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의 빛 / 민병숙
낙엽 진 산등성이의 풍경이 눈을 시리게 한다. 낙엽을 다 떨어내고 쨍한 하늘은 적적한 겨울 숲에 불붙는 듯한 석양이 천천히 붉은 자락을 펴고 있다. 노을보다 붉은 고추가 가득했던 밭에는 끝물 고추만이 빛 바란 추억처럼 서걱대고, 마을 어귀에 서 있는 주목은 노을 속에 붉다. 쓸쓸하면 쓸쓸한 대로, 풍성하면 풍성한 그대로, 그 누구도 붓질하지 않은 쓸쓸한 계절의 그림이다. 초겨울이 그려내는 그림 속으로 남편과 산책을 나섰다.
남편은 건강검진에서 발견된 불필요한 세포 덩어리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실에서 회복실을 거쳐 병실로 옮겨진 그의 핏기 없는 얼굴은 쇠하고 물기까지 말라버린 노인이었다.
공기 좋은 시골 생활이 건강에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 나는 항암치료를 마친 남편을 설득해 전원주택으로 이사했다. 남편의 건강에 대한 염려로 시작한 무거운 마음과 그래도 반쪽짜리라도 전원생활이란 소망이 이루어졌다는 생각으로, 철딱서니 없는 여편네처럼 좋은 맘도 있었다. 남편은 부모님의 각별한 기대로 중, 고, 대학교를 서울로 진학해 학업을 마쳤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부모의 일을 도운 누나 덕에 자신만 편히 공부했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월남에서 군대 생활을 한 그가 결혼 후 형편이 어려운 누나의 빚을 정리해 주는 걸로 시작해 몇 년 후엔 가게가 달린 작은집을 마련해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준비해 주었다. 그 일로 인해 결혼해서 몇 년 동안 그 집에 얹혀있는 융자금을 갚느라, 남편의 월급봉투를 제대로 받지 못했던 세월도 있었지만, 남편은 내게 형제간의 우애라며 이해시켰다.
병가를 내고 일 년을 쉬었던 그가 후배를 상사로 모셔야 했을 때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직장에서 받았을 스트레스도 책임져야 할 가족들을 생각해서 자존심을 누르고 눌렀을 것이다. 캐나다에 사는 언니의 초청으로 이민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사표를 던지고 싶었던 남편의 생각과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시어른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북에 고향을 둔 시아버님은 6.25 때도 헤어지지 않고 살았는데 이제 와 헤어져 산다는 건 말도 안 된다는 표면적 이유와 장남이란 굴레였다.
"세상에 지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사는 장남이 어디 있나."
장남이란 사실을 다시 깨닫기 위해 장남이란 너울을 뒤집어쓰는 자위였다.
그러나 막냇동생에게 서준 보증 문제가 불거졌을 때는 도저히 더이상은 우애라는 말로 미화해서 생각할 수 없었다. 내게도 인내의 한계였다. 싸우고 또 싸우면서 이혼을 생각했다. 그때가 우리 부부에게 닥친 가장 큰 위기였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가장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지만 잘 참고 넘어간 인내 또한 내겐 대견한 일이기도 하다.
명예퇴직을 종용하던 회사 분위기에 밀려 하던 일과 상관없는 부서로 밀려나면서도 끝까지 자리를 지킴으로 그곳에서 정년을 맞았다. 퇴직 후 시작한 사업 또한 새로운 장비가 들어올 때면 자금문제로 나는 화를 냈고 사업을 접으라는 잔소리를 되새김질하듯, 끊임없이 했었으니 남편은 직장에서나, 사업을 할 때나 편치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나 때문에, 또는 자식이나 부모, 형제로 인한 이유가 그의 깊은 곳에 자리 잡고 들어앉아 그의 건강에 구멍을 숭숭 뚫었을 것이다.
황금빛 벼 이삭이 찰랑대던 빈 들녘이 초겨울 바람에 쓸쓸하다. 기계에 의해 말끔하게 잘려나가 벼 밑동만 남아 있는 사이로 드문드문 우렁이껍질이 보였다. 제법 튼실하게 살아냈을 살구 알 만한 우렁이껍질을 주워들고 보는데 괜스레 내가 서러워 눈시울이 붉어졌다. 생의 절정기엔 열심히 논바닥을 헤엄쳐 다니면서 잡초를 제거하는 임무에 충실했을 것이고, 새끼를 낳는 것으로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손에 들린 우렁이 껍데기를 힘주어 꼭 쥐었다. 자신의 희생 없이는 어떠한 생명도 잉태하고 가꿔낼 수 없다는 진리를 보여준 성스러움이었다.
새끼에게 온몸을 먹이로 내어주고 사라져 간 우렁이.
가족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오다 건강에 과부하가 걸린 남자.
홀쭉해진 볼. 얇아진 등판, 영원히 변치 않을 것 같았던 젊음도, 단단했던 육신의 버팀목도 이젠 다 어디로 갔을까. 열심히, 소리 없이 달려온 그에게 나는 평생을 무임승차하고 있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젊어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그 모든 당연함이, 건강을 잃은 남편을 마주한 오늘에 나를 아프게 한다.
추수가 끝난 논밭 사이로 난 길을 꼬불꼬불 돌아드니 논바닥에서 이삭을 줍던 까치들이 발작 소리에 놀란 듯 푸드득 날갯짓을 하더니 그대로 다시 앉아 지푸라기를 헤집으며 이삭을 줍는다. 방해하고 싶지 않아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삭을 줍는 까치와 같이 남편과 나도 인생의 이삭을 찾고 있는 시간인지 모른다.
남편의 시선을 따라 산등성이 아래로 서서히 내려가는 석양을 바라보았다.
열심히 살았기에 후회 없이, 미련 없이 떠나는 모습이 순결한 의식처럼 장엄하다.
'우리의 눈앞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렸네. 초원의 빛이요. 꽃의 영광이요.'
청춘의 아름다움과 덧없을 노래한 초원의 빛이 계속 떠올랐다.
마을 길에는 유모차를 밀고 가는 할머니의 동그랗게 굽은 등 위로 짙은 산그늘이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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