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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도'와 '또' 사이 / 박영란

'''' 사이 / 박영란

 

 

 

"요즘도 글 쓰세요?"

"아직도 글 써?"

사람들이 이렇게 물어오던 시절이 있었다. 글 쓰는 일은 나에게 맞지 않는 곧 그만 둘 일처럼 보였을까. 그냥 가볍게 물어오는 그 인사말 속에 들어 있던 ''의 어감은 늘 강조사처럼 들렸다. 마치 '아직도 그 남자를 만나니?' 하는 확인처럼. 만나지 말아야 할 남자를 아직도 만나고 있는 듯한, 현재진행형인 나의 글쓰기에 대해 다분히 회의적인 시선이 담겨 있었는지 모른다. 두 권의 책을 내었을 즈음에야 근황에서 ''는 사라졌다.

요즘은 도의 환생처럼 '' 하나가 더 붙어 ''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거듭되는 행위를 나타내는 이 부사가, 로또에 당첨되고 또 당첨된 그런 기염처럼 들렸다면 좋았을 텐데, 네 번째가 되는 책 책이랑 연애하지, 를 출간한 후, 사람들이 무의식중에 튀어나온 인사말은 '또 책을 내었어요'였다. 덕담 속에 담긴 ''라는 말이, 내게는 다시 의미화되었다. 제대로 된 책을 낸 것일까. 그런 자문이 거듭되면서, 이제는 단순히 글쓰기의 결과물이 책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비로소 이 길을 너무 멀리 와 버린 듯한 생각이 들었다. '단어 속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라는 말을 새겨보면, 그들이 들려준 '''' 에는 점진적인 나의 흔적을 말해주는 것이 들어 있다.

돌이켜보면, 도와 또 사이는 참 길었다. 20년의 세월이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정녕 내 인생에 있어서 글 쓰는 일은 운명이었을까. 감히 운명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내 의식의 7할은 글이었고 그것으로 긴장했고 즐거웠고 괴로웠다. 글 쓰면 행복하다는 어린 딸의 말에 홀려 여기까지 왔건만, 만약 글이 아니고 다른 것이었다면, 다른 어떤 것을 들먹이며 그것이 행복이라고 유혹했다면, 난 그것을 하지 않았을까. 백지상태에서 글이 출발했던 것처럼, 그 일이 무엇이든 지금처럼 하고 있을 것이다. 싫증내지 않고 미련하게 해왔던 이 수필과의 인연처럼, 다른 삶 역시 그렇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상상은 잘 안되지만 다른 방향의 시계視界로 살았을 나. 도와 또 그 사이, 과연 나는 나로 살았을까? 이런 생각들이 끊임없이 파고드는 것은 갑자甲子를 맞이한 년의 탓일까. 아님 출간 후의 후유증일까.

책을 낸 것은 갑일甲日에 대한 스스로의 선물이었다. 선물은 즐거운 것이었지만, 그 과정과 그 결과에 이르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출간은 매번 비슷한 고민과 회의와 집중을 오고가는 결과물이다. 책이랑 연애하지, 는 그동안 신문 연재, 잡지에 발표한 작품들과 미발표한 글들을 모아 'book essay'로 묶은 책이다. 40편의 책들을 수필로 쓴 다양한 형식의 독후감에는 그동안 수필을 위해 공부했던 애정이 담겨 있다. 그 애정을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더 많은 격려와 사랑을 받았다. 애정이 이기적이었다면, 사람들이 전해준 사랑은 감동이었다. 내가 다른 어떤 길을 갔다면 만날 수 없었던 친구와 선배와 선생님들. 그들이 보여준 큰 품성으로 나는 세상으로부터 힘을 얻고 배우면서 또 자란다.

혹자는 이제 좀 쉬란다. 다른 혹자는 계속 정진하란다. 하지만 딱히 쉬는 것도 그렇다고 글이 나아가는 것도 아니다. 출간을 핑계로 글을 쓰지 않았던 반년의 공백은 은근히 두텁다. 그리고 나를 물고 늘어지는 것들- '작가'라는 소명의식과 정체성과 맞닥뜨린다. 과연 '수필'다운 수필을 쓰고 있는지, 그리고 '작가'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만큼 부끄럽지 않은지 생각해보게 된다. 새삼스럽게도, 나는 왜 이 짓을 하느냐 하는 당위성을 묻는다. 무슨 의식을 치르듯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이 행위는 뭘까. 반복하는 이유는 뭘까. 그런 자조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런 허기가 지는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날 진정 내가 가지고 갈 것은 이 책들이지 않을까. 바람이 데려다 주리, 랄랄라 수필, 요즘은 두문불출. 나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자식들은 결코 나와 함께 순장旬葬하지 못한다. 나의 육신과 함께 사라지는 것은 함께했던 시간과 그 기억을 담은 이 책들 말고 무엇이 있을까.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아름다웠노라고 말한 시인처럼, 나 또한 랄랄라 노래하며 저 바람이 데려다주는 곳으로 떠나는 일 또한 괜찮으리라. ! 이 무슨 청승인가. 그래도 위안이 된다.

아무튼. 선녀가 나무꾼이 숨겨놓은 선녀 옷을 찾았지만, 만약 아이 셋을 낳았다면 옥황상제가 있는 하늘나라로 올라가지 못하듯이. 책 네 권의 무게는 날 그 지경에 이르게 하였다. 더는 다른 길이 없는, 살아볼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