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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씀바귀와 宇理集 / 하창수

씀바귀와 宇理集 / 하창수  

 

 

 

자고 나면 꽃봉오리가 하나씩 둘씩 톡톡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미 내 가슴 속에 들어온 계절은 내 눈을 통해 확인되어 가고 있다. 이맘때쯤이 되면 나는 쓴맛을 지닌 고채苦菜나물을 즐겨 찾는다. 막걸리 한 잔에 입맛을 돋우는 쌉싸름한 그 뒷맛이 오래오래 잊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사색을 좋아하는 내 습성도 그러하거니와 고독을 곱씹어 음미하는데 두보의 시와 더불어 내 친구가 되기 때문이다. 고들고들한 것이, 늦가을 찬 서리를 맞으면서 조직이 한결 질겨지는 것도 IMF를 경험한 내 삶과도 너무나 흡사하다. 내 일찍이 이 군자君子에 반해 호형호제하리만큼 아끼고 애지중지한 인연은 그녀를 떠올리게 한다.

이 선생은 서양화가다. 언제나 깔끔하게 차려 입은 천연염색을 한 치마저고리 하며, 소매를 걷어 올린 팔뚝으로 차를 우려내는 모습은 수더분한 시골아낙네와 다르지 않다.

충청도 특유의 느린 말씨와 스포츠머리로 짧게 자른 두발과는 항상 대조를 이룬다. 이러한 것들이 캔버스 위의 인무로가 소재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과감한 구도와 독특한 필치는 보는 이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고작 여자의 팔뚝에서 나오는 필력쯤이야 하고 가볍게 넘겼다간 작품을 보고서는 이내 후회를 한다. 그림의 골격들이 남자의 허벅지 근육처럼 펄펄 살아나는 것을 보면 그녀의 범상치 않은 삶을 엿보기에 했다. 그녀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화가에 불과했다.

내가 그녀 집을 처음 방문할 때다. 내 눈이 먼저 간 곳은 바로 문패에 고아한 전서체 글씨로 쓴 '宇理集(우리집)'이었다. 문패라지만 우람한 솟을대문 한쪽 기두에 덩그렇게 모양새를 내는 것이 아니라 시골집 마루 밑 아무데서나 볼 수 있는 나무토막에 불과했다. 그것에 막된 붓으로 가지런하게 앉혀놓은 글씨는 보통 솜씨가 아니라는 것을 한눈에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글씨에도 매료되었지만 숨겨진 뜻에 대한 궁금증은 소갈증 환자와 같았다. 이런 내 마음을 짐작이라도 한 듯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선생님께서 지어 써주신 것이라고 했다. 그러고는 나에게 되물었다.

"하 선생도 서예공부를 했다지요."

"……."

부끄러운 마음에 순간 내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이 선생이 사는 그 오두막집은 구멍이 숭숭 난 돌담 사이로 외로움이 지쳐 있었다. 차 향기가 심심하게 처지는 그녀의 안방은 언제나 포근한 석양과 함께 시름이 내려앉아 있었다. 차 한 잔은 봄 향기보다 더 그윽했다. 마당 가장자리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씀바귀와 그녀와의 필연적인 유사점을 발견한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그녀는 병마와 고독으로 수십 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삶을 경험했다. 시간 개념에서 해방되어 고행의 길로 들어섰던 것이다. 누군가 자신을 알아주지 않더라도 개의치 않고 일념으로 자신을 화폭 속으로 던진 것이다. 예술의 신은 그녀를 결코 놓치지 않았고 단단한 바위와 같이, 명징한 호수처럼 조각해 세웠다.

이 선생은 씀바귀와 같이 풍찬노숙風餐露宿도 외로워하지 않았다. 세상의 호기심과 이기심에 홀리지 않는 것을 보면 지조를 목숨과도 같이 여기는 선비와도 같았다.

씀바귀의 품성은 쓴맛을 거쳐 맛 단 나물이기도 하거니와 고아하지만 화려하지 않은 일생이 고행을 벗 삼아 수행한 구도자의 마지막 열반에 이르는 삶과도 비슷하다. 자줏빛 잎줄기의 질감은 무명 줄에서 튕겨지는 아쟁의 중후한 소리와도 같다. 슬프되 비통하지 아니한 가락은 새로움을 잉태한 희망의 노래요, 역경을 이겨낸 사업가의 비장한 가슴과도 같다. 그래서 수많은 풀 중에 스승인 '약사초藥師草'라고까지 하지 않았겠는가.

이 선생이 삶도 그랬다. 이태가 지나 나는 다시 그녀의 화실을 찾았다. 계곡에서 올라오는 상큼한 봄 냄새는 찌든 도시인에게 긴 호흡을 유도했다. 그녀의 투병생활은 오백 나한상을 영접하면서 사투에 불살라졌다. 생명의 유한함이 그만큼 절실했을까. 모든 것은 생사의 한 점으로 향했다.

고귀한 생명을 갈구하는 그녀의 집념은 너무나 본능적이어서 오히려 순수하고 소박해 보였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에도 꽃이 핀다던가. 그녀의 삶에 대한 강한 의지는 척박한 땅에서 샘이 솟아나듯 캔버스 위에 산씀바귀의 황금빛 두상화頭狀花로 되살아났다.

온 방안을 장식한 오백 나한상의 엄청난 분량에도 압도되었지만, 존자尊者 하나하나의 표정과 눈망울은 그녀를 고스란히 대변하고 있었다. 믿어지지 않는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불과 2년여 만에 수십 호 크기의 서양화 작품 오백여 점을 훨씬 넘게 완성한 것이다. 그녀는 지쳐 있었지만 해맑은 얼굴은 阿羅漢을 닮아 있었다. 이제는 그녀 자신도 존재의 참 본질에 대한 통찰을 얻어 깨달음에 이른 사람과 같았다. 고귀한 사람 그 자체였다. '고귀한 사람'은 욕망의 사슬에서 벗어나 다시는 생을 받아 태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집宇理集'은 그녀의 이러한 수해오가 믿음, 집념과 실천을 통해 성스러움이 깃드는 산실이었다. 그녀의 분신과도 같은, 예술로 승화된 작품들은 국립만속박물관에 특별히 전시되어 감상자들을 연일 감동하게 했다. 그녀는 이 모든 예술품들을 박물관에 무상으로 기증했다. 작품들은 우리 민속의 유산이자 보물이 되었다. 한 인간의 생명에 대한 집요한 경외심이 예술과 융화되어 역사가 된 것이다. 그녀의 품을 떠난 나한들은 한 권의 도록으로 묶어져 나에게까지 부쳐왔다. 그녀는 작품 한 점 한 점마다 그릴 때의 감정을 한 구절씩 기록해 두었다. 몇 구절 읽어가다가 나는 눈을 감고 말았다. 온화한 그녀의 체온이 내 가슴으로 전이되고 있었다.

계곡 초입 은행나무 사이로 비치는 서녘 해넘이를 보면서 살아있다는 감사함에 마음속으로 기도를 해 본다. 내 오늘 문득 씀바귀나물을 먹으면서 이 선생이 떠오르는 것도 이유 없는 봄날의 감회 탓이 아니었을까 생각에 잠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