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를 노래함 / 윤근택
이 한여름, 찰옥수수가 내 농장 밭 둘레에 마치 열병식(閱兵式)을 하듯 일렬로 늘어서 있다. 꼭대기의 수술대는 마치 피뢰침 같이 생겨, 그 자루마다에는 꽃밥들이 옛 임금들의 금관(金冠)에 달린 영락(瓔珞)처럼 조롱조롱 매달려 있다. 참말로, 그것들은 영락(零落) 없이 영락(瓔珞)이다. 그것들은 바람의 도움으로, 옥수수수염으로 일컬어지는 암술대에 미련 없이 떨어질 것이다. 그야말로 옥(玉)으로 부셔져 내릴 것이다. 옥쇄(玉碎)할 것이다. 그렇게 떨어져 내린 꽃밥은 암술과 이내 결합하여 수정할 것이고, 옥수수 알을 여물게 할 것이다. 본디 ‘옥수수’는 ‘옥촉서(玉蜀黍)’에서 온 말이라고 하였다. ‘수수’이되, ‘옥 같은 수수’라는 말일 텐데, ‘옥수수,옥수수,옥수수… .’ 마음속으로 자꾸자꾸 부르다가 보면, 옥이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것만 같다.
사실 세상천지 미쁘지 않은 작물이 어디 있으랴만, 옥수수도 기특한 작물임에 틀림없다. 인류 3대 곡물 가운데 하나인 옥수수. 우리네 직접적인 식량자원이기도 하지만, 가축 사료로 쓰여 후일 가죽의 살점이나 알이나 우유 등으로 우리가 재 회수(?)하기도 한다. 또 에탄올 원료가 되기도 한다. 한편, 부산물들도 유용하게 쓰인다. 옥수수수염은 방광염 즉, 오줌소태 치료에도 쓰이고, 옥수수 알을 지녔던 그 속 대궁은 잇몸과 치아 통증을 완화시킨다며 겨우내 내 농장에 구하러 온 이도 있었다. 옥수수의 기특한 점은 여러 군데서도 달리 더 찾을 수 있다.
첫째, 환경을 그다지 탓하지 않는 편이다. 척박한 토양이라도 뿌리를 내려, 당년에 사람 키만치 자란다. 산악지대인 강원도 지방에 감자와 더불어 많이 재배하는 이유도 거기 있다. 대개 주된 작물은 밭 가장자리에 심고, 밭 가장자리나 밭둑 등에 심게 되는데, 언제고 불평하는 법이 없다. 오히려 주된 작물보다도 키가 더 멀쑥해진다. 사실은 옥수수가 ‘다비성(多肥性) 작물’로 알려져 있어, 초기 생장에 많은 비료 성분을 빨아들인다. 특히, 질소 비료를 많이 필요로 하는 작물이다. 한 해 동안, 그것도 그 짧은 생육기간에 사람 키만치 자라자면, 당연히 그렇게 비료성분을 많이 빨아들일밖에. 이러한 사실은, 옥수수를 제대로 재배하자면, 질소비료를 거의 퍼붓다시피 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질소비료의 과다사용으로 인해, 잔류 질소비료가 강으로 흘러듦으로 말미암아 강물의 부영양화 등의 문제를 야기하기도 하지만… .
둘째, 옥수수는 따로 지주(支柱) 따위를 세워줄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자립성(自立性)이 아주 빼어난 작물이다. 나는 일찍이 옥수수의 그 독특한 뿌리 뻗음에 감탄한 바 있고, 그로 말미암아 방황하던 내 마음 다잡은 적도 있다. 도대체 옥수수는 어떻게 뿌리를 내리기에? 옥수수는 이미 흙 속에 내린 뿌리 말고도, 커갈수록 발목에다 헛뿌리를 1단계, 2단계, 3단계 내어놓게 된다. 360도 균제(均齊)롭게 내어놓는 것도 특징 중의 하나다. 그렇게 헛뿌리를 내어 놓는 이유가, 단지 토양 속의 자양분을 섭취하기 위함이 아닐 거라는 점. 사실 영양분을 빨아들이기 위함이라면, 더 튼실한 뿌리를 토양 속에다 뻗으면 될 터이지만…. 위에서도 이미 밝힌 바 있지만, 옥수수는 한 해 만에, 그 짧은 생육기간에 사람 키만치 자란다. 그러니 하체(下體)가 부실하면, 폭풍우에 쓰러지기 십상이다. 옥수수는 본능적으로 이러한 자연환경에 대비코자 헛뿌리를 내어놓을 거라는 생각. 이 점 참으로 놀랍지 아니 한가. 사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네 인간도 옥수수의 헛뿌리 같은 도구를 활용하는 예가 많다. 깃봉이나 가로등대 따위의 발치에다 세모꼴의 철판 날개를 균제롭게 달아두어, 강풍 등에 쓰러지지 않게 하니까. 하여간, 옥수수가 보여주는 헛뿌리를 통한 자립성은 두고두고 나를 감탄케 한다.
셋째, 옥수수는 교잡(交雜)이 잘 되는 작물이다. 자가수정(自家受精)을 오히려 꺼려하는 작물로 잘 알려져 있다. 잡종강세(雜種强勢)가 뛰어난 작물이다. 이 점이 다양한 종류, 다양한 성질의 옥수수로 지구상에 오래도록 존재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기도 하다. 본디는 마야 즉, 현재 멕시코가 원산지였던 옥수수. 마야인들은 옥수수의 전신(前身)이며 낟알이 몇 개 아니 되는 ‘테오신트’를, 500여 개 낟알이 빼곡 박히는 현재의 옥수수로 육종(育種)하여 재배하였다고 한다. 그들은 그것으로 주식인 ‘토르티야’를 만들어 먹었다고도 한다. 그랬던 것이, 에스파냐 정복자 피사로 일당이 엘 도라도 즉, 황금의 땅을 꿈꾸며 그곳을 정복하면서, 금괴(金塊)와 더불어 옥수수조차 빼앗아 갔단다. 그리하여 옥수수가 전세계에 보급되었다는 거 아닌가. 옥수수야말로 피사로 일당이 훔쳐간 황금의 보옥(寶玉)이었던 셈이다. 피사로의 정복으로 잠시 에스파냐가 마야를 지배하였지만, 각각의 다음 국가명인 멕시코와 스페인과 관계는 사뭇 다르다. 멕시코는 스페인을 아니, 전 세계를 옥수수를 통해 영원히 지배하고 있다고 말하면 너무 지난친 비약일까? 흔히들 헬레니즘 문화니 헤브라이즘 문화니 하는 것을 문화의 융합이라고들 말하는데, 옥수수야말로 그 성질인 타가수정(他家受精)으로 말미암아 수천, 수만 갈래로 융합되고 분화된 옥수수 문화로 발전하여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끝으로, 옥수수는 전후세대(前後世代)인 우리한테 가난을 추억케 하는 작물이다. 미국 정부는 한국전의 후유증으로 배고픔에 허덕이는 우리한테 구호물자를 보내오고 있었다. 그 가운데는 강냉이도 있었다. 요즘 축산농가 소 사료에서나 볼 수 있는 설찧은 옥수수. 국민학교 시절, 이미 도회지 또래들한테는 배급이 중단되었을 텐데, 우리는 운이 좋았던 것인지 나빴던 것인지, 그 강냉이로 빚은 음식을 간식으로 얻어먹고 지냈다. 그 가운데서도 강냉이가래떡 맛은 꽤나 좋았다. 옥수수는 우리한테 그처럼 구황작물(救荒作物)로서도 몫을 톡톡히 했다. 설 대목, 대보름대목 등이 다가오면, 마을에 ‘튀밥할배’가 한 차례씩 오곤 하였다. 강냉이와 장작을 들고 가면, 그 노인은 뻥튀기 기계 안에다 넣고 풍구를 자았다. 어느 순간, ‘펑!’ 터뜨리면 강냉이는 튀밥이 되었다. 한 홉이었던 강냉이가 한 소쿠리로 변했다. 그 가운데 일부는 산지사방 흩어졌다. 튀밥을 서양식으로 ‘팝콘’으로 부르면, 제법 품위 있는 간식거리 같지만, 튀밥은 간식거리가 별로 없던 우리한테 아주 좋은 주전부리였다. 설탕이 아닌 사카린으로 감미하였던 강냉이 튀밥이지만.
이제 내 이야기는 좀 각도를 달리 해 보아야겠다. 옥수수는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작물이며, 위와 같이 장점을 퍽이나 지닌 작물이다. 하지만, 옥수수도 몇 개 약점도 지닌 작물이다. ‘나이아신(niacin)’이란 비타민B3가 들어있지 않아, 오랫동안 옥수수만을 주식으로 삼은 마야인들이 ‘펠라그라그라(pellagra)’라는 병에 걸려 지구상에서 일시에 사라졌을 거라고 추정한 학자도 있다. 그들은 밀림 속에서 70여 부족국가를 이루고 살았다는데…. 사실 여부는 뒤로 미루어 두더라도, 옥수수는 필수 비타민이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은 확실하다. 또, 토양학적(土壤學的) 측면에서는 옥수수 재배가 토양을 나쁘게 한다고 들은 적 있다. 토양의 입자 하나하나는 작물재배에 그다지 유용치 않으나, 입자들이 토단(土團) 구조 즉, 토양입자의 그룹이 되어야 유용하다는데, 막상 옥수수는 그 토단구조를 깬다고 하였다. 게다가, 토양 속 유효비료성분을 쫙쫙 뽑아 올리는 바람에, 이듬 해 다른 작물 재배에 지장을 초래하게 된다는 거. 그 무엇보다도 질소비료를 많이 필요로 하는 작물이란 점이 여러 부작용을 낳고 있다. 우리가 질소비료를 작물한테 주더라도, 극히 소량만 작물이 흡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머지는 빗물 등에 씻겨 강으로 흘러 들어가게 되는데, 강물에 사는 조류 (藻類) 등이 그 질소 성분을 흡수하여 급격히 자라나 이른바 부영양화(富營養化)가 심화되고, 여태껏 본 적 없는 새로운 생명체까지 출현하여 환경질서를 깨뜨리기도 한단다. 대량 옥수수 재배를 위해 거의 들어붓다시피 하는 질소비료가 더욱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사실 어떤 종류의 묘약(妙藥)도 부작용은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옥수수 농사를 하는 동안에도 이러한 제반사항을 염두에 두고 행하면 될 터.
아무튼, 나는 옥수수를 예찬해 마지않는다. 여름날 그늘에 둘러앉아 모기를 잡으면서 부채질을 하며 삶은 옥수수 한 자루를 먹을 때 그 맛. 나는 알차고 찰진 옥수수를 먹는 동안 또다시 옥이 우수수 쏟아지는 광경을 연상할 것이며, 강한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게 내 놓는 그 헛뿌리를 생각할 것이며, 왕관의 영락 같은 수술머리의 꽃밥과 노인네의 수염 같은 암술대를 다시금 떠올릴 것이다. 그것들의 사랑 놀음도 상상할 것이다. 끝으로, 마야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들은 다들 가고 없지만, 그들은 온 인류에게 야생 옥수수를 개량하여 황금의 보옥(寶玉)을 만들어 골고루 나누어주었으니까. 실로, 북미 인디언들의 그 믿음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옥수수를 두고, ‘거룩한 어머니’ 라고 불렀으며, ‘인간은 옥수수로부터 창조되었다.’고도 했으니까.
나의 애독자님들께서도 권하고픈 게 있다. ‘옥수수, 옥수수, 옥수수….’ 하고서 자꾸 마음 속으로 불러보시라. 그러면 옥이 우수수 쏟아져 내리는 기분을 느낄 것이다. 진실로 옥수수는 그 이름에 걸맞게 황금빛으로, 은빛으로 빛나는 보옥(寶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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