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곡의 농담 / 주인석
지신밟기를 보면 인간과 신의 경계가 느껴진다.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이쪽 세계의 인간과 함부로 나올 수 없는 저쪽 세계의 신이 묘한 교접을 하는 것 같은 감응이 인다. 구성진 가락에 절절한 소리가 그 경계를 허문 것일까. 신의 영역으로 미친 듯이 들어가는 한 남자가 있다. 넘지 못하도록 정해 놓은 영의 범위를 넘어야만 하는 절박한 심정은 분명 억울하고 원통한 일이 풀리지 못하고 가슴에 응어리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내가 무녀 한 사람을 만나고 난 다음부터다.
"집안에 요절한 여자가 있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리 집에는 요절한 사람이 없다. 그런데 무녀는 별의별 소리를 다했다. 무녀의 말은 한 판 굿을 해야 한다는 소리 같았다. 뜻밖의 말에 무척 의아스러웠지만 심심풀이로 찾아간 곳이라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집에 와서도 요절이란 말이 계속 마음에서 떠나지 않아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엄마께 물었다. 엄마는 '이상하다' 반, '맞다' 만을 섞어가며 사연을 들려주셨는데 내 기억 속에 두 사람이 살아났다.
막내고모와 고모부는 명절이나 집안 대소사마다 빠지지 않고 참석하셨다. 고모부보다 먼저 보이는 것은 중절모와 회색 두루마기였다. 펄럭거리는 두루마기 자락에 가려 고모는 보일 듯 말 듯했다. 옥색 치마저고리를 입은 작은 체구의 고모가 종종걸음으로 들어와 대청마루에 앉아야 고모가 왔다는 것을 알 정도였다.
고모부는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걸걸한 목소리를 가졌다. 굵고 거친 음성은 일 년 내내 목이 쉬어 있다고 착각할 정도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온 식구를 불러내는 특이한 방문임에도 우리 식구는 모두 문을 박차고 나가 고모부 내외를 맞이했다. 마루 끝에 선 나를 발견한 고모부는 한쪽 손으로 번쩍 안아 올리며 매년 똑같은 말을 하셨다.
"아직 멀었구마. 쪼매 더 묵어야 쓰것어."
이 소리를 시작으로 입담 좋은 고모부의 이야기는 온 식구의 얼굴에 밤새도록 웃음이 떠나지 않게 해 주었다. 나는 고모부의 무릎에 앉아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재미난 이야기들은 고모부의 쌍꺼풀 진 큰 눈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고모부는 전국 팔도 안 간 곳이 없다고 했다. 고모부의 눈에 찍힌 세상은 고스란히 이야기가 되었다. 고모부의 눈은 영상이고 백과사정이고 이야기책이었다. 고모부 옆에 아리잠직하게 앉은 고모도 간간히 양념처럼 톡톡 쏘는 이야기를 거들었다. 그 밤을 모두 묘사하기엔 기억과 문장이 짧지만 단 한 가지 잊히지 않는 것은 빨리 크고 싶어서 고모부가 있는 날은 밥을 꾹꾹 눌러 한 그릇씩 먹었고 그 일은 내가 처녀가 될 때까지 계속 되었다.
다음날 아침이면 고모부는 어김없이 '지신밟기'를 했다. 고모부의 지신밟기는 영혼과 영혼의 대화를 듣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한편 오페라 같은 굿이었다. 지금까지 고모부만큼 지신밟기를 잘 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신밟기는 음력 정월 대보름에 행해지는 민속놀이였지만 고모부는 장소와 때에 구애 받지 않고 놀이삼아 한 판 굿을 벌였다. 또 우리 형제들이 결혼을 하고 새집으로 들어갈 때마다 고모부가 해 주는 '축하선물'이기도 했다.
지신밟기는 땅을 주관하는 신을 달래서 복을 받고 악한 것을 몰아내게 하는 의식이다. 고모부는 가족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춤과 소리를 땅신에게 바쳤는데 처음엔 흥이 나서 함께 어깨를 들썩였다가 좀 지나면 숙연해졌다가 다시 흥이 오르면 춤을 추면서 마당이나 방에서 가족 모두가 한 덩어리가 되었다.
고모부의 지신밟기는 길놀이부터 시작되어 덕담이 이어지고 소원종이를 쓴 다음 그것을 소지하고 다시 길놀이를 하는 것이었다. 마당에 나가 꽹과리를 치며 고모부가 앞장서서 돌면 우리는 그 뒤를 따라 돌았다. 그러다가 고모부가 땅을 세게 밟으며 선창하는 소리에 우리는 후렴구 '붙듯'라는 말로 장단을 맞췄다.
"이 집에 내가 들어올 땐 꽹과리 소리 따라 만복이 따라 들어오고 이 집에 내가 나갈 땐 꽹과리 소리 따라 액운이 나가는디, 일 년이면 열두 달, 과년이면 열 석 달, 일 년 삼백육십오일 시시때때로 찾아드는 연액월액일액 삼재풍란 근심걱정 온갖 질병을 싹 쓸어다 저 현해탄에 풍덩 쳐 바아 버리고 이집 일 년 재수가 물 묻은 바가지에 깨 달라붙듯이, 화로에 엿 달라붙듯이, 처녀에 총각 달라붙듯이, 다갈다갈 붙으소서."
고모부가 춤을 추고 소리를 하면 묘한 감정이 일었다. 고모부가 땅을 눌러 밟으면서 '문 여소, 문 여소.'라는 말을 할 때는 가슴이 북받쳤다. 그것은 내지르는 소리였지만 속으로 눌러 담는 소리였고 막다른 골목에서 사람을 찾는 절절한 소리였으며 애곡의 농담濃淡이 있는 소리였다. 소리에도 짙고 옅음이 있고 춤에도 깊고 얕음이 있다는 것을 고모부를 통해 알게 되었다. 고모부의 지신밟기에서는 하나의 유희를 넘어 한恨같은 것이 보였다.
고모부는 고모와 결혼을 하고 새집으로 이사를 갔다. 그 집에 산지 얼마 되지 않아 고모는 병으로 죽었다. '이사를 잘못 갔다. 땅 신이 노했다.'는 등 갖은 소문이 나돌았다. 그 후 고모부는 한이 섞인 소리를 하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어느 집에 가든 땅신을 달래는 일이 제일 먼저라며 고모부는 지신밟기를 사명처럼 했다.
고모부가 고모를 잃은 슬픔을 가슴 한복판에서 명치끝으로 밀어내리고 있을 즈음 지금의 고모를 만나 재혼을 했다. 죽은 고모를 잊지 못했던 고모부가 선택한 길은 새로 맞이한 아내를 데리고 우리 할아버지를 찾아와 양딸로 삼아달라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새 고모는 내 고모가 되어 우리 집 식구가 되었다. 내가 태어나기 이전의 일이었으니 고모가 요절한 것을 나는 알 리가 없었다.
살면서 겪게 되는 어떤 일은 끝까지 모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나는 엄마를 통해 알게 된 고모의 일을 듣지 않은 척 기억 속에서 지우려 애썼다.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지신밟기를 볼 때마다 고모와 고모부의 일이 더 생생하게 떠올랐다. 고모부의 한풀이는 이루지 못한 사랑의 슬픈 곡조였다. 지신밟기로 그것을 풀어냈을 고모부를 생각하니 가슴에 맺힌 어떤 일을 끝까지 덮고 가는 것보다는 끄집어내서 푸는 것도 삶의 한 방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어떤 말이나 행동을 끊임없이 되풀이 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에서 곡조가 느껴지고 농담이 보인다면 그 사람은 어떤 응어리를 풀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것이 춤이나 소리로 승화되어 보이지 않고 엉뚱한 행동이나 잔사설로 나타나더라도 그 사람만의 한풀이임을 알아줘야 할 것이다. 어쩌면 푼다는 것과 풀린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 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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