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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수탉도 수탉 나름 / 김예경

수탉도 수탉 나름 / 김예경

 

 

 

여사의 시골 농원에 묵으면서, 호수에서 피어오르는 새벽안개의 군무를 바라보는 것은 정말이지 멋진 일이다. 너른 앞마당이 바로 호수에 면해 있는 집이라, 이른 아침이면 수면을 타고 노는 물안개로 주위는 온통 별천지가 되곤 한다. 일찍도 일어난 닭 가족이 먹이를 찾으며 짙은 안개 속을 헤집고 다니는 풍경이 마치 환상처럼 어른거려 보이기도 한다.

부부 둘이서만 살기에 너무 적적하지 않으냐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지만 모르는 소리다. 들여다보면 자연 속에서는 수많은 생명들이 서로 유기적인 틀을 유지하며 생존경쟁을 벌이느라고 그렇게 바쁠 수가 없다. 특히 안 여사가 아끼는 네 마리의 암탉과 그들을 거느린 수탉의 삶은 거의 전투를 방불케 할만치 치열하고 비정하다. 가축 중에서도 닭은 특히 텃세가 심한 동물이라고 한다.

헌신적인 애처가였던 안 여사네 수탉은 전에도 한 번 내 수필에 등장한 바 있어 어떤 이는 가끔 내게, 그 수탉 잘 있느냐고 안부를 물어서 웃기도 한다. 백전노장인 그 수탉도 나이를 당해 낼 재간은 없었던지 호시탐탐 노리던 이웃집 젊은 홀아비 수탉의 공격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며칠 앓다가 그만 저 세상 닭이 되고 말았다.

안 여사나 나나 닭들이 사는 모습을 곁에서 직접 보기는 처음이어서 우리는, 수탉이면 모두가 다 그 죽은 수탉처럼 애처가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닭이라고 어찌 다 똑같을 수가 있겠는가? 사람마다 생김새나 성격이 다르듯 그들도 당연히 서로 다른 개성을 가졌을 것이 분명하다.

안 여사는 죽은 수탉 대신, 이웃집 수탉보다도 더 멋지고 젊은 수탉을 새로 들여왔다. 그런데 새 수탉이 암탉들을 대하는 태도가, 아무리 보아도 애처가였던 전의 수탉과는 사뭇 달라 보이기만 했다. 아직 나이가 어려 그럴 것이라고 짐작하는 수밖에 없었다. 보아하니 말끔한 꼴과는 달리 아직 제대로 사내구실을 못하는 주제인 것이 분명했으니 말이다. 수탉 고유의 발성도 터득이 덜 되었는지 끽끽거리며 연습부족인 소리를 질러대는 것만 보아도 알 일이었다. 그래도 핏대를 세우며 암탉들을 호령할 때 그 기상 하나는 호기만발豪氣滿發하니 기대해볼 만하지는 않던가?

새 수탉이 가장 열성을 기울이는 일은 치사하게도 먹을 것을 독차지하는 일이다. 먹을 것만 보았다 하면 암탉들을 젖히고 쥐 볼가심할 것도 없이 깡그리 먹어치우는 치사한 짓을 예사로 하니, '노래기회도 먹을 놈'이란 바로 이 녀석을 두고 하는 말이 틀림없다. 암탉을 먼저 먹이느라 지극정성 모이를 물어다 주던 죽은 수탉은 얼마나 자상하고 희생적인 가장이었던가? 게다가 이 젊은 녀석은 아직 경험이 일천해서 그런지, 돌발 상황이 발생해도 제 몸 사리기에만 급급할 뿐 암탉은 아예 안중에도 없다. 전의 수탉 같으면 어림 반 푼어치도 없을 일이다. 이웃집 개의 공격에서 암탉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도 초개같이 버린 전의 수탉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 녀석은 이웃집 개만 보았다 하면 꽁지가 빠지게 달아나 저 혼자 숨기에 바쁘다. 그 뿐인가? 개가 쫓겨 간 후에도 제일 나중에야 나와서는, 종로에서 맞은 뺨이 아프다나 어떻다나, 한강에서 논 죄 밖에 없는 암탉들을 지지고 볶으며 화풀이를 한다. '꼴값도 못하는 놈'이란 이 못난 녀석을 두고 하는 말이 틀림없다.

이젠 어리지도 않고 명실공이 수컷 노릇에도 하자 없는 이 수탉을, 원래 근본적으로 성질이 더럽고 더 이상 기대할 것도 없는 녀석이라고 단정 지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수탉도 수탉 나름이지 수탉이라고 다 애처가는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이다. 전에는 곰살궂은 서방님 밑에 곱게만 살던 암탉들이었다. 새 서방이 들어온 후로는 사흘이 멀다 하고 머리끄덩이를 끌리며 비명을 질러대기가 일쑤인 데에다 무엇보다도, 이 녀석의 애꿎은 분풀이가 단순히 암탉들을 겁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어느 날 암탉 한 마리가 한나절이 지나도록 보이지 않아 안 여사와 내가 몇 차례 나가서 찾아보았으나 찾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수탉도 종일 암탉을 찾아다니는 눈치가 분명했다. 다 저녁때가 되도록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또 어느 집 개가 물어 갔나보다 하던 참이었다. 마당에서 놀던 수탉이 갑자기 두 날개를 좌-악 펴서 치켜들더니, 생전 가지 않던 마당 동편쪽 밭으로 비호같이 내닫는 것이었다. 평소에 닭들은 무슨 불문율이라도 있는지 꼭 서쪽 밭만을 활동무대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뜻 밖에도 동편 밭에서, 없어졌던 암탉이 종종거리며 오고 있었다. 동편 밭 건넛집에 사는 홀아비 수탉이 자주 몰래 이쪽으로 넘어오곤 하지만 암탉이 그 쪽으로 넘어간 일은 한 번도 없었다.

혹시 총알 수탉 본 사람 있으면 손 좀 들어보소. 제비가 무색할 날렵한 본새요, 고양이도 주눅들 전력투구 질주라. 사태를 파악한 암탉이 오던 길을 두고 옆 밭둑으로 비실비실 피해 간다. 그 바람에 더욱 약이 오른 수탉 녀석, 갑자기 기수를 돌리기 힘들어 자빠질 듯 끼이-익 급브레이크를 잡은 끝에 겨우 암탉 쪽으로 방향을 잡아 다시 내닫는다. "암탉 죽네- 닭 살려!" 간도 크게 샛서방 한 번 보았다가 사경을 헤매게 된 애처로운 암탉의 비명이 한낮의 정적을 찢는다. 날갯죽지를 장검長劍삼아 이리 치고 저리 치고, 주둥일랑 단검短劍삼아 우로 찍고 좌로 찍는 서슬 푸른 수탉의 비정함이여! 광분을 삭이지 못해 펄펄 뛰는 수탉이 암탉에게서 뽑아낸 깃털로 삽시간에 주위가 자욱해졌다. 남의 집 부부싸움에 끼어들자니 그렇고 그냥 두고 보자니 암탉이 맞아 죽겠고 우리는 애를 태웠다.

도저히 그칠 것 같지 않던 수탉 녀석이 어지간히 분이 풀렸는지 머리털이 뭉텅 빠진 암탉을 데리고 돌아오는 꼴 좀 보소. 한 쪽 팔로 암탉을 안아 들여 걷는 꼴이, 가만 있자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은 장면이 아닌가? 암탉의 어깨를 감싸 안고 많이 아팠느냐고 구구거리며 병 주고 약 주는 꼴이란, 내가 정말 싫어하는 어느 집 남정네와 꼭 닮지 않았는가?

닭들이 갑자기 급한 소리를 질러대는 것은 십중팔구 닭을 노리고 들어오는 동네 개 때문이다. 그 날도 닭들이 우다닥거리며 비명을 질러대는 통에 놀란 안 여사가 나가보니 울타리 밑을 기어 나가는 이웃집 개의 입에 이미 암탉 한 마리가 물려 있더라고 한다. 인기척에 놀란 개가 물었던 암탉을 놓고는 갔지만 이미 초죽음 상태여서 소생하기는 그렇고 그렇다고 피투성이가 된 걸 잡기도 뭣하다는 것이 안 여사가 내게 전화로 알려준 내용이었다. 수탉은 아직도 밤나무 위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심장 멎을 뻔했다고 끙끙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틀 후 내가 갔을 때, 다친 암탉은 아직 살아 있었다. 상자 속에 따로 넣어 놓았기에 들여다 보자니까 수탉 녀석이 쫓아오더니 "우우- 내 식구한테 손대지 마-."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두 날개를 펴고 암탉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비켜나지 않자 공격적인 자세로 내 주위를 돌며 여차하면 덜빌 기세가 단단했다. 이 괘씸한 녀석의 눈에는 내가 이웃집 개만큼도 무서워 보이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암탉은 온몸이 엉긴 피와 배설물로 범벅이어서 손대기가 망설여질 만큼 딱한 몰골이었고 움직이기는 고사하고 먹지도 못하는 지경이었다. 날씨까지 매섭게 춥고 못난 수탉 녀석이 그예 만지지도 못하게 해서, 암탉은 동쪽 밭에 있는 비닐 온실에다 격리하고 팔자에 없는 간호사 노릇 한 번 해보기로 했다.

치료를 시작한 지 여드레 만에 나는, 몸집이 엄청 줄어버린 암탉을 안아다 마당에 내려놓았다. 부러진 한 쪽 날갯죽지를 어정쩡하니 쳐들고 깃털이 다 빠진 등에 상처자국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암탉이 절룩절룩 걷는 것을 보고, 헛고생 말라고 말렸던 안 여사는 자못 경탄의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문제는 생판 다른 곳에 있었다. 이 닭대가리 수탉 녀석이 한동안 안 보았다고 제 처를 잊은 것일까? 아니면 약자는 제거한다는 비정한 본능의 발로일까? 알탉 가까이 빙빙 돌며 탐색하는 눈치이더니 느닷없이 달려들어 상처 난 등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다른 암탉들도 즉시 가세했다. 세상에! 내가 여드레씩이나 걸려 어떻게 살려낸 암탉인데 이런 괘씸한 놈을 보았나. 아무리 미물이기로서니 다 죽은 제 여편네 살려다 주니까 고맙다고 절은 못할망정 인사가 겨우 요거냐? ! 이 녀석아 그러니 네가 닭대가리지 다릴 닭대가리냐? 나도 화가 나서 암탉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는 이리저리 피해 달아나는 수탉의 꽁무니를 계속 쫓아 다녔다. "옛다 이녀석아, 그렇게도 물어뜯기가 소원이면 어디 실컷 물어뜯어 봐라 자- -." 수탉이 궁지에 몰릴 적마다 암탉을 쳐들고 들이대며 종주먹을 질렀다. 암탉을 마당에 내려놓기만 하면 온 가족이 덤벼들어 웬 행려병자냐고 공격을 퍼붓는데 항상 수탉 녀석이 한 술 더 뜨는 것이었다. 암탉은 다시 온실에 격리되어 혼자 지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날 나는 전에 없이 무척 망설이는 어조인 안 여사의 전화를 받았다. 내가 너무 실망할까 말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안하기도 뭣해서 벼르다가 전화를 하긴 했는데 역시 말 꺼내기가 어렵다는 장황한 서두였다. 한참 만에 안 여사는 "어제, 그 암탉이 죽었으니 너한테 미안해서 어쩌냐?"고 했다

갑자기 닭이 죽는소리를 하기에 급히 나가보니 수탉이, 온실 앞에 나와 놀던 다친 암탉을 미친 듯이 물어뜯고 있더라는 것이다. 닭들이 온실이 있는 동쪽 밭으로는 가지 않는다고 믿었던 것이 불찰이었다.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안 되고 막대기를 한참이나 휘둘러서야 겨우 떼어놓았다고 했다. 이튿날 아침에 온실에 가보니 어이없게도 암탉이 죽어 있더라는 것이다.  

안 여사네 시골집에 갈 적마다 부지런히 먹을 것을 챙겨주며 관심을 기울였던 닭들에게서 나는 요즘 그 관심을 싹 거두어 버렸다. 특히 설질 더럽고 건방진 수탉 녀석 같은 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수탉도 수탉 나름이지 수탉이라고 다 같은 수탉은 아니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