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관자 / 정명숙
답답하다. 맑은 하늘을 보거나 넓은 벌판에 서 있어도 마찬가지다. 누굴 만나 소리 내어 웃다가도 문득 민망하고 죄스러워 웃음을 멈춘다.
집을 나설 때면 습관처럼 숨고르기를 먼저 한다. 어느 날은 목적지를 앞에 두고 가슴이 서늘해져서 발길을 되돌리기도 하고 어느 날은 켜켜이 쌓이는 슬픔으로 울기도 한다. 이것은 변할 수 없는 우주의 섭리라고 애써 자신을 위로 해봐도 무겁게 가라않는 마음은 어찌 할 수가 없다.
두 분 중에 먼저 치매가 온 건 시어머니였다. 여자의 삶이 누군들 순탄하기만 하겠는가. 어머니는 매사를 술에 의지하셨다. 정서도 불안했다. 가족들의 성화에도 술을 멀리 하지 못하셨다. 결과는 참담하게 다가왔다. 삼 년 전부터 심해지기 시작한 알코올성치매는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게 했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할 정도가 되자 가족회의를 거쳐 집으로 가고 싶다는 당신의 의사는 묵살된 채 일반병원에서 노인병원으로, 그리고 요양원으로 가시게 되었다. 혼자 집에 남아 생활하시던 아버님도 병원에 입원하시는 일이 잦아지게 되었다. 홀로 계시면서 이틀이 멀다하고 한밤중이나 새벽에 어지러워 일어날 수가 없다고 전화를 하신다. 그럴 때마다 우리 내외는 아버님을 모시고 병원응급실로 향한다. 그러나 모든 검사를 해봐도 특별한 이상이 없다. 불안감에서 오는 신경성이다. 혼자 생활하시는 것이 마음 놓이지 않아 내 집으로 모셔 와도 머무는 날짜는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셨다. 편안히 두 분이 사시다 자식 집에 있자니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편치가 않다고 당신 집으로 돌아가시는 일이 반복되었다.
작년 가을, 아버님은 또 다시 병원에 입원하셨다. 어지럼증 때문이었는데 초겨울로 접어들면서 치매증상이 심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감당하기가 쉽질 않았다. 병원에서도 노인성 질환을 전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곳에 입원을 시키라며 퇴원을 종용했다. 시동생들은 집에서 모시는 것을 반대했다. 아무리 형수가 애를 써도 다른 자식들이 보면 성에 차지 않기 때문에 동기간에 의만 상한다는 이유였다. 아버님마저 노인전문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치매도 당신의 성격을 따라가는지 어머님은 조용하셨으나 아버님은 불같은 성격대로 주위사람들을 힘들게 하셨다. 자식들도 멀어져갔다. 시부모님의 병수발은 자연스레 맏며느리인 내 몫으로 돌아왔다.
아버님이 노인병원에 입원하신 지 한 달 반 만에 폐렴이 생겼다. 설 명절 전날이었다. 나는 종손며느리라서 명절준비는 보통 열흘 전부터 준비를 해야 한다. 그날도 손님 맞을 준비와 차례 상에 올릴 음식 장만으로 새벽부터 분주하던 중에 노인전문병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하던 일을 놔두고 남편과 함께 그곳으로 달려갔다. 삶의 끝자락을 잡고 회한에 젖어 아음이 약해지셨는지 아버님은 내 손을 잡고 이별을 앞에 둔 사람처럼 그간 하지 못했던 말들을 쏟아 놓으시면서 우셨다. 자식보다 며느리인 너를 더 의지했었다고, 그래서 너만 고생시켜 미안하고 고맙다고 하셨다. 나는 죄책감으로 가슴이 오그라드는 통증을 느끼며 울었다.
두 분을 집에서 모시지 못하는 내 마음은 몸속에 가시가 돌아다니는 것처럼 늘 따갑다. 어쩌면 나는 방관자인지도 모른다. 가족들이 집에서 모시는 것을 반대했을 때 한편으로 안도하는 마음이 컸었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 내가 해야겠다는 의지만 있었다면 할 수 있는 일이다. 허나 나는 불안하고 겁이 났다. 몇 달이나 버틸 수 있을까. 지치면 짜증을 낼 것이고 동기간들을 원망하며 영혼마저 피폐해지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앞섰었다.
병실문은 항상 열려 있다. 병상에는 누워있거나 혹은 베개에 들을 기대고 앉아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환자들이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안다. 그 안으로 들어서면 습관처럼 병실을 둘러본다. 하루사이에 중환자실로 옮겨가거나 새로운 환자가 들어와 있다. 중간쯤에 아버님이 누워계신다. 병실로 들어서는 나를 발견하고 반가움에 고개를 들며 손을 먼저 내민다. 병세는 호전되었어도 아직 소변 줄을 달고 주사바늘을 다리에 꽂고 기저귀를 차고 있다. 며칠사이에 정신은 몰라보게 맑아지셨어도 시간의 흐름에 휩쓸려 스러져가는 당신의 삶을 어쩔 수 없는지 스스럼없이 간병인에게 몸을 맡긴다. 젊은 날 푸르게 펄펄 뛰던 육체는 간 곳 없다. 환자용 바지를 벗기고 변을 본 기저귀를 갈고 물티슈로 항문과 생식기를 닦아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바라보던 내가 민방해서 슬쩍 외면을 하고 딴청을 부린다.
며칠 전 시부모님이 사시던 아파트를 정리했다. 집으로 가져온 건 벽에 걸려있던 사진들과 두 분의 옷이다. 그것들을 가져다 놓고 나는 심하게 앓았다. 몸보다는 마음이 불편해서 말문을 닫아 버렸다. 어머님과 아버님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걸을 수 있게 되면 집으로 가신다고 지팡이를 옆에 두고 수시로 확인하시는 아버님이시다. 그런데 자식들이 편하자고 그리했다. 두 분을 뵈러 갈 때면 나는 죄인이 된다. 나도 병이 들어 누워 있으면 내 자식들이 지금의 나와 똑 같이 할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문득 문득 서늘해진다. 젊은 날 죽도록 사랑하며 살던 부부도 내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게 되면 이미 이별의 시작이라는 것도, 치매로 가까운 사람들을 시나브로 잊어가다가 문득 그리워져도 만날 수 없는 비애감에 더욱 참담해질 것이라는 것을 나는 시부모님을 통해 가슴 아프게 체험하고 있다.
바람이 순하다. 마당 끝 작은 계곡물은 졸졸대며 흘러내려 간다. 골짜기가 촉촉하다. 아직 풍경은 차갑지만 물소리만으로도 완연한 봄이다. 새 생명이 처음 시작되는 계절에,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긴장감은 두터운 외투를 겹겹이 입고 있는 것처럼 어깨를 무겁게 한다. 시부모님께 남겨진 유한한 시간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안타깝게도 자주 찾아가 말동무가 되어 주는 일뿐이다. 오늘도 숨고르기를 하고 집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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