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열 / 조이섭
서둘러서 잘되는 일이 어디 있을까. 그리 바쁜 일도 아니었는데, 도깨비에게 홀렸는지 급하게 계단을 오르는 도중에 오른쪽 장딴지가 뜨끔했다. 어쩌다 다리에 쥐가 나서 겪었던 통증과는 양상이 달랐다. 모임을 파하고 식당으로 이어진 뒤풀이 장소에서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올 때는 운전하기조차 불편할 정도로 심했다. 밤새 찜질을 하느라 새벽녘에야 설핏 잠이 들었다.
아침에 무심코 일어나다가 질겁할 정도로 아파서 “아야”하는 비명이 절로 나왔다. 자다가 얻은 병이라더니, 하룻밤 사이에 어디 의지하지 않고는 일어서지도 걷지도 못하는 불구가 되고 말았다. 오후에 아들과 같이 간 정형외과에서 종아리 근육이 파열되었다면서 반깁스를 해 주었다. 활을 순간적으로 너무 세게 당기면 시위가 터지거나 활대가 부러져버리는 것과 같다고 했다. 정상으로 회복되는데 한 달 정도 걸리고, 재발도 잦은 부위이므로 종아리 근육을 될 수 있으면 쓰지 말라고 했다.
거실 소파에 앉아서 다리를 높이 올려놓고 있으려니 어디 나무랄 데 없는 완벽한 병자 모습이었다. 반깁스를 했다고는 하나 발바닥에서 장딴지로 전해오는 통증은 그대로였다. 그 모양을 쳐다보던 아들이 빙긋이 웃으며 놀렸다.
“아버지도 이제 늙었네요.”
“이놈아,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이건 사고야 사고.”하고 큰소리쳐 보았으나 서글픈 기운이 온몸을 적셨다. 아내와 아들의 눈길이 왠지 불편해서 티브이 리모컨만 만지작거리는데 웬 놈의 화장실은 그렇게 자주 가고 싶은지…….
바깥출입을 못 하게 되니까, 왜 그리 가야 할 데도 많고 할 일이 많이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이것도 미룰 수 없고 저기도 빠지면 안 될 일투성이다. 하루라도 빨리 나아야겠다는 마음이 앞섰다. 우선, 냉장고에서 얼음을 가져다 냉찜질을 했다. 약 상자를 옆에 끼고 멘소래담을 발라 마사지를 하고, 파스를 덕지덕지 붙였다. 급한 마음에 서두르다가 이렇게 되었다고 자책하던 것은 어디로 멀리 가버리고, 어느새 빨리 나아야겠다고 조급증을 내는 것을 보니 타고 난 마른 성미는 어쩔 수 없나보다 하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당장 큰일이 난 것은 아내였다. 요즘 쌍둥이 손녀 보는 일에 부부가 함께 동원되었다가 이제부터는 오롯이 아내 몫이 되고 보니 황당한 모양이었다. 아내 혼자 아침 일찍 손녀를 보러 가고 나 혼자 집에 남았다.
집안에서나마 움직여 볼 요량으로 양손에 등산용 지팡이를 짚고 다리를 떼 보려 했다. 한쪽 다리가 불편하면 성한 다리 하나로 지탱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의 변이었다. 성한 다리 하나에 의지하고 서 있기만 해도 당장 엉치께가 묵직하니 무거워졌다. 아픈 다리와 발에 힘을 조금이라도 분산시켜야 한 발짝이라도 떼든가 지탱하기가 수월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걷고 움직이는 것이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는데 주방에 물 한 잔 마시러 가는 것도 이리 고통스러울 줄이야.
두 개의 다리는 따로따로지만, 그 역할은 서로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는 존재였다. 아무리 부족한 짝이라도 없는 것보다야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는 아내가 바깥에 모임이라도 안 나가나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내가 꼼짝을 못하고 보니 아내의 부재가 아픈 다리처럼 크게 다가왔다. 서로 다른 개체가 만난 부부도 따로 또 함께인 존재임을 새삼 알겠다.
장딴지 파열이라는 것은 장딴지의 가지런한 근육 중 어느 한 군데가 깨어지거나 갈라져 터지는 것을 말한다. 깨어지고 갈라지는 것은 순간이지만, 그 고통은 말할 수 없이 컸다. 당장 가고 싶은 곳 못 가고, 해야 할 일을 모두 다 못하게 되었다. 그것으로 인한 금전적, 시간적 손해와 불편함은 말할 것도 없고 주위 사람들에게 끼치는 걱정 등의 폐해는 또 어떤가. 게다가 한 번 파열된 것은 아물기도 어렵다.
모름지기 건강이든 인간관계든 간에 깨어지고 갈라지기 전에 조심하고 배려할 일이다. 사소한 오해나 순간적인 감정에 치우쳐 관계가 순식간에 금이 가거나 깨어진다. 아무리 좋았던 사이라도 한번 깨어진 관계는 점점 골이 깊어지기 일쑤고 마침내 원수가 되기도 한다. 나중에 그 골을 메우기 위해서는 열 배, 스무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집안에서 볼일을 보자면 필요한 동선을 잘 헤아려 한 걸음이라도 줄여야 했다. 주방의 불을 켤 때는 벽까지 가지 않고 등산지팡이를 쭉 내밀어 스위치를 올렸다. 커튼도 적당한 거리를 두고 스틱으로 여닫았다. 점심을 혼자 차려 먹고 커피포트에 물을 담으려고 팔을 뻗어보니 거기까지 닿지 않았다. 옆에 두었던 스틱을 찾아 쥐고 한 발짝 떼려다 갑자기 가슴이 찌릿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룩 흘렀다. 지금 스틱을 짚고 한 걸음 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이 옛날 아버지의 그것과 데칼코마니처럼 겹쳐졌기 때문이었다.
30년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1년 만에 아버지마저 중풍을 맞으셨다. 시골에 혼자 계실 수가 없어 우리 집에서 모시게 되었다. 새댁 티가 가시지 않은 며느리에게 불편한 몸을 맡기고 목욕을 했다. 돌잡이 손자를 제대로 안아주고 어르지도 못했다. 칠순이 넘었어도 자식들의 기둥이요 대들보였던 당신께서 불편한 몸이 되어 막내아들네 집에 와있는 마음이 얼마나 불편하셨을까.
아버지께서는 지금의 나와 똑같이 지팡이를 짚고 가까스로 한 걸음씩 떼셨다. 하루빨리 온전히 나아서 시골집으로 걸어가실 요량으로 좁은 거실을 지팡이에 의지해서 돌고 또 돌았으리라. 퇴근해서 들어오는 나에게 오늘은 몇 바퀴 돌았다고 어눌하게 손가락을 꼽으셨다. 운동을 했더니 이제 살이 좀 붙기 시작한다면서 장딴지를 손수 주무르며 자랑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때는 승강기도 없는 아파트 4층에서 내려오기가 힘들어 바깥바람 한번 제대로 못 쏘여 드렸다. 요즘 같으면 걸음 연습이 수월하도록 손잡이를 벽에다 붙이고, 휠체어도 맞추어 드렸을 텐데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했다. 아버지의 마음과 생활여건, 어느 것 하나 편안하게 해드리지 못했던 못난 자식의 회한이 밀려왔다.
병고를 양약으로 삼으라는 경구가 있다. 아플 때 자신을 한 번 더 살펴보고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보라는 뜻이다. “아버지, 이제 늙으셨네요.” 하던 아들의 말에 귀 기울일 때가 되었다. 아이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건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딴지 파열이 매사에 서두르는 나의 조급한 마음을 잘 다스리라고 경계하고 건강과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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