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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요석궁 / 김옥한

요석궁 / 김옥한


 

 

요석궁으로 들어가는 골목은 그 품새부터가 넉넉하다. 돌담은 이끼가 자욱하여 오랜 풍상에 젖어 있다. 마당에는 촘촘하게 쌓은 돌로 아담하게 연못을 지어 놓았다. 갖가지 꽃들이 바위 틈새를 메우고 있다. 돌 함지박에서 떨어지는 은은한 물소리는 마치 심산계곡에 서 있는 느낌이 들게 한다.

안채를 마주 대하자 원효와 요석공주가 저절로 떠오른다. 그들은 지금 내가 바라보는 이 안채에서 사흘 낮밤을 지냈다. 짧은 인연을 뒤뜰에 묻고 홀연히 돌아선 고승 원효와 평생 그리움을 안고 살아간 공주의 애절함이 가을 햇살이 되어 추녀 안에 가득하다.

유서 깊은 이곳 궁터를 사들인 최 부자의 선대 역시 범상한 인물은 아니었으리라. 사실 자산 규모로 따지자면 경주 최 부잣집은 한국 제일의 부자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한국 최고의 부잣집으로 존경받는다. 무슨 연유에서 일까? 14300년 동안 부를 잇게 한 가훈의 실천 때문일 것이다.

경주 최 부잣집 가훈은 부의 기준과 원칙을 세우고 그것을 대대로 실천했다. 가훈은 이웃과 사회를 위한 덕목들로 구성되었다. 흉년에는 땅을 사지 않고, 만석 이상의 재산은 만들지 말 것이며,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주변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고,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 말 것이며, 시집온 며느리는 삼년간 무명옷을 입는 것이었다.

최 부자처럼 오랜 세월 변함없이 세상 사람들의 존경과 칭송을 받은 경우는 드물다. 서양의 최장수 부자가문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은 오랜 기간 동안 부를 유지하였다. 메디치 가문을 있게 한 코지모 데 메이치도 최 부자처럼 겸손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샀다. 말도 타지 않고 집을 지을 때도 귀족들이 사는 동네가 아닌 시장 옆에 호화스럽게 짓지 않았다. 늘 마음을 낮추고 겸손 했지만 대가 이어지면서 원칙이 무너지고 돈으로 권력자의 마음을 사기 시작했다. 계속 바뀌는 권력의 속성을 따라가는 줄타기가 끝나자 결국 막을 내렸다.

최 부잣집은 흉년에는 절대 재산을 늘리지 않았고, 권력과 결탁해서 이권을 가로채는 일도 없었다. 최 부잣집 사랑채는 항상 과객들이 들끓었다. 과객들이 묵고 다음 목적지까지 굶지 않게 먹을 만큼의 식량을 가져갈 수 있도록 입구를 좁게 만든 독특한 쌀뒤주를 설치해 놓기도 했다. 흉년이 들어 주변이 굶어죽는데 나 혼자 만석꾼으로 잘 먹고 잘사는 것은 부자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어머니의 친정에도 최 부자에 버금가는 만석꾼이 있었다. 바로 막내 외삼촌이었다. 양조장이 대여섯 개나 되고, 신발공장, 연탄공장, 비료공장 등 재산이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배고픈 시절,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어렵사리 모은 재산인지라 아깝다는 생각이 앞서서인지 베풀지 못하였다. 베푼다는 낱말 자체를 모르는 것 같았다. 형제간에도 담배 한 개비 나누어 피우지 않을 정도였다. 주변 친척들이나 이웃 사람들은 외삼촌을 수전노라 흉을 보았고, 동냥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거지들은 삼대부자 없고 삼대거지 없다며 악담도 서슴지 않았다.

알고도 모른 체 하는 건지, 돈을 앞세워 목에 힘만 주고 나눌 줄 몰랐다. 결국 그 많은 재산을 외아들에게 물려주었는데, 한 세대를 지키지 못했다. 말이 씨가 된다더니 졸부의 재산은 대를 잇지 못하고 끝났다. 요즘은 오히려 주변 친척들에게 도움을 청한다는데 외면 받는 처지라고 들었다. 돈이 곧 행복이라 믿었던 외삼촌은 아들에게 도리를 가르치지 않고 가산만을 물려준 탓이리라.

최 부자는 재산보다 인간의 도리를 우선하였다. 부자에 걸 맞는 신분을 유지하되, 자제하고 절제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다. 며느리들에게 은비녀 이상의 패물은 가지고 오지 못하도록 하였고, 무명옷을 입혀 절약과 검소를 가르쳤다.

국가를 위한 기부도 많이 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의병활동을 위해, 일제 때는 독립운동을 위해, 자손들은 많은 재산을 아낌없이 바쳤다.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도록 빈민구제에 앞장섰고, 노비들에게 인간적인 대우를 해주어 노비가 도망가지 않는 집으로도 소문이 났다. 그래서인지 부자 집을 털어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던 활빈당도 최 부잣집만큼은 공격하지 않았다는 후문이 돌았다. 마지막 부자 최 준은 전 재산을 나라와 사회에 스스로 바쳐 부자 가문의 종지부를 찍었다.

요즘 페이스 북 창시자 마크 저커버그의 통 큰 기부가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서른 두 살의 딸 바보 아빠가 갓 태어난 딸에게 모든 부모들처럼 우리는 네가 우리들보다 더 나은 세상에서 자라기를 바란다.”는 편지를 쓰고, 선물로 주식의 99%450억 달러 약 52조원을 사회에 기부했다. 그의 인생 목표는 가족에 국한되어 있지 않고 지구 공동체 실현에 있다는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온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식사랑이 유별나다. 열심히 모아서 자식이 좀 더 잘 먹고 잘 살도록 남은 재산은 모두 자녀에게 상속한다. 부모가 돌아가게 되면 형제 간 법정다툼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인생 경륜이 많지 않은 젊은 나이에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저커버그의 고귀한 철학에 박수를 보낸다. 진정한 부자가 되려면 사회에 기부해야한다는 메시지를 가르쳐주었다.

요즘 최 부자 집이 명소가 되어 관광객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공존 공생의 철학으로 가진 자의 의무를 실천한 최 부잣집 정신이 현세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진정한 부자의 의미를 가르치는 귀감이 된다.

요석공주가 살았던 터에 최 부자 후손이 당시의 가정식 음식점을 경영하고 있다. 최 부자가 마치 몇 백 년 후를 예견이라도 한 듯 조선시대 이후로 요석궁터를 잡아 오늘까지 이어온 곳이다. 후손이 굳이 음식점을 연 것은 비록 식사 값은 받지만 배고픈 사람을 외면 못하는 선조들의 정신을 이어받은 것이 아닐까?

최 부잣집 담장을 따라 걷는다. 걸음마다 밟히는 돌부리도 귀하게 느껴진다. 고샅길을 통해 들리는 최 부자 가문의 음성이 공명으로 울려 퍼지는 듯 했다. ‘진정한 부자는 축적보다 나눔에 있다.’

계림 숲 숭숭한 소나무 사이로 빗살무늬 햇살이 최 부자 집 지붕을 환하게 비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