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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흑국석(黑菊石) / 정여송

흑국석(黑菊石) / 정여송

 

 

 

돌이 꽃을 피웠다. 깊은 땅 속의 열과 압력은 신라 아사달의 혼을 빌려와 하얀 돌에다 검은 국화꽃을 새겼다. 숨결도 맥박도 뛰지 않는 차디찬 무생물, 그것에서 열과 피가 흐른다. 수천 수억 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을 돋을 새김의 낙관이다.

태고의 정적마저 감돈다. 고상하고 품위 있는 동양 풍류의 묵직한 멋이 풍긴다. 속되어 지조가 낮은 사람의 매골과는 다른 세속을 초월한 여유가 보인다. 하얀 돌 속에 까만 국화 송이가 운치 있게 안겼다. 더 이상의 다른 색채가 끼어 들 틈도 없다. 순화된 백과 흑의 대비는 한없이 흐른 시간이 빚은 어울림이다.

흑국黑菊은 백석白石의 응혈이다. 신열 끝에 피워 낸 생명력이다. 강함과 당찬 속내는 알지 못하나 짙은 향기를 품어내 듯 꽃은 살아 있다. 눈여겨보지 않아도 그 황홀한 내면의 불꽃은 소리 없이 타오른다. 백석을 통한 흑국과 흑국을 통한 백석이 극치를 이룬다.

그 전시실에는 희귀하게 생긴 돌들이 즐비했다. 거북이 등을 빼어 닮은 구갑석, 물결 하나 일지 않는 호수석, 물굽이를 세워놓은 폭포석, 생각 없이 둘러보는 동안 유심히 나를 끌어당기는 물상이 있었다. 흑국석이다. 첫눈에 그랬던 것은 아니다. 몇 번을 그냥 지나쳤다. 어느 사이에 겨울의 품속으로 걸어오는 봄의 햇살이 되어 조용히 다가왔다. 볼수록 느낄수록 순일한 정감을 피워낸다.

어찌 보면 거만하고 도도해 보이는 돌이기도 하다. 옥류와 벗하는 계곡의 바위처럼 매끄럽지도 않다. 기이하게 생기지도 않았으면서 가실가실한 돌갗의 촉감이 전율을 일으킨다. 흥건히 밴 귀티와 우아한 태깔이 서리어 세련미가 흐른다. 세월 속에 가라앉은 인고의 앙금을 훑어 낸 맑은 결정체는 시원스런 바람을 불러오는 표정을 그린다. 달빛을 받은 구름의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다. 속살대는 조용한 소리도 들린다. 과묵하면서도 어짊과 너그러움도 지니고 있다. 냉정함과 아늑함의 균형이 절묘하다.

백석과 흑국과의 연에는 아무도 모르는 실화 같은 전설이 담겨 있을 성싶다. 많고 많은 꽃 중에서 국화꽃을 안으려한 백석의 심중은 어떤 것일까. 뭇꽃들이 시들어 갈 무렵이 되어서야 만개 하는 데에 마음이 끌렸을까. 이끌어 주는 대로, 길을 잡아 주는대로 묵묵히 순행하는 꽃이기에 그랬을까. 국화로 몸을 가꾸면 오래 살고 몸이 가벼워진다는 속설에 솔깃했는지도 알 수 없다.

아니면 티끌 같은 국화 뿌리 한 줄기에게 그 돌은 터를 내 주었을 것이다. 토중土中과 달리 양분과 수분을 공급해 줄 재간도 없으면서 마음하나로 품지 않았을까. 거미가 먹이를 실띠로 쟁여 감듯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씨앗으로만 간직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흑국 또한 그러하다. 싹을 틔우기 어렵고 뿌리내리기 힘든데도 꽃이 피기를 꿈꾸었을 것이다. 햇빛이 들고 통풍과 배수가 잘 되는 토양을 마다하고 차디찬 돌 속에 자리를 잡았으니, 장구한 세월을 이겨내는 동안 국화꽃은 한땀 한땀 징을 박아 망울을 터트렸으리라. 햇빛 한 줄기 받지 못했지만 돌 품에서의 개화를 소원했지 않았겠는가. 그 애태움이 오죽했으랴. 열정이라는 날개를 타고 급하게 솟아오르지 않고 아주 좁은 길을 따라 천천히 우회하여 피어올랐을 텐데, 자신의 몸이 까맣게 되는 줄도 모르고 속 태우기를 거듭했겠지. 그래서 까맣게 피어났겠지.

백석과 흑국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다. 예전에 약속된, 끝내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런 받아들임이다. 수없이 해가 바뀌고 세대가 돌아도 변하지 않을 영혼의 상봉이다. 영원한 현재형이며 시들지 않을 사랑이다. 그래서 고급스런 시선은 오랜 동안 흑국석에 머물 것이다.

사람들이 소중한 물건을 가지고 있을 때, 왜 애지중지 하는지를 알지 못했다. 물건이 기쁨을 안겨주고 마음을 변화시키리라는 생각을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나는 돌에 대하여 문외한이면서 탐을 낸다. 그것이 무엇일까. 가까이 오면 거절하기 쉽고 멀어지면 저버리게 되는 사람관계와는 다른 까닭일까. 부질없는 망상일지도 모른다. 아니, 애착일 것이다. 애착이라는 것은 되려 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힘이 되기도 한다. 삶의 덧없음에 한숨짓고 그 속절없음을 하소연하기보다는 애착, 그것으로 인해서 마음은 열리고 깊어진다. 얼마나 깊고 깨끗한 즐거움인가.

내가 흑국석을 자주 생각하는 이유는 그 돌이 아픔으로 빚어낸 아름다운 모습을 내게 비추어서다. 고난을 이겨낸 사람들에게는 짙은 향기가 있지 않은가. 흑국석에서 국향이 은은히 퍼진다. 그 돌을 바라보고 있으면 한없이 순연해진다. 잔잔한 기쁨이 물살 치고 행복감에 젖는다. 발그레지는 봄기운이듯이 빛 고운 마음이 된다.

흑국석이 내 마음을 아는가 보다. 나부끼는 주아사처럼 환영이 아른거린다. 눈을 감으면 더 선명해지고 또렷한 모습으로 내 앞에 선다. 어둠속으로 피하면 환한 빛이 되어 다가온다.

흑국석은 고가의 수석이란다. 마음 한 구석을 비워 흑국석이 들앉을 자리나 마련해야 한단다. 언제까지라도 그 곳에 머무르며 기다릴 거란다. 나는 두고두고 그 흑국석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