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調和)와 화쟁(和諍) / 권화송
서정주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이『신라초』이다. 시인은 이 시집을 통해 한국의 전통적 정서의 연원을 신라정신에서 구하고 있다.
전생․차생과 후생의 삼세 인연으로 이어지는 신라의 영원주의를 시로 형상화 하고 그것을 우리 한민족의 뿌리로 이어가고자 한 시인의 의도를 당시 문단에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로 인정하였다.
시인의 감성이 아니더라도 고려청자와 조선조의 한글을 제외하고는 신라문화보다 우위에 둘 것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신라의 정신은 화랑도에서 볼 수 있듯이 충효사상과 신의, 그리고 살생을 가릴 줄 알고 의를 생명보다 중히 여기며 국가사회에 이바지하는 강렬한 봉공정신이었다.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 불교의 발달과 함께 국학이 설치되는 등 유교의 정치이념을 강조하고 왕도정치의 구현을 위한 입장에서 유학이 장려되었다.
불교는 그 동안의 귀족중심의 신앙에서 벗어나 원효의 정토사상을 통하여 대중화하였다. 전체 불교를 하나의 진리에 귀납하고 종합하여 자기 분열이 없는 보다 높은 입장에서 조화를 이루는 원효의 화쟁(和諍)사상은 일반 민중을 중심으로 하는 화합사상이기도 했다. 불도는 광탕무애(廣蕩無碍)하여 해당되지 않는 것이 없어 모든 것을 두루 포용한다. 만법은 결국 하나로 귀일한다는 논리이고 보면 그의 사상이 불교 종파 내부에서만 타당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원효는 만법유식을 깨달은 후 요석궁에 들기 전에 “누가 손잡이 빠진 도끼를 빌려 주면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깎아내리라(誰許沒柯斧 我斲支天柱)”라고 외쳤다. 그 후 요석공주와 해후하여 신라의 현인이요, 우리나라 유학의 기초를 튼튼히 하여, 나라의 큰 기둥과 같은 인물이 된 설총을 낳았다. 원효의 태생지로 알려진 압량 불지촌은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의 한 언덕받이인데 원효가 지었다는 금당(金堂)자리가 있고 그 밑 골짜기에는 설총의 출생지로 전하는 자리가 있다.
신라 경덕왕(742-765) 때에 이 고장이 기화현(其火縣)에서 자인현(慈仁縣)으로 개칭되었다 하니, 설총은 생몰 연대가 미상이나 원효(617-686)의 연대를 미루어 고람하면 설총의 사후에 얼마 안 되어 자인현으로 개칭된 것 같다. 이는 아버지 원효의 종교인 불교의 자(慈)와 아들 설총의 종교인 유교의 인(仁)을 따서 정한 것이다. 이를 미루어 볼 때, 신라의 불교와 유교가 조화롭게 마치 부자간의 두터운 정의와 같이 함께 공존하였으며 일반 민중도 불교와 유교를 함께 겸수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자인(慈仁)이라는 현명이 나라에서 정한 것이든 자연발생적이든 간에 후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참으로 크다. 유불(儒佛)이 조화롭게 발전한 신라정신을 우리 후손에게 교시하는 것은 이닐까?
우리 역사를 뒤돌아보면 불교와 유교의 두 바퀴가 상호 보완관계를 이루면서 조화롭게 굴러갔을 때는 나라가 태평하고 부강하며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는데, 그 궤도를 일탈하거나 어느 하나가 지나칠 때는 꼭 폐단이 생겼다.
고려 말에는 빈번한 불사가 있었고 승려의 타락과 불교의 미신화 및 장생고(長生庫)의 전리가 민간 경제에 끼치는 폐해와 부패 등 폐단이 늘어났다. 드디어 정몽주, 정도전과 같은 유학자들의 강경한 척불론이 대두되어 조선조에 와서는 극단의 숭유억불정책으로 기울어졌다. 그러나 아름답고 조화로운 신라정신인 자인(慈仁)의 도리로 볼 때, 지나친 숭유억불은 자식이 아비를 핍박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어찌 필연적인 과보가 없을 수 있겠는가. 무아(無我)와 공(空)도리가 없는 유교의 흑백논리만으로는 당쟁이 끊일 날이 없었고 허례허식에 치중하는 부유(腐儒)를 면치 못하였다. 반상 차별과 상공인 천대, 아집과 독선적인 사고방식으로 외세와 세계대세에 눈이 어두워 결국 나라까지 잃고 말았다.
일제식민치하에서 우리의 독립투사들은 뼈아픈 민족성에 대한 반성과 국권회복을 위해 생명을 바쳐 싸웠다. 그 결과 조국은 되찾았지만, 광복 후 극우와 극좌로 갈라져 분단국이 되었다. 남한에서도 자칫하면 진보니 보수니 하면서 이념적 대립이 있고 지역별, 계층별 끊임없이 분열하여 반목하고 있다.
신라 때, 유불(儒彿)의 두 수레바퀴가 잘 굴러가듯 민족 전체가 원효의 화쟁(和諍) 사상으로 돌아가 조화와 상생의 원리로 하나의 수레로 한 덩어리로 뭉쳐져 굴러간다면 분단국의 수치도 씻고 세계 속의 대한민국으로 우뚝 설 수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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