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 사퇴서 / 강호형
매일 만나도 만날 때마다 어려워서 긴장하게 되는 사람이 있고, 가끔 만나도 늘 만나는 사람처럼 편하고 즐거운 사람도 있다.
상대방을 긴장시키는 사람은 대개 옷차림이나 행동거지에 빈틈이 없다. 삼복더위에도 정장을 하거나, 노타이 차림이라도 단추만은 턱 밑까지 채워야 안심이 된다. 말수가 적어 남의 말 열 마디에 한두 마디를 해도 농담 같은 허튼 소리는 하지 않는다. 매사에 꼬장꼬장해서 쉽게 웃거나 대놓고 화를 내지도 않지만, 조금만 기분이 상하며 금방 표정에 나타난다. 이런 사람을 만나면 헤어질 때까지 긴장하게 돼서 편치가 않다.
대하기 편한 사람은 대개 차림새나 행동거지에 어딘가 헐렁한 구석이 있다. 정장보다 편한 옷을 즐겨 입고 엄동설한에도 셔츠의 목 단추 하나쯤은 풀어 여유를 준다. 한 옥타브 높은 음정에 상대가 불쾌하지 않을 정도의 농담까지 섞어 격을 깬다. 성품이 유들유들해서 잘 웃고 기분이 좀 상해도 표정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편하고 즐거워서 만나면 반갑고 헤어지기가 아쉽다.
나는 어려서 경기도 광주의 한 촌마을에 살았다. 할아버지 형제분이 텃밭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집처럼 살았는데, 형님이신 우리 할아버지는 술을 드셔도 절대로 과음하는 법이 없는 등 경우 바르고 예의범절이 엄격해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어려워했다. 이와는 반대로 작은할아버지는 두주불사에, 주먹이 세기로도 광나루, 뚝섬나루 일대에 소문이 나 있었다. 장날이면 곤드레가 되게 취해서 동구 밖에서부터 “마누라, 마누라….”하고 동네가 떠나가게 불러 대다가 육자배기를 뽑아 올리기도 했다. 이렇듯 성정이 분방하다 보니 아이들조차 어려워하지 않았다.
옛날에는 정월 대보름날이면 더위를 파는 풍속이 있었다. “아무개야” 하고 불러서 대답을 하면 냉큼 “내 더위 사가라!” 하는 식인데 그렇게 팔고 나면 그 해 여름은 더위 안 먹고 지낼 수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날만은 아무리 친한 친구가 불러도 대꾸를 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누가 부르면 대답이 튀어나오는 건 누구나 몸에 밴 관성이라 단단히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더위를 사기 십상이다. 그렇게 더위를 판 아이는 기뻐 날뛰고 얼떨결에 더위를 사고 만 아이는 분해서 씩씩거리기 마련이었다.
작은댁에는 재종형과 누나가 여럿이었지만 나는 두 학년이 위인 형이 좋아서 아침에 눈만 뜨면 달려가곤 했다.
두 살 터울인 내 아우가 여남은 살 무렵의 대보름날이었다. 내가 작은댁을 가는데 그날따라 동생이 따라오더니 사랑방 툇마루에 장죽을 물고 앉아 계신 작은할아버지 앞으로 냉큼 달려갔다. 할아버지가 귀가 어두우시다는 걸 알고 있는 아우가 목청을 한껏 높여 “할아버지!” 하고 불렀다. 할아버지는, 이른 아침에 나타난 손자 녀석이 기특하셨던지 반갑게,
“오냐 너 일찍 일어났구나.”
하셨다.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우가 외쳤다.
“내 더위 사가세요.”
“예끼, 이놈!”
할아버지는 장죽을 건성으로 휘두르며, 그러나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껄껄 웃으며 한마디 덧붙이셨다.
“허어, 고얀 놈!”
어른에게 더위를 팔다니, 나로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유유상종이란 말은 조손간에도 통하는지, 당신들의 성격대로, 우리 할아버지는 조금 엉터리 기질이 있는 동생을 더 귀여워하셨다. 나는 동생이 부러웠다.
반상(班常)의 차별이 심하던 시절의 양반들은 법도가 엄격했다. 어느 하인 하나가 무슨 요행을 만나 행세를 하게 됐는데 그 숨 막히는 법도를 감당할 수가 없어 단 며칠 만에 의관을 벗어 던지고 도로 하인이 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실속도 없이 양반 기질이 강한 할아버지의 훈육을 받은 나는 매사에 소극적이고 숫기가 없는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 때문이었을까? 현대인들은 노랫말의 후렴처럼 외워대는 “사랑해”를 나는 아내에게 조차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사랑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것이라는 신념(?)이 확고한데다가, 아내가 자기를 사랑하느냐고 물어온 적도 없으니 가뜩이나 낯간지러운 그 말을 어찌 차마 입에 담으리오. 물론 이런 것도 병이라면 병인 걸 나도 안다.
세월이 약이라더니 나이 칠십이 넘어서 얻은 손주 녀석 덕에 나는 요즘에 와서야 수시로 아내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내가 한껏 무드를 잡아,
“사야요.”
하면 아내 얼굴이 금방 환해진다. ‘사야요’는 손주 아이가 처음 말을 배우던 첫돌 무렵에 “사랑해요.”가 발음이 안 돼서 혀 꼬부라진 소리로 하던 말인데, 그 아이가 열 살이 된 요즘도 나는 그 주문 같은 말을 아내에게 써먹고 있는 것이다. 고마운 일이 있거나 무료할 때 농담 삼아 “사야요.”하면 아내는 졸다가도 빙글빙글 웃는다. 내 고백에 감동해서가 아니라 손자 놈 어릴 적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일 테지만 어쨌든 효과 만점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당초부터 양반 노릇할 체질은 못 되었던 모양이라 이제라도 그 숨 막히는 양반 시늉은 그만두기로 한다.
“사야요.”
'수필세상 > 좋은수필 4'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은수필]거미의 건축법 / 권민정 (0) | 2019.09.04 |
---|---|
[좋은수필]골목 / 최민자 (0) | 2019.09.03 |
[좋은수필]제단을 짓다 / 박금아 (0) | 2019.09.01 |
[좋은수필]첫사랑을 생각하다 / 이상은 (0) | 2019.08.31 |
[좋은수필]숟가락 이야기 / 남영숙 (0) | 2019.08.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