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난 고민 / 김수자
양돈이 직업인 관계로 우리 가족들은 돼지이야기를 많이 한다. 정치며 문화며 경제며 사람살이으 모든 것을 돼지세계와 결부짓는 버릇이 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돼지에서 비롯되지만 결론은 사람 쪽으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돼지에게도 중요하고 다른 동식물에게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야기의 시초는 젖꼭지가 부실한 어미돼지로부터 시작됐지만 자연스럽게 인간세상으로 흘러갔고 '맞선'과 '모성애'등으로 이어졌다. 어미돼지의 생명은 젖꼭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미돼지가 되기 위해서는 체형이 빼어나고 성장력이 빠른 외에 모양이 고르게 생긴 열두 개 이상의 젖꼭지가 필요하다. 이런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어미로 뽑힌 한 놈이 어느 날 젖꼭지에 이상이 생겼다. 도태를 시킬 것인지 그대로 둘 것인지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왔다. 젖을 먹일 수 없는 어미돼지는 존재 가치가 없다. 이런 경우 놈은 젖꼭지 때문에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셈이다.
사람에게도 가슴(유방)은 생명만큼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대용품들이 그 역할을 대신해주기 때문에 사람들은 가슴의 중요성을 소홀하게 흘려버리는 수가 있다. 여기 보이지 않는 곳에 감추어진 여자의 가슴을 두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한 사나이가 있다. 한창 맞선을 보고 다니던 우리 집의 종업원이 그 주인공이다. 그의 고민은 보통 사람의 그것과 조금 색다른 데가 있다. 아직 누구한테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이라 약간은 엉뚱스럽기도 했지만 듣고 보니 고민스러워하는 그의 마음이 금방 이해되었다.
비슷한 처지의 친구가 결혼해서 아기를 낳았는데 부인이 젖꼭지가 좋지 않아서 분유를 먹인다고 했다. 분유를 먹이는 불편함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이 '돈 걱정'이라고 했다. 돈 걱정 않고 넘치는 사랑만으로 자식을 키울 수 있다면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 이런 속내를 눈치챈 옆의 장난꾸러기가 기발한 제안을 했다. 맞선은 얼굴 대신 젖꼭지를 먼저 보는 것이 순서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자기는 기어코 젖꼭지 선을 보고야 말겠다는 결의와 함께.
이들은 결혼 조건에서 얼굴이나 학력 또는 어떤 외적인 조건보다도 젖꼭지의 건강성을 중요하게 친다. 이유는 분유 값으로 지불해야 할 돈 때문이다. 그러나 돈 걱정 못지않게 더 중요한 그 무엇이 있다. 몸매가 망가진다고 또는 대용분유의 과대광고에 현혹되어 어미로서의 가장 엄숙한 '수유의 임무'를 소홀하게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다. 모유에만 함유된 면역성은 어떤 기술로도 재생이나 합성이 불가하다니까 면역기능을 타고나지 않은 갓난이에게 모유는 필수품이다.
모유는 아기의 성장을 위해서만 필요한 것일까?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고 한다. 어머니가 강한 것은 모성애가 있기 때문이다. 여자는 출산을 함으로써 모성애를 선물 받는다. 모성애는 가슴(유방)에서 샘솟는 신비(?)의 물질인지도 모른다.
나는 여자로 태어난 것을 후회한 적이 있다. 객지에서 아침식사를 하러 식당에 들어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한 경험이 있다. 여자가 첫 손님이면 재수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배고픈 사람 앞에서 남녀를 따지는 식당 주인의 비인간성에 화가 났다기보다 여자라는 이유로 같은 여자에게서 또는 남자에게서 배척당할 때 내가 여자라는 것이 싫었다.
그러나 아기를 낳고 엄마가 되었을 때 그런 생각은 바뀌었다. 생각이 바뀐 그 순간을 나는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어제까지의 생각이 180도 방향 전환을 해버렸다. 한마디로 세상에 대한 '새로운 눈뜸' 같은 것이었다.
출산 이후에 나는 부쩍 눈물이 많아졌다. 눈물샘의 둑이 터졌는지 눈에 보이는 것마다 눈물나게 했다. 하릴없이 쏟아지는 눈물은 얼마나 사람을 주책스럽고 해퍼보이게 하는지, 하지만 속수무책이었다.길에서나 차에서나 어디서나 모르는 여자들이나 아이들이나 세상사람 모두가 소중해보였다. 아이들은 모두 내 아이 같았고, 여자들은 모두 위대한 어머니로 보였다. 아무 데서나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온몸의 신경이 가슴을 향해 부풀면서 젖이 흘러내렸다.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는 눈물이나 유선의 범람은 아마도 나의 통제 능력 밖에 있는 듯했다.
눈물이란 무엇인가? 감동의 결정체가 아닐까. 눈물 앞에서는 무엇이든 용서되고 화해되고 녹아내린다. 눈물은 너와 나를 하나로 만든다. 천 마디의 말보다도 한 방울의 눈물이 설득력을 가지는 것은 이런 이유가 아닐까.
인간의 몸에는 일곱 군데의 에너지 중심이 있다는데 네 번째가 바로 가슴, 사랑과 자비가 일어나는 곳이라고 한다. 분만을 통해 네 번째 에너지 중심이 열린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냉정하고 이기적인 성격의 여자라도 분만의 순간만큼은 사라오가 자비가 샘솟는다고 한다. 지극한 고통의 순간을 넘긴 후에야 비로소 자비의 문이 열려 위대한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건강한 가슴을 찾아 이색적인 고민을 하는 진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음 직하다.
사랑과 자비가 넘치는 세상을 위하여 가슴을 잘 건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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