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 술이 그리워 / 김 학
술 한 잔이 그리울 때가 있다. 허름한 포장마차에 들러 정겨운 형수 닮은 아주머니의 선심을 안주 삼아 한 잔 한 잔 마시는 술맛도 그만이다. 그때는 소주라야 어울린다. 훌쩍 한 잔 마시고 나서 슬며시 빈 잔을 아주머니에게 건네면 못이긴 체 잔을 받아드는 그 모습이 아름답다. 술은 술술 대화를 잘도 풀어낸다. 슬펐던 일 괴롭던 일, 기뻤던 일 즐겁던 일..........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피붙이처럼 정이 흐른다. 가슴속에 맺혔던 응어리도 슬그머니 녹아 내린다. 이런 일이 몇 번 되풀이 되다보면 단골이 맺어지고 심심하면 찾게 된다.
우리 아파트 옆에는 아담한 포장마차 하나가 몇 해 전부터 문을 열고있다. 나보다 한두 살 쯤 많아 보이는 그 아주머니는 인상이 후덕해 보인다. 가끔 따끈한 국물도 자주 바꿔주고 공짜 안주도 아낌없이 푸짐하게 써비스한다. 여럿이서 술을 마실 때는 때때로 대화에 끼여들어 분위기를 고조시킬 줄도 안다. 술맛도 좋고, 분위기도 그만이며, 주머니 사정도 염려 할 일이 없어 즐겨 자주 찾는다.
내일이면 또 퇴직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벌써 그날이 기다려진다. 입맛이 다셔진다. 내일은 또 무슨 화제로 장강 같은 대화를 나눌까. 내일은 모두 데리고 우리 동네 포장마차로 와서 이차를 즐기면서 새 봄맞이 시 낭송회나 열어 볼까.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나와 나의 큰아들 그리고 서울의 H 시인 셋이서 주거니 받거니 하다보니 취흥이 도도해졌다. 때마침 H 시인이 시집을 가지고 왔기에 즉석에서 시 낭송회를 열게 되었다. 옆자리에는 신혼부부와 연인 한 쌍이 있었다. 돌려가면서 시 한 편 씩을 낭송하도록 부탁을 하였다. 모두 즐겁게 동참을 하여주었다. 돌발적으로 문학잔치가 벌어졌는데도 누구 한 사람 얼굴 찌푸리는 이가 없었다. 포장마차 아주머니도 시 한 편을 낭송하였음은 물론이다. 시에 취하고, 술에 취하며, 분위기에 취하여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몰랐다. 우리는 그렇게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었다.
술자리는 즐거워야 한다. 그래야 쌓인 스트레스가 풀린다. 힘차게 내일을 열 수 있는 용기를 충전시킬 수가 있다. 아파트 촌인 우리 동네에 포근한 포장마차가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고급스런 술집도 좋고, 맛깔스런 음식점도 많지만, 동네 포장마차처럼 부담스럽지 않는 곳이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더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대화가 통하는 친구와 더불어 한 잔 술을 마실 수 있다는 것은 더 큰 행복이다.
Y 씨는 나와 함께 일하다 퇴직한 친구다. 나는 지난해부터 매달 몇몇 퇴직한 친구들을 초청하여 술잔을 나누며 담소의 시간을 갖고 있다. 일년 넘게 그런 자리를 마련하다 보니 새달이 되면 은근히 그 날이 기다려진다. Y 씨는 유독 이차를 조른다. 언젠가 한 번 우리 동네 포장마차에 와서 한 잔 했던 일이 있고 나서 생긴 버릇이다. 분위기가 너무 좋다는 것이다. 비록 허가 없는 포장마차 집이지만…….
'수필세상 > 좋은수필 3'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은수필]무명초를 베다 / 손훈영 (0) | 2017.08.28 |
---|---|
[좋은수필]시원한 냉면과 파가니니 / 유혜자 (0) | 2017.08.27 |
[좋은수필]존재 / 정목일 (0) | 2017.08.25 |
[좋은수필]스페셜 메뉴 / 박경대 (0) | 2017.08.24 |
[좋은수필]문 / 김양희 (0) | 2017.0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