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 대기 중 / 이길영
퇴근하여 늦은 저녁을 먹고 있는데 휴대전화기가 울린다.
“약속한 것하고 너무 다르지 않습니까. 요양보호사가 시간도 안 지키고 일찍 가버리고 생색이나 내고 밥 갖다 주기 싫어서 빵이나 사다주고 이러려면 그만 두이소.”
그리고는 철컥 전화가 끊어진다. 피곤한 와중에 머리가 띵해진다. 가슴이 답답하다. ‘인제 그만 다른 기관으로 가십시오.’ 하고 밀어내고 싶다. 정나미가 뚝 떨어지는 것이 화가 나서 진정하기가 싶지 않다.
그 어르신을 만난 지가 한 달이 되어간다. 우리 기관의 요양보호사가 장기요양제도 이전부터 가끔 돌보아 드리다가 인증서가 나왔기에 책임자인 내게 연락을 했었다. 보호자인 큰아들이 혼자 사는 어르신의 아파트에서 만나자고 했다. 먼저 보호자 며느리를 만났다. 생각했던 인상하고 달랐다. 오십 대 한의사 남편을 둔 여자의 모습은 깔끔하고 단정했지만 어떤 우울함이 느껴졌다. 별난 시어머니와 효자인 아들 사이에서 속을 무던히도 썩이고 사는구나 싶어 나는 주제넘게 연민의 감정을 보냈다. 그녀는 남편이 우리와 어떤 계약을 하건 아무런 언급 없이 이웃아파트인 자기 집으로 건너가 버렸다. 누워 계신 어르신은 무엇인가 중얼중얼 무엇을 계속 주문하고 있었다.
보호자인 아들과의 약속은 아침에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아침밥을 챙겨 드리면서 점심을 갖다 놓으면 우리 기관 요양보호사가 점심을 챙겨 드리고 그 외 기본 케어와 저녁을 좀 챙겨주면 좋겠다면서 잘 부탁한다고 하고 헤어졌다. 마침 같은 아파트의 요양보호사가 있어서 방문케어를 시작했다. 며느리는 점심시중을 위하여 방문하지 않아도 되었고 아들은 저녁 퇴근시간에 어머니에게 꼭 들리지 않아도 되었다. 요양보호사는 밤에도 어르신의 안부를 물으며 열심히 근무하는 듯했는데 어르신은 불만을 자꾸 늘어놓았다. 네 시간을 채우지도 않고 삼십 분 만에 간다고 하고 말도 함부로 한다면서 어깃장을 놓곤 했다. 쉬는 일요일의 호출에도 나는 그 먼 아파트까지 바나나우유 묶음을 들고 날아가곤 했다.
어르신의 하소연도 들어주고 보호자 아들의 요구와 불만도 들어주고 요양보호사의 하소연도 들어주었다. 보호자 아들에게 말했다.
“어머님 말 다 믿으시면 안 됩니다. 아드님이 매일 오다가 요양보호사 때문에 아드님이 안 와도 되니까 어깃장을 놓는 것도 있습니다.” 보호자인 아들에게 설명해 드렸더니 그는 어머니 말에 더 무게를 두는 듯 내 말에 그리 비중을 두지 않았다.
급기야 어르신과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요양보호사가 사자 대면을 하기에까지 이르렀다. 모두가 함께 모인 그 자리에서의 어르신의 말은 사뭇 달랐다. 어르신이 아들에게 한 이야기 중 며느리는 밥도 안 갖다 주고 들여다보지도 않고 간다 하고, 요양보호사는 빵 쪼가리나 갖다 준다 한 이야기, 요양보호사가 저녁 시중들기 싫어서 아이들이 먹다가 남은 초밥이나 샌드위치 갖다 줘서 그것 먹고 배탈 났다는 등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어르신은 꼭 특정 제과점의 샌드위치를 사오라고 해서 맛있게 드신 일이 네 차례나 있었다.
“오늘 집에서 만든 유부초밥이 맛있어서 어르신께 드리려고 하니 며느님 저녁 준비하지 마세요. 하고 갖고 갔을 때도 맛있게 드셨잖아요.” 하고 요양보호사가 다그치자 모든 상황을 처리한 아들은
“어머니가 이럴 줄 몰랐습니다. 나는 한다고 했는데 어머니 말 때문에 여러 사람에게 못 할 말 다하게 했습니다. 저 이제 생활비만 드리고 다시 안 옵니다.” 하고 휭 나가버렸다.
지난 7월부터 노인 장기요양보험제도가 새로 시행되었다.
65세 이상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이 건강보험공단에 신청하면 상태에 따라 1급 2급 3급의 판정을 내린다. 등급 인증을 받은 어르신은 등급에 따라 요양시설, 주간보호시설, 재가 방문요양 등 기관에서 서비스제공을 받을 수 있다. 비용은 건강보험 공단에서 85% 일반개인이 15%를 부담하고 기초생활대상자는 지자체에서 전액 부담하는 제도이다. 이에 각 기관에서는 선점하려고 경쟁이다. 어르신을 자기 기관으로 영입하려는 또 다른 기관의 요양보호사의 말에 어르신을 솔깃하게 하고 있었다. 원래 얕은 머리 쓰시는 어르신인데 더 나아 보이는 다른 기관의 요양보호사의 역할도 부채질의 한몫을 하고 있었다.
나는 노인장기요양기관의 재가 서비스기관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일을 처음 시작하면서 이런 일들을 짐작하고 각오는 했지만, 나의 시간계획이 무용지물이 되는 수가 늘어가자 나도 지쳐 있기는 마찬가지다. ‘다른 기관 아무 요양보호사에게 오라고 할란다.’ 하는 어르신의 말에 ‘예 그렇게 하십시오.’ 라고 하고 싶은 생각은 터질 듯하지만, 운영을 그렇게 할 수는 없다.
두 달째 나는 늘 대기 중이다. 사무실 전화도 휴대전화기에 착신시켜 놓고는 24시간 전화를 받는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이 계시는데 어떻게 하면 장기요양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의 상담, 신청대행 접수, 요양보호사와 대상자의 사정변동으로 이동 교체, 불만접수, 병원에 가야 하니 동행 해 달라는 요청, 어르신 댁의 방문요구가 휴대전화기의 울림에서 내 스케줄은 해지된다.
“어이구 와 주셨네. 천사다.” 반가워 손을 꼭 잡는 어르신.
“나 다른 데로 갈라고,” 샐쭉하게 계시는 어르신.
비상 출동 속에서도 행복감과 비애감이 함께 한다.
그래도 나는 노인을 좀 더 행복한 삶으로의 길에 길잡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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