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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풍경이 말을 걸다 / 김희자

풍경이 말을 걸다 / 김희자

 

 

 

가을이다. 가을엔 길을 탁 잃어버리고 싶다. 어딘가에 불시착하여 헤매고 싶다. 길을 잃는 순간 두려움은 일겠지만 낯선 길 위에서 또 다른 것을 얻고 싶다. 동화 속 주인공이 길을 잃고 다른 세계를 만나기도 하듯이.

홀로 길 떠남을 망각하고 살았다. 하나 이 만추의 풍경 앞에선 울렁이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다. 내가 길을 나설 때면 꼭 함께 하는 것이 있다. 풍경을 담는 카메라다. 배터리를 충전하는 시간은 곧 떠남을 의미한다. 풍경 담은 법는 혼자 터득했다.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경치를 순수하게 담는 것이 전부일 뿐 사진 전문가가 아니다. 그 사진을 보며 글을 그려왔고 내 눈의 깊이를 더했다. 가끔은 돌아가지 않기 위해 혼자 떠남을 꿈꾸기도 하고…….

배터리 충전이 끝났다. 잘 늙은 암자로 가기 위해 차에 올랐다. 외길을 달려 산 중턱에 오르니 심장처럼 자리한 저수지가 나타났다. 명경 같은 호수 속에 울긋불긋 가을이 담겨 있다. 물속에 담긴 하늘과 나무들이 가을을 온몸으로 풀고 있다. 물속에는 물만 있지 않고 하늘 또한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갈대 하늘하늘 흔들리며 서정을 그려내고 깊은 가을이 낭창낭창 말을 건다.

맞다. 결코, 우연한 풍경은 없다. 내가 길을 찾아 나섰기에 만날 수 있고 말을 걸어온 풍경이다. 숲 사이로 돌돌 흐르는 개울물 소리가 귀를 열어주고, 마른 풀숲에 키 작은 쑥부쟁이가 봐달라며 웃고 있다. 흔들리는 들꽃 한 송이에도 우주가 느껴지고 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고요한 암자에 들어 저녁처럼 쓸쓸해지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풍경은 언제나 내 사유 샘을 자극하니까.

새만금에 홍학 한 마리가 나타났다는 기사를 보았다. 사육지에서 탈출한 개체가 아니고 오쳔 킬로미터 떨어진 카자흐스탄 홍학의 서식지에서 날아온 새였다. 그 먼 거리를 어떻게, 왜 오게 되었는지 관심이 쏠렸으나 결론은 어린 새가 길을 잃고 불시착한 것이었다. 나 역시 찾는 길이 아득할 땐 시간이 멈춰 있는 곳으로 가 길을 잃는다.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듣기 위해 자연 속으로 들어 풍경과 하나가 된다.

암자 입구에 서니 가을빛이 황홀하다. 계절은 제 색깔을 맘껏 뽐내고 있다. 진리의 세계로 든다는 불이문. 그 옆에 선 은행나무가 샛노랗게 물들었다. 가을이 아니었으면 존재를 몰랐을 나무다. 이곳을 뻔질나게 다녔어도 은행나무였는지 몰랐다. 가을 색을 드러낸 후에야 그의 존재가 드러났다. 그 옆에 선 물찬 소나무가 더 눈길을 끈다. 곧게 선 은행나무에게 공간을 내어주고 비스듬히 기울어 자란다. 소나무는 자비심이 가득한데 나는 아직 욕심을 붙들고 있어 가슴이 아프다.

암자 뒤 산언덕에는 선승처럼 서 있는 나무가 있다. 속도 없이 사는 느티나무다. 하늘 향해 등을 곧추세운 나무는 해탈한 모습이다. 이렇게 비워본 적이 있느냐며 새까맣게 변한 속을 통째로 보여준다. 천둥 번개가 치고 태풍과 폭우가 온 산을 할퀴어도 천년의 침묵을 깨고 서 있다. 표피 구멍으로 드는 햇살로 시린 속을 희석하며 고요에 들어있다.

세상을 등지고 섰지만 불거진 두 눈을 부라리며 산 아래 세계를 내려다본다. 속세를 내려다보며 호령하듯. 구름은 세상과 극락의 경계를 가른다. 속도 없이 사는 나무는 구름 위에 올라서야 볼 수 있다. 구름 아래서 올려다본 모습은 통나무에 불가하나 경계선 위쪽에서 본 모습은 다르다. 서툰 줄타기로 구름 위에 올라서면 그 나무의 실체를 알 수 있다. 비움으로써 견뎌온 시간이 울림처럼 전해진다. 무언의 세계가 거기 있음을.

표피만으로 숨 쉬며 사는 나무도 생명이 있어 가을 끝에 서 있다. 또 버리기 위해. 신산 고초를 다 겪은 아픔이 길이 되려면 비워야 한다고 무언의 진리를 던진다. 속도 없는 나무처럼 비워보기 위해 소유의 보따리를 풀어놓으니 버릴 것이 가득하다. 소유 할 수 없는 것을 내 것인 양 우겨댔던 시간이 부끄러워 산마루를 본다.

선승처럼 선 나무는 제자리로 돌아가 비우며 살라며 등을 떠민다. 보이는 것에만 익숙해져 살아온 사람들에게 화두를 던진다. 다 비우고 내려놓았을 때야 비로소 향기가 채워진다는. 속이 꽉 찬 나무로는 구름 위에서 천년을 버티지 못한다고.

가을은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는 것이다. 불안과 경쟁이 없는 자연 속, 살아있기에 살아내야 하는 수많은 생명……. 자연 하나하나에 의미를 새기면 풍경 속에 들면 느닷없이 다가선 낯선 풍경이 말을 걸어와 깨달음을 준다. 빈 가방으로 떠나와 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가슴 충만해지는 것 또한 풍경이 주는 선물이다.

보화루 창밖 풍경을 담고 있으니 다과를 들던 스님께서 일어나며 차 한 잔을 주신다. 찻잔을 들고 보화루 창가에 앉았다. 바라지창으로 보이는 가을 풍경이 다시금 말을 걸어온다. 가을 나무들이 제 몸을 열어 색을 내고 있다. 가을에 물들어 내 몸도 가을빛이 된다. 고요히 물들어 간다는 건 영혼이 자연을 닮아간다는 말이 아닐까.

바람이 부나 보다. 한 생을 두고 고요히 일렁이는 사랑처럼 노랗고 빨간 나무들이 흔들리고 있다. 그리움 하나가 나를 흔든다. 가을에는 숨어있던 내 존재가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이제 나도 산에서 내려가야겠다. 깊은 암자의 풍경을 스치고 지나는 바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