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엉이 오줌통 / 이애용
지루한 장마가 거치고 모처럼 햇살 좋은 아침. 홀가분한 기분으로 산책길에 올랐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터키석을 닮아 파랗게 눈이 시리다. 소나무 사이로 밝은 햇살이 눈부시게 차오른다. 순간, 소나무 가지에 파인애플처럼 달린 옹이가 회향(懷鄕)처럼 가슴에 스며들었다.
오래된 소나무에만 생긴다는 기형적으로 불룩하게 솟아오른 둥근 모양의 가지, 부엉이가 오줌을 싸서 생겨났다는 전설도 있다. 귀한 종갓집 오대 독자 손자가 태어나자 할아버지는 깊은 산에 들어가서 부엉이 모양의 가지를 구해 오셨다. 매일매일 정성 다해 다듬고 깎고 대패로 밀고 쓰다듬기를 여러 날, 옻칠까지 예쁘게 했다. 둥글고 오목한 모양의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할아버지 표 오줌통을 만들었다. 그것으로 귀한 아이의 오줌을 받아내면 건강하게 자랄 뿐 아니라 수명장수 한다는 속설 때문이다.
아이가 기저귀를 벗고 오줌을 가릴 때쯤 할아버지는 그 통으로 오줌을 받아내셨다. 무슨 종교의식처럼 두 무릎을 꿇고 양손으로 오줌통을 받쳐 들고 계신 그 모습의 풍경이 내 가슴 속에 그대로 남아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는 배를 불룩 내밀고 서서 자랑하듯 만족스러운 표정이 햇살 속에서 장관처럼 떠오른다.
내 동생은 할아버지의 감격 속에서 자랐다. 거기에는 온갖 기쁨이 꽉 차있었다. 손자의 광휘(光輝)는 눈부신 아침 풍경이었다. 할아버지는 날마다 그 광휘를 마시며 살아갔다. 물질이 귀하던 시절이라 풍요롭지는 못했지만, 할아버지의 푸르스름한 빛을 머금고 자랐다. 그 푸른빛은 엑스선처럼 우리의 가슴을 투과해 짜릿하고 따뜻하게 쓸어주었다.
방학 때 외할머니 댁에 놀러 가는 것도 나에게 더 없는 경사였다. 온갖 맛있는 음식을 밤새워 만들어주시던 외할머니, 숲에 들어서면 투명한 햇빛이 요정이 되어 너울너울 춤을 추어대듯이 그렇게 늘 웃어주시는 외할아버지는 내 가슴에 뿜어나는 안개 빛이다. 주어도주어도 모자라 안타까워하시던 지극한 사랑, 겨울이면 눈이 쌓인 장독대 작은 항아리에서 고염을 꺼내주셨던 그 손길, 어찌 지금의 고급스러운 아이스크림에 비기랴.
손끝에 사랑이 숨 쉬고 인정이 넘치던 그때가 너무 그리워 가슴 떨린다. 맑은 샘물처럼 가슴에 고여 퍼내고 퍼내도 청량하게 순광(順光)으로 들어선다.
삼 대가 함께 살면서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공손히 받들어 모시는 효를 배웠고, 할아버지가 손자들에게 베푸시는 정성과 사랑에서 희생을 배웠고, 이웃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우애에서 공동체의 정신을 익혔다.
공자의 가르침에 핵심이 되는 "극기복례(克己復禮)라고 하는 말이 있다. 자신을 극복해서 예절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극기는 자신을 이기는 힘이다. 말하자면 오만에서 벗어날 때 예절을 존중할 수 있다는 의미이리라.
어느새 숲 속에는 아까 보지 못했던 영롱한 빛이 숲 속에 들어선다. 나무, 풀, 새, 먼 산 빛까지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다.
부엉이 오줌통을 연상케 한 소나무의 가지에도 옆으로 밀려드는 햇살을 받아 호화찬란하게 빛을 떨군다. 어쩌면 그 속에 내 할아버지의 영혼이 숨 쉬고 있는 것만 같다. 아쉬움과 그리움이 어련하게 젖어드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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