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나무 책상 / 홍성학
방문을 열자 공부하는 냄새가 눈과 코를 자극하며 가슴에 확 달라붙는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과 교수는 방 한가운데 널따란 책상을 맞대고 책 속에 파묻혀 정신이 없다. 바깥공기의 유입이 분위기를 깨는 것 같아 얼른 인사만 하고 나왔다. 공부방에는 창문과 출입문을 제외한 전체 멱면에 바닥에서 천장까지 꽉 짜 맞춰 넣은 서가가 서점같이 책들로 가득하다. 공부는 저렇게 하는구나, 공부에 대한 욕망이 불현듯 벅차게 끓어오른다.
대학을 입학하던 늦은 봄날 일요일이었다. 아버지의 분부대로 인사차 간 곳은 삼종고모 댁이었다. 새아재라 불러야 하지만 교수님으로 부르는 것이 훨씬 편했다. 캠퍼스 연구실에 한두 번 인사를 간적은 있지만 집에는 처음이었다. 교수님은 장가왔을 때 인재행因再行을 우리 집에서 지냈다며 아버지에게 각별히 안부를 물었던 적이 있다. 아지매는 큰방에다 앉혀놓고 불평인지 자랑인지 스트레스 푸느라 신바람이 났다. 상대를 되어주기로 마음을 굳히고 앉아 있었다.
"너거 새아재는 집에 무슨 일이 있는지, 제사가 언제인지, 집안가의 대소사가 어떻게 되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오직 학교와 집만 오가며 공부만 하니 이야기할 틈도 없다"
한다. 아들 둘은 명문 고교에서 최우수 성적이라 죽기 살기로 공부만 한다고 했다. "일요일도 저렇게 공부만 하니 내가 이게 사는 것이 아니다."하며 따발총 쏘듯이 말을 뱉어낸다.
책상을 방 한가운데다 놓고 삼부자가 공부하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책상은 구석자리에 있어야 된다는 고정관념이 굳어져 있던 나에게는 책상 배치를 희한하게도 해놓고 공부하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사고의 폭을 넓혀주기도 했다.
촌뜨기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된 듯 주눅이 들었다. 가끔 연구실에 가면 새아재는 대학생활에 관한 충고도 해 주시고 광범위한 독서를 해라, 영어를 꼭 해라, 대학원에도 진학할 꿈을 갖고 공부해라 하는 등의 충고를 잊지 않았다. 돌아올 때의 발걸음은 희망찬 구름 속을 걷는 듯 경쾌하였다. 무엇인가 한 아름 가득히 얻어 안고 오는 기분이었다.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는 책상을 본 적이 없지만 집에는 오래 전부터 대물림하여 곰보가 된 앉은뱅이책상이 바른편 구석에 언제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책상 밑에는 방 쓰레기를 쓸어 모아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밀쳐놓고 책상 위는 온갖 구질구질한 물건들을 올려놓는 곳이었다. 밥이면 요강까지 책상 밑을 차지한다. 책상은 소홀한 그의 대접에 얼마나 분통이 터졌을까. 밥상이 책상의 대용이었다. 의자 딸린 높은 책상이 소원이었던 나에게 중학교에 입학하면 멋들어지게 만들어 주기로 아버지는 약속을 해 주셨다.
아버지는 집 뒤쪽 둑 위에 있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자라 온 아름드리 가죽나무를 잘라 큰 책상을 멋지게 만들어 주셨다. 그렇게도 아까워하며 할아버지 때부터 자랑하시던 가죽나무를 잘라 아들의 책상을 마련해 주신 것이다. 날아갈 듯이 기뻤다. 가죽나무 속은 불그스레하여 마치 니스 칠을 한 것처럼 번들거렸다. 가구점 책상보다 훨씬 더 크고 육중하였다. 오른쪽 아래로는 서랍이 세개 달려 있었으니 더욱 무게감을 느끼게 했다. 그 책상은 나의 중, 고 시절을 함께한 둘도 없는 공부 지킴이였다. 그 책상에만 앉으면 공부가 저절로 되는 것 같았다. 몸의 건강과 예절이나 인성교육이 부모의 정성으로 이루어진다면 지식의 성장은 그 고마운 책상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가능했을까 싶기도 하다.
책상을 만들어 주신 후부터 아버지는 잠결에 일어나기만 하면 가만히 내 방을 들여다보시곤 했다. 책상에 엎드려 자거나 방바닥에 누워 있기만 해도 가차 없이 엄한 꾸중이 뒤따랐다. "책상까지 만들어 주었더니 공부는 안 하고 잠만 자는구나."
제사 지낼 때는 날이 새기까지 책상에서 공부를 해야 했다. 몇 번의 야단을 들은 적이 있은 후였다.
한 번은 제사 지낸 후 책상 위에서 엎드려 자는 것을 또 들키고 말았다. 아버지는 "여러 번 말해도 듣지 않으니 이제는 책상을 없애 버려라." 라는 말씀과 함께 그 무거운 책상을 나와 같이 끙끙거리며 마당까지 들어내었다. 도끼로 책상을 찍어 버린다고 고함을 치셨다. 화가 얼마나 나셨는지 결국 도끼로 책상의 상판을 내리쳐서 중상을 입혔다. 내 몸이 맞은 것 같아 울면서 손이 닳도록 빌었다. 앞으로는 절대 자지 않고 공부만 하겠다고…‥. 죄 없는 책상은 임자 잘못 만나 큰 상처가 났으니 얼마나 미안한 일인가. 그 뒤로는 하룻밤에 몇 번이고 세수를 해 가면서도 엎드려 자는 일은 없었다.
방학 때 집에 온 기회는 무거운 가죽나무책상을 방 한가운데로 옮겨보았다. 구석에 위치할 때와는 달리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벽면엔 책 없이 비었으니 괜히 책상만 덩그렇게 되어 어울리지도 않거니와 무엇보다 산만해 보였다. 역시 송충이는 솔잎만 먹고 살아야 되는가 보다.
대학을 마치고 군에 다녀올 때까지는 집을 떠나 있었기에 가죽나무책상과 떨어져 지냈다. 제대하여 집에 왔을 때였다. 그렇게 애환을 같이하던 책상이 그만 눈앞에서 사라진 것이다. 무슨 물건이든 쓸모없어지면 버리는 것이 사람들의 속성이라지만, 아버지는 방만 차지하는 데다 사용할 아이도 없고 이사 다닐 때마다 무거워서 버렸다 한다. 대물림 할 수 있는 좋은 책상이었는데…‥. 아까운 마음과 서러움이 겹쳐져 마음이 짠하다. 혹시 도끼로 찍은 흔적을 지울 수 없는 못마땅함에 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책상과 지냈던 지난날이 그리웠다. 그 푸근한 책상에 앉아 다시 책을 펴 볼 수는 없게 되었다. 그 설움 받았던 책상, 손때가 묻어 정들었던 책상에의 그리움이 마음을 울적하게 만든다. 어느 낯선 손에 그 형태마저도 부수어졌을 테지.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왔다.
책상을 도끼로 치던 아버지를 한순간은 원망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에야 돌이켜 보면 아버지의 속 깊었던 뜻을 이해하지 못한 좁은 소치가 아니었나 싶다. 도끼로 찍었을 때 아버지의 마음도 얼마나 아팠을까.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기대가 넘치셨기 때문이리라. 오늘따라 아버지와 책상이 왜 이렇게도 그립고 보고 싶은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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