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암(蓮臺庵)을 찾아서 / 김규련
밤은 이미 이슥하다. 간간이 먼데서 산짐승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성주(聖周)스님은 나직한 목소리로 조용조용 법담을 설하고 있다. 듣고 앉아 있는 중생은 나 혼자 그리고 저 귀퉁이에 들락거리는 쥐 두어 마리라 할까. 삼존불 앞에 타내려 가는 촛불이 스님의 그림자를 법당 가득히 채우고 있다. 지금쯤 아내와 공양주 보살은 요사에서 곤한 잠에 떨어져 있을 것이고 눈은 계속 내리고 있다.
나는 일 년에 한두 번 이름 없는 암자를 찾아온다. 어쩌다 몹시 괴로운 일이라도 생기면 불쑥 이곳에 와서 위안을 얻곤 한다. 암자가 우람하고 스님이 고명해서가 아니다. 10여 년 전의 조그마한 인연 때문이라고 할까.
당시 나는 이 고을 영양(英陽)군의 교육행정 책임자로 있었다. 그때 경북도교위에 불미한 사건이 생겼다. 그 사건의 불똥이 엉뚱하게도 나에게까지 튀어 와서 나를 괴롭혔다. 나는 인간의 모략과 배신에 대해서 환멸을 느끼다 말고 이곳 연대암(蓮臺庵)을 찾아왔다. 그때 성주스님의 설법이 문득 마음을 편하게 해줬다.
"헛헛헛헛…. 우주의 차원에서 인간만사를 내려다보시오. 와우지쟁(蝸牛之爭)이지요. 떨쳐버리고 돌아가시지요. 유심소작(唯心所作) 명심하시고요."
내 답답한 얘기를 다 듣고 난 다음의 스님 말씀이었다. 그것이 유연(由緣)이라 할까, 아무튼 연대암에 오면 성주스님을 만나 뵙게 되고 마음이 편해져서 찾아온다고 하리라.
연대암은 영양읍 삼지동(三池洞) 산중턱에 묻혀 있는 암자다. 야산이긴 하지만 태백산맥의 힘찬 준령이 남으로 달려 내려오다가 잠시 머뭇거려 서남으로 일월산을 솟게 했고 그 한 자락이 연대암에 와 멎었다. 그러니 산세가 묘하고 앞이 탁 트여 전망이 빼어날 수밖에. 대여섯 평 남짓한 법당이며 불제자 10여 명이 겨우 묵을 수 있는 요사채의 규모로 보아 보잘것없는 암자지만 그 뿌리는 고려 때로 거슬러 오른다. 뜰에 서 있는 삼층 모전석탑(三層模塼石塔)이 그것을 말해 주고 있다. 이곳 용왕(龍王)당의 신통함과 전설은 한 많고 원 많은 아낙네의 발길을 끌어당기기에 족했다.
간간이 법당 문에 눈보라가 세차게 와 부딪친다. 내일 새벽 도량경을 치며 뜨락을 돌다 보면 눈 다져지는 소리에서 관음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으리라. 성주스님은 유·불·선의 강물을 이리저리 헤엄치며 거침없이 방담 같은 설법을 계속하고 있다.
"김거사님, 따지고 보면 공자도 무애의 경지에서 석가와 만나지요. 공자와 안회(顔回)의 좌망문답(坐忘問答)이 그것을 암시하지요. 공자가 바라는 수양의 차원은 인의에서 예악을 거쳐 좌망(坐忘)이 아닙니까. 좌망이 곧 무애이지요."
별천지에 온 기분이다. 그러나 내 머리 속에는 아직도 내 직장의 업무관계며, 자녀의 장래문제며, 건강관리 같은 잡다한 생활주변의 여러 상념들이 불쑥불쑥 고개를 든다. 나는 넌지시 스님의 관심을 정치, 경제, 사회 등 현실문제로 유도해 본다. 역시 스님의 방담은 나직하면서도 줄기차고 감동적이다.
"불환빈 환불균(不患貧 患不均)이란 말이 예부터 있어 왔지요. 이것 빨리 손써야 합니다. 그런데 항상 정치인의 마음이 문제이지요. 어디 김거사님부터 한번 물어 봅시다.
뛰어난 사람이 지도자의 자리에 있으면 무리들은 그가 존재함을 알 따름입니다(太上 不知有之). 그보다 못한 지도자이면 무리들은 그를 친근히 여기고 그를 기립니다(其次, 親之譽之). 그보다 못한 지도자이면 무리들이 그를 두려워합니다(其次, 畏之). 그보다 못한 지도자이면 무리들이 그를 업신여깁니다(其次, 侮之). 김거사님께서도 한 집단의 지도자이신데 지금 어느 자리에서 있다고 생각합니까. 참지도자가 되려면 금욕(禁慾)이라는 무서운 칼 한 자루 가슴에 지니고 있어야 됩니다."
스님의 말씀 하나하나가 나의 인식의 밑바닥에서 남몰래 꿈틀거리는 탐욕이라 할까 아집이라 할까 편견과 위선 같은 것에 탄환처럼 와 꽂힌다. 나는 시선을 살며시 지장보살 탱화 쪽으로 돌려 본다.
자정이 지났을까. 이제 바람도 자고 산짐승도 잠든 모양이다. 간간이 나뭇가지에 쌓인 눈덩이가 푸쉬쉬 쏟아져 내리는 소리만 들려올 뿐, 천지가 적막한데 스님의 굵은 목소리는 여전히 깨어서 춤추고 있다.
"김거사님, 갖고 싶고 즐기고 싶고 이루고 싶고 빛내고 싶은 욕구가 곧 중생의 모습이지요. 하지만 앞으로 성취동기만 키우지 말고 욕구를 억누르는 교육을 더 많이 해야 할 겁니다."
개척정신이다, 진취적 기상이다. 창조적인 자세니 생산적인 태도니 하며 성취욕구만 부추겨 온 오늘의 교육이 또 한번 부끄럽다. 이제 그만 잠자리에 들었으면 하는 나의 마음을 스님께서 금시 읽어 보시고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신다.
"김거사님, 화두 하나 지니고 내일 하산하시지요. 돈오돈수(頓悟頓修)는 못할지라도 늘 마음속에 먼지는 끼어들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정중히 사양했다. 철저한 속인이 무슨 화두란 말인가. 강 건너 해탈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을 뿐. 때때로 괴로우면 암자를 들락거리며 세속을 살아가리라. 울고 웃으며 정들인 세속의 인정이 좋아서일까. 날이 밝으면 하얗게 피어오른 눈꽃의 의미를 또 한번 음미해 보리라.
연신 나뭇가지에 눈꽃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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