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초를 베다 / 손훈영
거실 한 복판에 초상화 한 점이 걸려있다. 졸지에 민머리가 된 엄마가 안쓰러웠던지 유머를 다해 딸이 그려준 초상화다. 내 머리통을 불 켜진 백열전구에 비유해 놓았다. 전구가 된 나는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항암주사를 맞은 뒤 일주일이 지났을 때다. 샤워를 하기 전에 거울을 보았다. 퍼머기 없는 생머리는 여전히 윤기를 발하고 있었다. 온수를 틀어 놓고 머리를 감는 순간 손가락 사이로 어떤 느낌이 왔다. 그랬다. 항암치료와 민둥머리의 상관관계가 현실화 되고 있었다.
그러리라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생각과 실제의 느낌은 천지 차이였다. 손아귀에 머리카락을 잡고 살짝만 힘을 주어도 뭉청 빠져 나왔다. 믿기지 않는 상황이 머리카락을 자꾸 당겨보게 했다. 머리통을 감싸고 있던 적지 않은 머리카락이 단숨에 흘러내려 하얀 욕조를 순식간에 뒤덮었다.
거울 속 머리통은 참혹했다. 폭격으로 초토화된 땅에 질기게 살아남은 풀포기마냥 몇 가닥의 머리카락만이 듬성듬성 남아있었다. 삶이 흔들릴 때마다 수도자들의 배코 친 머리는 내가 가질 수 없는 하나의 해답처럼 어른거리곤 했었다. 생활의 중력과 꿈의 부력 사이에서 그것은 잊을만하면 떠오르곤 했었다. 기회라고 생각하고 머리를 완전히 밀기로 했다.
남편이 직접 나섰다. 삐죽삐죽 서러운 머리카락들 사이로 남편의 면도기가 지나갔다. 면도기는 매끄럽지 못하고 자꾸만 주춤댔다. 그토록 날렵하던 남편의 면도 실력도 아내의 머리카락을 밀기에는 역부족이었든가. 떨리는 듯한 손길이 그저 조심스럽기만 했다.
윤기 흐르던 긴 머리카락은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사라져갔다. 한 시절의 마감이 면도기의 사각거림 속으로 떨어졌다. 눈을 감고 깊고 예리한 그 소리에 마음을 집중했다.
불가에서는 머리카락을 세속적 욕망의 상징으로 본다. 옛날부터 스님들은 머리카락을 ‘무명초’라 하여 번뇌 망상의 상징으로 여겨왔다. 또한 잡초의 뿌리처럼 강한 집착을 나타내는 어리석음에 비유되기도 한다. 욕망은 그 거침과 뜨거움으로 인해 필시 무명일 수밖에 없다. 무명은 사물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이고 삭발은 그 어리석음을 잘라내고 일상의 번뇌와 단절하는 의미를 지닌다.
머리를 밀고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이 책 정리였다. 오랜 세월 욕심스레 거머쥐고 있던 빛바랜 책들을 과감하게 추려내기로 했다. 무명을 밝히려고 책을 읽는다 했지만 책이야말로 내 초라한 허영의 집대성이요 가장 오래 끼고 있었던 곰팡내 나는 허세였다. 허영의 곰팡내는 잠깐이면 자라나는 내 머리카락처럼 책이라는 양식을 먹고 무럭무럭 커왔다.
지적 허영이야말로 내 속에서 가장 먼저 몰아내야 할 어리석음이었다. 모든 허영은 건실한 자아형성의 방해물일 뿐이지만 지적 허영만은 정말 지성인이 되게 해준다고 말하곤 했다. ‘나, 책 좀 읽는 사람이요’하는 과시욕으로 어려운 책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며 읽는 시늉을 하다보면 어느덧 그 책을 정말 이해하게 되고 그 세월이 모여 지성을 쌓게 된다는 논리였다.
나의 책읽기는 순수 탐구심이라기보다는 분명 지적 허영에 가까웠다. 책을 끼고 다니는 사람은 어쩐지 괜찮아 보였고, 뭔가 있어 보였고, 무언지 모를 아우라조차 느껴졌다. 몇 권의 책이 까만 뿔테안경과 나란히 놓여있는 책상은 변하지 않는 나의 로망이었다.
그 로망을 위해 많은 돈을 투자했다. 빠듯한 살림에 과할 정도의 책을 사 모았다. 읽는 책도 많았지만 단지 책꽂이에 모셔두게 되는 책들이 더 많았다. 방금 구입한 책들이 각각 제 등판에 멋진 말들을 내걸고 나란히 겨루기를 하는 책꽂이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집은 좁고 책은 넘쳐났다. 책장 밖으로 넘쳐 나온 책들이 마음을 압박해오기 시작했다. 더 이상 책장을 짜 넣을 공간도 없었다. 너저분한 것들을 보지 못하는 성격이라 다른 살림들은 잘도 버려가며 살았건만 책은 버릴 수가 없었다. 책은 그냥 책이 아니었다.
집을 방문한 누군가가 많은 책을 부러워하는 것에 고무되고 우리 집에서 가장 보여 줄만한 공간으로 서재를 꼽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책은 나의 얼굴이었고 자존심이었다. 나의 얼굴을 버리고 나의 자존심을 쓰레기통으로 쳐 박을 수는 없었다.
책 읽기를 은연 중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일은 참담했다. 책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은 달리 말해 책 말고는 나를 말할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자신을 말해 줄 아무런 근거가 없어 겨우 책읽기로 자신을 포장하고 있었다. 한낱 소유에 지나지 않는, 넘치는 책들로 좁쌀만 한 내 지성을 과대포장하고 있었다.
많은 책이 고매한 지성을 담보하는 것도 아니고 그 지성이 곧 온전한 인간과 연결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몰랐다. 자아라는 녹슨 굴레를 부서뜨리고 삶을 더 좋은 선택과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지 못한다면 도대체 책읽기는 무엇이란 말인가. 책 읽기를 바탕으로 멋진 책을 쓴 것도 아니었다.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한, 자신만의 이기적 도락에 지나지 않았다. 소화시키지 못한 너무 많은 책들이 오히려 내 허물벗기를 가로막고 있었다.
지성에 대한 잘못된 집착과 어리석음이 털어버리고 싶은 자벌레처럼 징그러웠다. 남들에게 지성인으로 보이고 싶은 얄팍한 현시욕이 나는 좀 다르다는 구린내 나는 오만으로 둔갑해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런 깨달음이 정수리를 서늘하게 훑고 지나갔다. 그것은 쓰디 쓴 자괴감을 동반한 뜨거운 부끄러움이었다.
책을 통해 발견한 불쌍한 내 허영은 이제 내가 벗어 던져야 할 남루일 뿐이었다. 그것은 내 속살이 햇빛을 보지 못하게 하는 두터운 외피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출발을 막고 있는 바리게이트에 지나지 않았다.
삭발된 머리통을 본다. 마치 멍든 것처럼 푸르스름하지만 매끈하게 반짝인다. 그것을 보는 마음이 이상할 정도로 담담하다. 뭔가 후련하기까지 하다. 갑갑하게 가슴을 동여맨 오랏줄이 불현듯 툭 끊어진 느낌이다. 지켜야 할 자존심과 자신의 냄새를 전시해야 하는 피곤함으로부터 해방된 기분이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그 무엇, 자신을 보호할 헬멧 따위가 필요 없는 제3의 인간이 된 것 같다. 마침내 어딘가에 도착한 기분, 비로소 바람 없는 잔잔한 곳에 안착한 기분이다.
면도날이 지나간 머리통은 무언가를 훌쩍 뛰어넘게 한다. 날 선 면도기가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가차 없이 끊어버리고 돌아 갈 다리를 허물어버린다. 무소유가 가장 고차원적 삶의 방식임을 깨닫게 한다. 내 속에 또아리를 틀고 앉아있던 많은 비본질적인 것들을 정리하게 한다.
어영부영하던 시간들을 압축하고 만날지 말지 하던 사람들을 마음으로부터 내려놓는다. 불안과 두려움의 싹을 잘라내고 교만의 잎을 떼어내 버린다. 마침내 허영과 탐욕이라는 무명초를 밑둥치에서부터 싹둑 베어낸다.
매일 아침 민둥머리를 만지며 마음속에 밝은 전구를 켠다. 평온한 천국을 불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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