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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문창호지를 보며 / 김홍은

문창호지를 보며 / 김홍은

 

 

 

건강한 여인의 희디힌 치아처럼 차마 옥빛까지 띤, 눈 위에 아이들이 그림과 글씨를 쓰고 있는 창밖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감나무 잎을 지필로 사용하였다는 정건鄭虔이라는 옛 사람의 지헤를 떠올렸다. 그러다 문득 아내가 따 넣은 단풍잎 등이 아직도 남아 있는 곱다운 창호지 문으로 눈길이 간다.

눈이 온 날 눈같은 색깔의 창호지를 보는 느낌은 마치 첫눈을 맞듯이 신서하다.

모든 일에 계면쩍기만 하던 어린 시절의 나였지만, 팔목만큼 굵은 소나무로 깎아 만든 팽이를 치며 행길 가 집에서 동네 아이들과 팽이 싸움을 신나게 벌이던 기억은 새롭다. 그때마다 팽이채는 닥나무 껍질이 제일 좋았고 닥나무 끈으로 칠 때마다 팽이는 윙윙 씩씩한 소리를 냈었다. 나는 그때 다른 아이들처럼 닥나무를 알지 못해 닥나무 끈을 맨 팽이채를 얼마나 갖고 싶어 했는지, 수염이 흰 신선 할아버지로부터 팽이채를 선물로 받는 꿈까지 꾸었었다.

고향집 문들은 아직도 창호지 문이 남아 있어 어린 시절의 달달한 기억을 되살리게 한다.

산 밑 외딴집에 장닭이 홰를 치면 어둠 자락을 밟고 새벽이 스미고, 그러면 어김없이 문창호지의 희미한 빛으로 용케 시간을 짐작하여 조반을 서두르시던 어머니.

깊은 밤 초겨울이나 꽃샘추위 바람이 불면 서툰 풀피리 소리처럼 울던 문풍지 소리는 그리도 무서웠다.

내가 자랄 때만 해도 마을 노인들은 새벽이면 얼어붙은 개똥을 주워다가 거름에 보태려고 벙거지를 쓰고 한쪽 어깨엔 짚망태기를 메고 동구밖을 자주 다녔다.

한 날은 이른 아침 새벽에 대문 밖에서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수선스러웠다. 잠시 후 동네사람 몇이서 흰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을 업고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오갈 데 없는 노인이 길에 쓰러진 것을 개똥을 주으러 나갔던 집안 어른이 발견했다는 것이다.

바람이 유난스럽게 불던 그날 밤, 노인은 죽고 말았다. 그가 죽던 날 밤은 문풍지가 너무도 큰 소리를 내며 울었다.

나는 그 후부터 문풍지는 '떨림'이 아니라 '울음을 우는' 것으로 생각되어 무서웠고, 밤이 되면 그 노인이 죽어간 사랑방엔 얼씬도 못했다. 그 후로는 줄 곳 문풍지가 울던 날 밤은 으레 가슴까지 떨었다. 그러나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날 때마다 한지로 바른 고향의 너덜너덜했던 낯익은 문이 떠올려지는 건 왠일일까.

한가위를 맞기 전 방문을 모조리 떼어다 마당 한가운데다 놓고 일 년 내내 그을린 문살에 붙은 한지를 사정없이 찢어내던 날은 공연히 마음이 후련해지고는 했다.

문살에 남아 붙어있는 창호지는 물을 뿌려 불린 다음 부러진 낫 끝으로 만든 창칼로 말쑥하게 긁어내고 먼지 낀 문살을 물걸레로 싹싹 닦아내는 일은 늘 어머니가 맡아서 하셨다.

아버지가 창호지를 바르시면 누나는 말려놓은 창호지에 짚 홰기로 만든 풀솔로 묵은 풀을 골고루 바르고, 풀솔로 문살도 대강 문질러 놓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풀칠된 창호지의 네 귀를 잡고 조심조심 문틀 위에 올려놓고 방비로 한가운데서부터 사방으로 비질을 한 다음 마른 걸레로 자근자근 누르신다.

이때는 언제 두 분이 말다툼을 했느냐는 듯 다정하기 이를 데 없었고, 말 한마디가 없으면서도 약속이나 한 듯 손이 맞음을 어린 나는 신기한 듯 지켜보았었다. 누나는 늦을세라 잽싸게 손잡이쯤에 구절초 꽃잎을 따다 넣고는 그럴듯한 무늬가 되게 창호지도 오려 붙인다.

아버지는 물을 입 안 가득 물으시고 물뿌리개처럼, -하며 창호지 위에 두 번 계속 풍기신다. 그럴 때면 언뜻 현란한 무지개가 하얀 창호지 위로 스쳐가는 황홀한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온 집안 식구가 동원되어 정성스럽게 단장된 문을 양지 바른 곳에 조심스럽게 세워 놓으면 메밀 잠자리 또한 부드럽게 앉는다.

그 시절의 나는 문바르는 날은 공연히 신바람이 났다. 그것은 묵은 종이를 찢어내는 일이 내 몫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시원한 가을바람이 방안을 마음 놓고 들락날락하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아서였다.

볕살에 마른 창호지는 팽팽했다. 두들기면 한가닥의 고은 장고소리가 잠겨있는 듯 했다.

문짝을 들여다 제자리에 달고 나면 못생긴 방 문 탓으로 다시 문풍지를 이어대는 것이 일쑤였다. 특히 문풍지가 너무 짧아도 바람을 제대로 막지를 못한다. 그러므로 알맞게 달아주어야 했다. 만약 문풍지가 찢겨져 나갔거나 짧을 때는 잠자리에 들 적마다 벗어놓은 양말짝으로나 속내의로 문틈을 틀어막고 자야 할 만큼 외풍이 심했던 겨울이었다.

문풍지는 때때로 아버지의 무딘 손끝에 찢겨 날싸하게 만들어져 담뱃대의 댓진을 빨아내는 소쇄기로 쓰이는 데도 요긴했다.

저녁햇살이 문에 비치면 손잡이 부분의 구절초 꽃잎은 피어나는 듯 생생히 곱고 짙게 눈길을 잡아끌었다.

어느 해의 겨울이던가, 누나가 시집가던 첫날밤 정성스럽게 바른 문이 동네 사람들의 침 바른 손가락으로 사정없이 문구멍이 났다. 그때 누나는 찢어진 문구멍을 흘낏 보고는, 얼굴을 빨갛게 붉히며 고개를 숙이고, 연분홍 옷깃의 자주빛 옷고름을 다시 고쳐 매었다. 누나는 자신이 구절초 잎으로 곱게 무늬를 만든 문창호지가 곰보자국처럼 뚫렸어도, 그걸 탓하지 않는 수줍음을 그때의 나는 도대체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로부터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천신만고 끝에 아내와 맞벌이로 장만한 집은 이중문 중 한쪽이 창호지를 바르게 되어 있었다. 그해 가을 아이들의 심한 장난을 우려해 망사로 바르고 그 위에다 겹대어 창호지를 바를 때 아내는 내 손을 멈추게 하더니 뛰어 나갔다. 정원에서 사루비아 꽃잎과 단풍잎 몇 장을 따다 그 망사와 창호지 사이에 넣기 위함이었다.

나는 수놓아진 꽃잎과 단풍잎을 바라보며 누나의 구절초 꽃잎이 붙었던 고향집 문창호지와, 문구멍으로 바라다 본 누나의 빨간 볼이 떠올랐다.

사군자를 배우는 아내가 고목에 매화꽃을 피우느라 밤늦었던 날, 집에 들어서던 나는 문살에 비치던 어머니의 모습 같은 아내의 그림자를 보았다. 아니 아내의 모습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온 밤 내 작은 가슴을 떨게 하던 그 무섭던 문풍지의 울음 소리는 끝내 들려오지 않는다.

늘 무엇을 잃은 듯 살아오던 내가 이 겨울에 들어서야, 비로소 잃어버린 그것이 무엇인가를 골똘히 짚어보고 "아 문창호지와 문풍지였구나."를 깨닫게 됨은, 먹고사는 일에 언제나 일상을 보내는 한 범인凡人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데 있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