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방 / 강여울
아들의 방에는 남으로 창이 나 있다. 창 밑에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어 사철 아이의 방을 들여다본다. 온 식구의 관심을 받아서 인지 같은 때 심어진 주변의 은행나무들 보다 훨씬 무성한 잎을 오래 단다. 때문에 온 식구가 가장 많이 들락거리는 방이 아들 방이다.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자주 드나드는데, 이유는 컴퓨터와 책상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로던 아들 방에 식구들이 자주 드나드는 것을 아들은 환영하고 싶지 않아 한다. 가끔, 컴퓨터를 두고 서로 쓰겠다고 모자가 다투기도 한다. 주로 아들이 게임을 하고 있을 때를 노리기 때문에 아들은 조금 버티다 양보를 하는 편이다. 또, 아들 방에만 있는 침대 때문에 부자지간에 다툼도 생긴다. 아들은 창밖의 은행나무를 좋아한다. 멀리 보이는 산과 침대에 누워 바라보는 하늘도 좋아한다. 그래서 아들의 자기 방 사랑은 대단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남편이 집을 팔자는 제의를 여러 번 했는데 그 때마다 아버님, 어머님, 다음으로 아들이 심각하게 반대를 했었다.
아들에게는 초등학교 2학년을 마칠 때까지 자기의 방이 따로 없었다. 지붕만 기와를 얹은 초가집, 마당 깊은 흙집에 살 때는 할아버지 곁에서 잠을 잤고, 내가 책방을 시작하던 여섯 살쯤부터는 책방에 딸린 작은 방에서 가재도구도 없이 네 식구가 함께 잤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터를 사서 남편이 방을 네 개를 넣어 설계해 지은 집이다. 화장실이 딸린 안방은 아버님 어머님께서 사용하시고, 안방보다 조금 작은 우리 부부의 방, 아들과 딸의 방이 있다. 딸이 아직 혼자 자기를 싫어해 딸의 방은 피아노와 창고처럼 잡동사니로 가득하다. 그래서 우리 집 식구들 중에 아들이 유일하게 제 혼자의 방을 갖고 있는 셈이다. 나는 아직도 창이 있는 벽을 제외하곤 책이 가득한 책장, 그리고 창 아래 컴퓨터가 놓인 책상이 있는 나만의 방을 꿈꾼다.
아들은 제 방이 생기기 전 엄마와 함께 있기를 좋아했다. 방뿐만 아니라 모든 엄마의 짜투리 시간을 공유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엄마보다는 친구들을 좋아했고, 나와 있어도 얘기를 하기보다는 컴퓨터 게임을 즐겼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책읽기를 무척 좋아하더니 중학생이 되고 부터는 학교와 학원 공부까지 더해져 책 읽을 시간이 없다며 틈틈이 인터넷 게임으로 머릴 식히려 했다. 집에만 오면 먼저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 접속을 하는데 무조건 못하게도 못한다. 요즘 아이들이 나누는 대화의 대부분은 인터넷에 관한 것이라 모르면 왕따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성격인데 대화마저 통하지 않아 더욱 외톨이로 만들어선 안 되겠기에 지나치지 않는 한 그대로 둔다.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인 딸아이도 아들을 따라 가끔 게임을 하곤 한다. 다행인 것은 딸아이는 딸아이에게 맞는 것을, 아들은 아들이 좋아하는 취향의 게임을 구분할 줄 안다는 것이다.
컴퓨터를 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아빠는 아들 방의 침대에 눕기를 좋아한다. 체질적으로 침대보다 온돌방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에 맞춰 우리 부부의 방에는 침대가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응접실에 앉아 TV나 신문을 보다가 재미가 없어지면 아들 방으로 와선 키보드를 타닥거리고 있는 나나 아들에게 말을 걸다 더러 잠이 들기도 한다.
이렇게 나와 아빠에게 방을 빼앗기고 우리 부부의 방에서 책을 보던 아들이 잠잘 시간이 되면 제 방으로 와서 자기 방에서 나가달라고 한다. 아들은 제 방이 생기고부터 제 침대가 아니면 잠을 못 자는 버릇이 있다. 학교에서 수학여행이나 캠프를 가면 꼬박 밤을 새운다고 한다. 방학 때 외가를 가도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다 날이 밝을 무렵이 되어야 겨우 눈을 붙이곤 한다. 그래서 잠자리만큼은 좀처럼 양보를 하지 않으려 한다.
며칠 전 새로 시작하는 가게 내부 공사로 몹시 피곤했던지 그이가 부지런히 자판을 두드리는 내게 몇 마디 말을 하다가 아들의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한참 손가락에 탄력이 붙어서 빠르게 문장을 엮어가고 있는데 아들이 아빠를 흔들어 깨웠다. 아빠 방에 가서 주무시라며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남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엄마, 업을 수 있게 좀 도와주세요.” 했다. 나는 아들이 아빠를 업을 수 있을 지 궁금했다. 남편도 아들의 힘을 시험해보고 싶은지 계속 자는 척 아들에게 몸을 맡겼다. 아들은 아빠에게 등을 디밀고 아빠의 팔을 제 어깨에 얹게 하더니 몸을 일으켰다. 넘어지면 어쩌나 하는 나의 걱정에 일격을 가하듯 아들은 가볍게 제 아빠를 업고 일어서는 것이었다.
내가 직장에서 돌아오면 깡충거리며 신난다! 하고 만세를 부르던 아이, 아빠가 집안의 어려운 일로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비슷한 남자의 뒷모습을 보면 아빠인가 하고 달려가 확인하고는 고개를 숙이던 그 꼬마가 벌써 제 아빠의 키를 훌쩍 넘어 아빠를 업는다.
세월은 나의 닳아가는 모습보다 아이들의 커 가는 모습으로 읽게 되는 것인 것 같다. 아직도 어리다고만 여겼던 아들인데 어느새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그만큼씩 자라고 있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라곤 한다.
어느 날 아들이 학원 차를 놓쳐서 내 차로 데려다 주는 중이었었다. 술에 취한 남편이 전화를 해서는 아무 것도 아닌 일로 심한 잔소리를 하며 화를 내었다. 전화를 하지 않아도 되는 내용이었으므로 운전중이라며 전화를 끊었다. 그러자 남편은 다시 전화를 해서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고 고함을 질렀다.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나도 버럭 맞받아 소릴 지르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도 열이 올라 혼자 중얼거리는데, 뒤에 타고 있던 아들이 한 마디 했다. “엄마까지 왜 화를 내고 그러세요. 아빠가 취해서 그렇잖아요. 술 깨면 잘못한 것 알고 미안해하실 텐데 그때까지 참아주면 좋잖아요.”
시인의 詩句를 빌리지 않더라도 아들은 어른의 아버지임을 바로 곁에서 수시로 상기시켜준다. 내가 아들의 인생은 아들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이야기 하면, 아들은 엄마도 엄마의 인생을 위해서 엄마가 하고픈 것도 하며 살라고 한다. 아들의 마음속에 어느새 내가 함부로 들지 못할 아들만의 방이 있음을 깨닫는다. 그 방에 남으로 창이 나 있어서 신선한 바람이 드나들고, 언제라도 세상을 환하게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온 가족이 즐거이 드나드는 제 방처럼 누구라도 참 좋아하는 그런 맘의 방이면 더 좋겠다. 또 그 방에 빛이 잘 들어 습하지 않고, 밤이면 창 가득히 쏟아지는 별을 품고 잠들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 지금 창밖에 다닥다닥 무리지어 영글고 있는 은행처럼 그렇게 보이지 않는 아들만의 방 창가에도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나무 한 그루 있어 그 방이 자연과 함께 하는 생명의 방이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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