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님 신발 / 류영택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딸아이의 얼굴이 퉁퉁 부어있다. 입이 뾰족하게 튀어나오면 이유라도 물어볼 텐데. 볼에 바람을 잔뜩 불어넣고 홀쳐맨 할머니 쌈지주머니처럼 입술이 뒤집어져 있는 걸 봐서는 물어도 쉬이 대답을 하지 않을 것 같다.
나도 입술을 내밀고 아내도 따라 입술을 내밀었다. 이제부터 답답한 사람이 먼저 말을 해야 한다. 하지만 아내와 나는 절대로 먼저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소파에 앉았다. 거실을 빙빙 돌다. 다시 소파에 앉은 딸아이는 도저히 안 되겠던지 히힛 웃음을 짓고는 속내를 털어 놓았다.
나는 딸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웃음을 참느라 아랫배에 힘을 주었다. 아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허리가 몇 센티미터는 줄어들었을 것이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 나는 자진해서 뜀틀이 돼주었다.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딸아이는 거실에 엎디려 있는 내 등을 타고 넘으려고 주방에서 달려왔다. 돋움 발을 하기위해 그렇게 했지만 내 엉덩이까지는 잘 달려왔었는데 갑자기 걸음이 느려지더니 결국 엉덩이에 손만 짚을 뿐 나를 타고 넘지를 못했다.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아 이번에는 무릎을 바닥에 꿇고 엎드렸다. '아자' 손에 침을 묻힌 딸아이가 바람처럼 내 등을 향해 달려왔다. 나는 두 눈을 꼭 감고 등에 힘을 주었다. 내 생각이 맞는다면 딸아이는 나를 타고 넘기는커녕 내 허리에 엉덩이를 걸치고 말 것이다.
몇 번을 시도 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딸아이를 등에 태운 채 거실을 돌고 말았다. 닮을 걸 닮아야지 어쩌면 나를 쏙 빼닮았을까. 이게 다 내 잘못인 것 같아 그렇게라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체육시간이 다가오면 두려웠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건 달리기밖에 없었다. 뛰었다하면 일등은 못했지만 그래도 삼등 안에는 들어 빈손으로 자리에 돌아가지는 않았다. 보통 달리기를 잘하면 다른 종목도 잘 할 수 있는 게 체육과목인데 나는 그러지를 못했다.
내가 제일 못했던 게 턱걸이와 뜀틀이었다. 철봉에 매달린 나는 두 개까지는 가볍게 하는데 세 개째 하려고 하면 급격히 체력이 떨어져 아무리 용을 쓰도 코까지만 올라가고 더 이상 당겨 올릴 수가 없었다. 정말 젖 먹던 힘을 다해 몸을 끌어당기고 기린 목처럼 쭉 빼서 남들이 시비를 걸면 실격당할, 어거지로 세 개를 할 수 있었다. 턱걸이는 그렇게라도 하고나면 최선을 다하는 내 모습에 선생님이 이해를 해주지만 문제는 뜀틀이었다.
달려오는 폼으로 봐서는 만리장성도 단번에 넘을 것 같이 신나게 달려와서는 손으로 뜀틀을 밀치거나 아니면 억지로 넘으려다 애꿎게 사타구니에 두 쪽을 짓누르는 바람에 학교 건물이 떠나가도록 울부짖으며 운동장을 뒹굴 때가 많았다.
일이 그쯤 되면 선생님께서도 포기할 만도 한데, 선생님은 아흔아홉 마리 양을 놓쳐도 한 말리 양을 포기하지 않는 분이셨다.
방법을 터득해야한다. 그것을 가리치고 싶은 선생님은 뜀틀을 낮게 해놓고는 솔선수범 시범을 보였다. 뜀틀 중앙에 양손을 짚고 그것을 지렛대를 삼아 몸을 앞쪽으로 내던져라. '알겠나!' 나보고 뛰어 넘으라 했다.
요것쯤이야. 아무리 못한다고 하지만 허리도 안 오는 그 높이를 넘지 못할까. 자신만만하게 달려온 나는 힘껏 발돋움을 했다. 붕 솟구쳐 오른 내 몸은 뜀틀을 넘어 교문까지 날아갈 것 같았다. 엄청나게 긴 비행을 한 것 같았는데 내가 떨어진 자리는 반대쪽 가장자리였다. 그것도 활공을 잘 못하여 한쪽으로 몸을 비스듬히 해서 뜀틀위에 겨우 엉덩이를 걸치고 있었다. 친구들은 내 모습을 보고 배꼽을 잡고 웃고 나는 소등에 올라탄 것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어 불안에 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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