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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르느아르의 손 / 송복련

르느아르의 손 / 송복련

 

 

 

손을 보면 표정이 다양하다. 그 사람의 이력서처럼 삶을 짐작케 한다. 무용수가 허공에 그리는 손짓과 의자에 앉아 컴퓨터를 두드리며 사무를 보든지 호미와 낮을 들고 밭일을 하는 농부의 손은 다르지 않던가. 내가 감동 받았던 손은 시스티나 성당에서 '아담의 창조'를 처음 보았을 때였다. 신비스러운 기운이 느껴지던 천정의 그림은 하늘나라인 양 둥실둥실 떠다니는 듯했고 아담이 뻗은 손을 향해 신의 손이 닿을 듯 말 듯했다. 갓 태어난 아담에게 강한 생명의 에너지를 불어넣는 장면이다.

얼마 전 한 예술가의 사진 속에 빠져든 일이 있다. 가느다란 화필을 들고 있는 화가의 손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소매로 손목을 감싸 붓과 함께 묶은 손은 결박되어 뿌리가 드러난 나무처럼 울퉁불퉁하고 뒤틀어졌다. 더 이상 그림을 그릴 형편이 못되는데 붓을 잡고 있는 것이다.

휠체어에 앉아 모델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눈빛은 살아있었다. 창밖을 향해 앉아 있는 중년 여인에게 몰입한 화가의 모습이다. 화폭에는 시선을 멀리 두고 생각에 잠긴 여인이 앉아 있었따. 한 손에는 읽고 있던 책을 잠시 무릎에 엎고 팔걸이에 늘어뜨린 다른 손은 길고 가늘었다. 책 속에 주인공이 되어 헤매고 있을 여인의 모습은 거의 완성된 듯한데 아직 미진함이 남았을까. 담아내지 못한 여인의 아름다움을 완성하기 위해 화가는 붓을 잡고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 르느아르이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아름다운 색조들이 버무려져 무척 따뜻하다. 특히 여인들을 보고 있으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빨강, 노랑, 파랑, 초록의 색조들이 선명하게 물결치는데 특히 붉은색의 표현에 뛰어나 근대 최대의 색채 화가로 불리는 그, 소녀의 빛나는 눈과 환한 표정이나 중년 여인들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고 있으면 행복감이 밀려온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짐작이 간다.

불행하게도 그의 말년은 류머티스 관절염 때문에 손이 구부러지고 비틀어져 심한 통증으로 시달렸다. 여느 환자 같으면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고통도 그의 붓을 꺾지 못했다. 그의 뒤에서 아내 사리고는 끝없는 배려와 격려를 보냈다. 나이가 들면서 심각한 관절염에 시달리는 남편을 위해 남 프로방스 지중해가 바라보이는 카네쉬르메르로 거처를 옮겼다. 비가 매우 적은 곳이라 조금이나마 관절염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아내는 언제나 뒤틀린 그의 손에 붓을 묶어주었고 그의 그림은 여전히 전성기 시절의 붓 터치를 느낄 수 있었다. 노환과 지병 따위는 그에게서 창작열을 빼앗지 못했기에 오묘한 색채로 생명이 약동하는 세계를 계속 창작해냈다.

오래 전 손이 오그라드는 끔찍한 경험을 했다. 화상을 입었던 그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몸서리가 쳐진다. 곧바로 수돗물을 틀어 열을 식혔지만 손바닥은 점점 뻣뻣해지고 뜨거워 감당할 수 없었다. 병원으로 달려가는 동안, 통증으로 펄펄 뛰었다. 치료받는 내내 손이 잘못 될까 노심초사했던 일은 잊을 수 없다. 새살이 돋아날 무렵, 오므린 손을 펴려고 하면 거즈에 피가 배어나 쓰렸는데 의사는 진물로 말라붙은 거즈를 사정없이 잡아당기고 나서 그 위에 소독약을 발랐다. 지옥 같은 치료가 두려워 멀리서 병원 간판만 보여도 외면했다. 그러다 다 나아갈 때쯤이다. '이제 손금이 없어지면 팔자가 바뀌려나.' 은근히 기대할 만큼 여유를 되찾은 건 참으로 다행이었다.

만약 내가 르느아르와 같은 상황이 된다면 그처럼 작가정신을 보여줄 수 있을까 싶다. 역사의 한 획을 그은 대가이면서도 미진함이 남아 있었던가. 끝나지 않은 예술가의 길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사진이다. 오로지 그리고 또 그리는 일만이 자신이 할 일이라면서 나에게 무늬만 작가로 살 거냐고 꾸짖으며 쓰고 또 쓰라고 정색을 한다. 그저 나이와 시간 타령만 하며 작가의 문지방을 겨우 넘어서 놓고 툭하면 붓을 꺾은 듯 게으름을 피우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