보일 정도는 아니었다. 먹구름이 내려앉은 것 같이 실내는 여전히 어두웠다. 나는 무리에서 한 발 떨어져 주위를 살폈다. 잠시 전에는 보지 못했던 삼십 촉 백열등이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나는 백열등을 빤히 쳐다봤다. 필라멘트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불빛을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이 긴장돼왔다. 마치 내가 큰 죄를 짓고 취조실에 끌려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걸러지지 않은 불빛은 날을 세운 사금파리처럼 금세라도 내 몸에 생채기를 낼 것만 같았다.

판사가 자리를 뜨자 재복을 입은 사람들이 우리를 옆방으로 몰아넣었다. 나는 아무 영문도 모른 채 무리를 따랐다. 내 앞을 걷던 사람들이 머뭇거리며 뒷걸음을 쳤다. 나는 그때까지 그들이 왜 그러는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그들 중엔 짙은 화장을 한 여자들도 있었고, 아직 잠에서 덜 깨어난 듯 게슴츠레한 눈빛을 한 남자들도 있었다.

사람들이 방으로 다 들어오자 철문이 닫혔다. 실내는 순식간에 어둠에 휩싸였다. 놀란 사람들은 일제히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이내 동작이 정지되었다. 나는 그때서야 앞서 걷던 사람들이 자꾸만 뒤로 처지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멍한 모습으로 서 있던 사람들과 달리 그들은 거머리처럼 조금 전 닫힌 문 앞에 딱 붙어 섰다.

'한 사람씩 나와' 문 쪽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아마도 법원서기 같았다. 사람들이 몰려들자 문 앞은 금세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서로 먼저 문을 빠져나가려고 어깨를 밀치고 팔꿈치로 상대의 몸을 가격했다. 나도 무리 속을 헤집고 들어갔다. 하지만 덩치가 작은 내가 그 속에 끼어들기에는 무리였다. 심하게 옆구리를 가격당한 나는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차례가 되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류를 뒤적이던 판사는 내 얼굴을 슬쩍 훑어보고는 무슨 일로 왔냐고 물었다.

"면허증미소지"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던 판사의 얼굴에 희미하게 미소가 스쳐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적이 안심이 됐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곧바로 판결할 줄 알았는데 판사는 앞에 놓인 법전을 뒤적였다. 차를 모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것을 판사가 모르지는 않을 텐데. 혹시 내 죄목을 잘 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닌가. 판사의 사소한 몸짓에도 일희일비 할 수밖에 없었다.

법전을 살피던 판사는 나를 바라보며 면허증에 뭐라고 쓰여 있더냐고 재차 물었다.

"항상 휴대하라고……."

대답을 하자 여기저기서 킥킥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왜 웃지?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차라리 모른다고 할 것을,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아이고 무식한 놈' 이곳에서는 모른다고 말하는 게 제일 똑똑한 놈이다. 그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나보다 앞서 판결을 받은 사람에게도 알 만한 사람이 법을 어기면 어떻게 하냐며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범칙금을 매겼다.

나는 판사의 입만 바라봤다. 벌금이 아니고 구류형을 때리면 어쩌지. 법정에 들어설 때 들떠 있던 마음과 달리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곳에 오지 않아도 문제 될게 없었다. 굳이 법정에 출석하지 않아도 판사가 알아서 궐석재판을 할 것이고, 며칠 후 집으로 날아온 범칙금 영수증을 들고 은행에 가서 돈을 내면 그만이었다. 가만히 자리보전하고 있으면 저절로 끝날 일을 만사 제쳐두고 내 발로 찾아 온 것은, 아무나 올 수 없는 이곳이 궁금해서다. 그곳은 어떤 곳일까. 장님 코끼리 만지듯 마음속으로 상상해왔던 것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 직업은 타이어수리공이다. 가게를 찾는 단골손님 중엔 트럭을 모는 사람이 많다. 그러다보니 가끔 인사사고를 내고 감옥소에 간 기사를 면회하러 가게 된다. 거울을 들여다보듯 작은 구멍이 뚫린 유리창에 얼굴을 마주하고 큰 소리로 이야기를 주고 받다보면, 기사가 들어왔던 문 뒤쪽이 궁금해져온다. 영화에서 봤던 그 모습일까.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될 거야. 내 상상은 닫힌 문을 열고 그 안을 기웃거렸다.

하루는 동문 후배를 만났다. 그 후배는 교도관이었다. 나는 후배에게 부탁을 했다

"후배, 교도소 구경 좀 시켜줄 수 없나?"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나. 잠시 긴장해 있던 후배는 그러지 말고 골목에 세워둔 자전거를 그냥 끌고 가라고 했다. 간절한 내 마음도 모르고 후배는 농으로 받아넘겼다. 하지만 재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후배가 그런 말을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구경할 게 없어 남들이 꺼려하는 그런 곳이 다 궁금할까. 마음을 접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궁금증은 눌러놓은 용수철처럼 점점 반발력만 커져갔다.

무슨 일이건 간절하면 이루어지는 것이 세상일인 모양이다. 오래지 않아 그곳에 갈 일이 생겼다.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가다 불신검문에 걸렸다. 신원조회를 해도 별 이상이 없자 경찰관은 나를 그냥 보내주기 싫었던지 면허증미소지 위반딱지를 떼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차량을 단속하는 교통경찰이 아니었다. 나는 이런 일로 딱지떼는 사람은 당신뿐일 거라며 화를 냈다. 그는 내 말에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지극히 사무적이었다. 경찰관은 스티커를 건네며 출두명령서가 집으로 날아오면 즉결재판소로 재판을 받으러가야 한다고 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곰곰이 생각하니 옷을 갈아입느라 깜빡하고 주머니에 지갑을 넣고 오지 않은 게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사는 '범칙금 삼만 원', 돈을 못 낼시 범칙금만큼 구류를 살라는 판결을 했다. 분명 이만 원으로 알고 있는데 만 원을 더 내라고 하는 것은 내가 자초한 일인 것 같았다. 애써 태연한 척 했지만, 혹시나 싶어 주머니에 삼만 원을 넣고 와서 그나마 다행이라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갈비뼈에 금이라도 간 건 아닌가.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좀처럼 통증이 가시질 않았다. 이러다 언제 나가지? 힘이 센 자와 약삭빠른 자는 빠져나갔지만 실내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남아있었다. 남은 자의 모습도 조금 전 그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 줄을 서 있지만 행여 새치기를 당할까봐 경계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나는 옆구리를 감싼 채 맨 끝자리에 섰다.

사람들은 가만히 서 있지를 못했다. 어둠에 쫓기듯 쪽문 쪽을 향해 끊임없이 움직였다.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고 줄이 요동칠 때마다 나는 뱀 꼬리처럼 이쪽저쪽을 옮겨 다녔다. 이곳에 오기도 힘이 들었지만, 집으로 가는 길이 왠지 더디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이번 여행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문을 나서다말고 힐긋 뒤를 돌아봤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자리는 적막하기만 했다. 고성방가, 노상방뇨, 무전취식 등등 갖가지 사연으로 실내를 가득 채웠던 사람들, 어쩌면 그들도 나처럼 이곳 모습이 궁금해서 발을 들여놓은 것은 아니었을까. 범칙금을 손에 움켜쥔 채 문을 빠져나가려나가려던 사람들의 모습은 법을 지키지 않아, 일진이 사나와 잡혀 온 게 아니라, 이러다 막차마저도 놓치지나 않을까. 귀향 차표를 끊으려고 발을 동동 구르며 애태우던 설 대목 대합실 풍경을 보는 것 같았다.

'차표를 샀으면 서둘러 버스에 오르지 않고 왜 돌아봐' 텅 빈 대합실에는 삿갓을 쓴 백열등이 날 선 사금파리 빛을 토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