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작도(虎鵲圖) / 전성희
선조님들은 정초가 되면 세화歲畵를 그렸다. 잡귀를 쫓고 액을 막으며 복을 불러들이기 위해 용 해태 독수리 호랑이 개 닭 등의 그림을 그려 문에 붙이고 금줄이나 가시가 있는 엄나무와 호랑이 뼈 소의 코뚜레를 문주위에 얹거나 걸었다.
호랑이는 잡신을 쫓으려고 대문 바깥쪽, 귀신이 싫어하는 닭은 안마당을 보고 중문, 도둑을 지키는 개는 곳간의 광문, 해태는 화재를 예방하기 위하여 부엌문에 붙였단다.
올해의 신통한 기운을 상징하는 경인년 백호의 해라 하니 온돌방에 메주 뜨는 콤코므리한 냄새를 연상케 하는 민화 호작도가 떠올라 지인의 집을 찾았다.
현관을 지나 중간 출입문 안쪽 벽에 기댄 액자 속에는 붉고 구부정한 소나무가 많은 부분이 생략되어 우측에 뿌리를 내리고 곁가지를 좌측의 윗부분에 휘영청 늘려 배경이 되었다. 전체의 구도를 가늠하니 자연의 순리를 깨달은 노송으로 짐작이 된다. 호랑이는 소나무 곁에 등을 두고 옆으로 앉아서 휘어진 가지에 사뿐히 내려앉은 까치에게 말을 걸려는 듯 고개를 돌리고 있다.
몸의 빛깔은 어두운 주황빛 바탕이며 가로로 박힌 줄무늬와 털과 수염은 검정으로 표현하였다. 어른 호랑이였다면 온순한 첫인상을 주었을 터이지만 아기호랑이의 눈꼬리는 위로 찢어졌으며 우락부락하고 붉은 아가리에 하얀 송곳니를 드러내어 어흥 거리는 맹수의 모습을 담았다. 꼬리는 엉덩이에 깔려 뒷다리 사이를 지나 앞쪽으로 나와 도르르 말고 있다. 발톱은 앙칼지게 뾰족하나 이마와 꼬리 윗부분에 매화무늬처럼 동굴동굴 작은 동그라미가 표현되어 귀엽기도 하며 사람의 심성을 닮은 듯 정감도 간다.
신령스런 동물을 꼽는다면 동쪽과 서쪽을 각각 관장하는 청룡과 백호를 들 수 있다. 용은 아홉 가지 동물의 유전자를 지녔는데 용의 발바닥은 호랑이로부터 빌려온 것이라 한다.
옛날부터 호랑이는 사납고 성급하며 포악한 맹수이어서 영묘한 능력을 가진 산신으로 숭배하였다. 청주옹기박물관에 전시된 산신제 솥은 무당이나 마을의 우두머리가 호랑이에게 제사를 올릴 때 쓰이던 것이다. 사람들은 호랑이굿을 열어 호랑이에게 물려죽은 사람의 넋을 위로하고 마을의 평화를 빌었다. 소띠와 호랑이띠하고 살면 소띠가 이긴다는 말이 있듯이 호랑이에게 위협을 주고 어린애처럼 얼러가며 쇠머리를 뒷산에 묻었단다. 이처럼 호랑이는 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벽사와 수호의 상징이었다.
인간은 세상이라는 망망대해에 배를 의지하고 크고 작은 파도와 비바람에 젖어 울다가 햇살이 정겨울 때는 어려웠던 순간을 잊고 웃으며 산다. 선님들도 인간의 능력만으로 살 수 없음을 아셔서 정령을 찾게 되지 않으셨을까. 초기에는 원시적인 토테미즘과 샤머니즘이 성행하다가 불교가 들어왔다. 사찰에 산신각을 배치한 것과 백제금동대향로에서 볼 수 있듯이 불교는 토속신앙과 만나 하나의 철학을 만들어 내었다. 그 후에도 유교를 비롯하여 다양한 종교가 들어오고 생겨났다.
새마을 운동이 일어나면서 무당이 굿판을 벌리고 부적을 쓰는 행위는 미신이라며 배척하다가 요즈음은 전통문화로 이해하고 있다. 뿌리 없는 나무가 없듯이 우리 조상들이 살아온 길이 바로 우리 민족의 역사요 문화인 것이다.
21세기는 굴뚝 없는 산업시대요 문화의 경쟁시대다. 종교적인 차원에서 논하는 것을 뒤로 하고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시대에 타임머신을 타듯 선인들의 해학과 정서를 이해하고 세시풍속을 즐기며 삶의 여유를 누리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호작도를 감상하다보니 얼마 전에 꾼 꿈이 생각나다. 감청 빛의 검푸른 바다가 해일이 일어 육중한 춤을 추고 있다. 사람들은 바닷물이 넘칠 것을 예감하였는지 해수와 육지 경계에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휘날리는 비닐포장을 두루루 말아 여러 층으로 높게 막을 쳤는데 천막이 쌓아진 높이까지 바닷물이 불어나 일렁거리고 있었다. 나는 덜컥 겁이 나서 정신없이 언덕으로 달려 올라가 낯모르는 가게로 급하게 몸을 피하고 밖을 내다보았다. 바닷물은 순식간에 밀려와 발이 잠길 듯 말 듯 한참을 찰랑거리다가 서서히 살아졌다.
곧 이어 수평선이 멀리 보이는 해안가게 허름한 집들이 줄지어 있는 정경이 펼쳐졌다. 바다를 뒤로 하고 서 있는 바로 오른쪽 첫 집에는 얼굴이 달덩이처럼 둥글며 동그란 눈을 가진 잘 생긴 여인이 있었다. 머리를 빗은 모양과 옷차림으로 보아 순백의 천사이거나 거리에서 거짓으로 웃음을 파는 야화 같기도 한데 과거에 겨자씨만한 연인이 스쳤던 것처럼 낯설지 않았다. 여인에게 청주로 가는 길을 물으니 동행하자며 우물쭈물 거린다. 그때서야 미심쩍은 생각에 정신이 퍼뜩 나서 큰 길로 내달리다가 잠을 깼다.
꿈 속에서 갈팡질팡할 때처럼 지인과 나는 안개에 휩싸인 미로를 헤매듯이 매사가 답답하여 전전긍긍한 적이 있다. 그 때 마침 신문에 광고로 실린 신부神府의 사진을 오려서 지갑에 넣고 만사형통하기를 빌었다. 정말 효험이 있다고 단정은 할 수 없지만 목표를 향해 노력하며 성실하고 근면하게 살다보니 시나브로 소원하던 일을 성취할 수 있었다.
호랑이의 가죽 수염 발톱 눈썹 외에도 크고 작은 뼈에 이르기까지 액을 막을 수 있다하여 세화는 물론 붓글씨로 호虎자를 써서 몸에 지녔으며 여인들은 허리춤에 호랑이의 발톱 모양의 노리개를 차고 다녔다.
소나무는 장수를 기리고 까치는 기쁨을 맞이하고 호랑이는 은혜를 갚는다하니 경인년 정월에 이들을 소재로 살짝 찐 호박잎 맛 나는 문배도門排圖하나 그려 우리의 바람인 수복강녕부귀다남壽福康寧富貴多男을 빌어보자. 아니 현대의 페미니즘에서는 수복강녕부귀다남녀壽福康寧富貴多男女라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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