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뱅이 언덕아래 / 문은주
늘 궁금했다. 그 마당은 지금쯤 이 계절의 어떤 모습을 담고 있는지, 가까이 두고 매일매일 둘러보고 싶다는 소망은 가끔 꿈속에 선하게 왔다가 사라지곤 한다. 며칠째 불어왔던 훈풍은 노란 꽃망울을 터뜨렸다. 봄이 오려면 아직 좀 기다려야 하는데 왜 그리 성미가 급한지 어르면서 달래고 싶었다. 언제 찬바람이 불어와서 어쩌면 생각지 못한 하얀 눈이 내릴지도 모른다. 그때는 꼼짝없이 이 추위에 당할 수밖에 없다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서둘렀다. 남편을 재촉해 예정에도 없던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로 향했다. 골목길에 들어서니 돌로 쌓은 담장이 이어진다. 낮은 언덕이 보이고 그 아래 익숙한 감빛 슬레이트 지붕이 보인다. 이곳에 오면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걸음이 빨라진다. 집 들머리에는 커다란 바윗돌이 따스한 햇볕을 가만가만 모은다.
주인 없는 마당에는 한 무더기 개나리가 간간이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이한다. 성미 급한 꽃망울엔 간밤에 소리 없이 찾아왔던 숫눈이 목화송이처럼 피었다. 꿈속에서 보았던 장면이 투영되면서 어느 것이 꿈인지 헷갈려서 혼돈이 인다. 이 집 주인장이 보면 분명 안타까워 한 말씀 하실 게 분명하다. ‘그러니까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고 좀 따스하다고 그렇게 냉큼 오는 게 아니라고.’
이 집 주인장은 권정생이다. 흙집은 살아생전 그 모습으로 자연과 더불어 오롯이 남았다. 도쿄 빈민가에 태어나 광복 직후 귀국했지만, 가난 때문에 가족들과 헤어졌다. 객지를 떠돌다가 안동 일직 교회의 문간방에 살며 종지기가 된다. 외풍이 심해 겨울엔 귀가 동상에 걸렸다가 봄이 되면 나았다. 결핵과 늑막염의 후유증으로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그곳에서 ‘강아지 똥’과 ‘몽실언니’를 썼다.
마을 청년들의 힘을 빌려 직접 집터를 다지고 흙벽을 쌓아 슬레이트 지붕을 얹었다. 빌뱅이 언덕 아래 작은 오두막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져 본 선생의 집이었다. 낡은 두 쪽짜리 격자 문 위, 반으로 접힌 하얀 종이에 힘주어 썼던 선생의 성함은 세월의 더께에 얹혀서 점점 빛이 바랬다. 반듯한 문패라도 하나쯤 장만해도 될 터인데 그것마저 욕심이라 여겼을까?
한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진 섬돌에는 시들해진 꽃다발과 새 책 한 권이 놓여 있다. 누구의 책일까? 조심스레 첫 장을 넘겨본다. 어느 동화작가의 헌정 책이었다.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이 동화책을 펴냅니다. 선생님의 아이들에 대한 깊은 사랑 내내 새기면서 좋은 동화책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살짝 찢어진 창호지 틈으로 안을 들여다본다. 작은 앉은뱅이책상 위에서 선생님의 바보 같은 미소가 답하고 있다.
지푸라기 섞인 흙벽을 따라가니 장작이 쌓여 있다. 작은 나무문을 여니 흙냄새가 확 풍겨 나온다. 어두컴컴하고 적막함이 배여 있는 좁은 그곳에서 선생은 글을 읽고 썼다. 늘 병마에 시달려야 했던 선생은 하루 글을 쓰면 이틀은 누워 있어야 했다. 집이 생기니 마음대로 외로울 수 있어서 좋다고 하셨다. 외로운 마음을 원고지에 꾹꾹 눌러 썼을 것이다. 가끔은 혼잣말도 하셨을 것이다. 흙벽이라서 다행이다. 갈라진 틈은 선생의 이야기를 들어 주었을 것이다. 쟁여 놓은 사연들이 많을 텐데 모든 것은 멈췄다.
나에게 집은 어떤 존재인가? 유년 시절, 집은 따스한 엄마 품속 같은 곳이었다. 나만의 가족을 이루었을 때 집은 우리란 울타리를 만들었다. 경제적 위기가 와서 잠시 우리 집을 떠났을 때 언제든 그곳에 돌아가기 위해서 ‘집’만은 그대로 두자는 불변의 다짐이 있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다. 집은 내 마음의 안식처요 이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내어주는 공간이다. 우리는 주말 가족이다. 뿔뿔이 흩어졌다가 주말 저녁이면 어김없이 한 곳으로 모여든다. 그곳에 집이 있기 때문이다.
선생의 가장 절실한 꿈은 온 가족이 함께 모이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꿈은 끝내 이루지 못했다. 형들은 일본에서 돌아오지 못했고 엄마는 일찍 돌아가셨다. 동생의 혼인을 위해서 집을 떠나 있어야 하였던 선생님, 아픈 몸을 이끌고 걸식을 하셨던 선생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린다. 이 작은 오두막집을 마련했을 때 얼마나 벅찬 감정을 느꼈을까? 집은 선생을 똑 닮았다. 방도 작고 문도 작고 화장실도 작다. 그러나 자연에 내어준 선생의 마음은 넓다. 풀 한 포기, 작은 벌레도 소중히 여겼던 선생의 배려는 소리 없이 다가와 벅찬 감동을 준다.
여기 흙집에는 담장이 없다. 은행나무, 산수유, 앵두나무가 빙 둘러있다. 누구나 들어 올 수 있다. 집 안으로 앞산이 들어오고 마당 한가운데에 별이 쏟아진다. 빌뱅이 언덕을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다. 집 옆을 휘감아 돌아가는 시냇물에 발 담그고 놀다가 맨발로 집에 뛰어올 수도 있다.
이 세상 딱 하나 선생의 것이었던 흙집에 옆집 강아지가 똥을 누고 간다. 머지않아 산수유도 피어 있을 것이다. 민들레도 하늘의 별처럼 빛날 것이다. 그 모든 것을 놓치지 않고 보고 싶다. 선생은 요술을 부리고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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