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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개나 사람이나 / 김상영

개나 사람이나 / 김상영   

 

 

 

진순이는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났다. 양평엔 서울 동서의 별장이 있다. 동서는 이웃집의 순종 진돗개 강아지 두 마리를 분양받았다. 그중 암놈이 우리 집으로 왔는데 풍채 좋은 아비 어미를 닮아 잘 생겼다.

딸 둘을 출가 시켜 적적했던 아내와 나는 진순이를 자식처럼 여겼다. 삼십 리 산책길을 함께하노라면 무료하지 않아서 좋았다. 사람들은 개나 사람이나 팔자가 늘어졌다며 부러워했다.

밤마실이 이슥하여 새벽 1시가 가까운 때였다. 집 앞 거름더미 옆 진순이 묶인 곳을 들어서는데 낌새가 이상하였다. 꼬리치며 반기기는커녕 버둥거리는 소리가 어지럽게 들렸다. 가만히 보아하니 진순이와 흰둥이 개가 궁둥이를 붙인 채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이 누무 새끼들!”

황당한 광경에 놀라 고함치자 흰둥이는 걸음아 날 살리라고 화닥닥 도망쳤고, 진순이는 헬렐레 널브러졌다.

눈 내린 어린 날이 생각났다. 외양간 담벼락에 붙어 서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던 또래들은 심심했다. 그때 마침 똥개 한 쌍이 빈 논에서 흘레붙어 먼 산을 보고서자 우리는 근질거리는 재미로 숨이 탁 막혔다. 돌멩이질하는 녀석, 굴렁쇠 막대기로 툭툭 건드리는 놈이 있는가 하면 조선낫으로 검쳐 올리자는 악동도 있었다. 그런데도 겁에 질린 녀석들이 진퇴양난으로 이리저리 밀릴 뿐 나사를 죈 듯 도무지 떨어지지 않았다. 어째서 그런가 싶어 수군거려댔지만,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침 눈이 벌어지자마자 진순이 흘레붙은 사건을 아내에게 말했더니 눈이 둥그레졌다. 긴가민가해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아내와 함께 가슴을 두근두근하며 진순이를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뒤태가 약간 부은 데다 핏물이 살짝 비친 꼴을 보니 일은 벌어진 듯했다. 그렇지만 나는 고래 심줄처럼 질겼던 소싯적 흘레 얘기와 함께 진순이는 퍼뜩 떨어졌으니 임신은 되지 않았을 거라며 아내를 다독였다.

소문은 온 동네에 퍼졌다. 붙은 지 오래돼서 제풀에 떨어졌겠단 새댁이 있고, 윗마을 오 씨네 풍산일 성싶은데 허우대가 좀 좋으냐고 위로하는 아줌마도 있었다. 순종끼리 맺어 성골聖骨 강아지를 보겠단 기대가 물거품이 되게 생겼으니 실망이 오죽할까. 얼굴값 한다더니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그것도 풍산이와 바람이 나서야 될 일이던가.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거였다. 새끼만은 배지 않도록 빌고 바랐지만, 야속하게도 자연의 이치는 어김이 없었다. 젖꼭지가 토실해지고 배가 슬슬 불러지더니 고작 두 달 만에 새끼 다섯 마리가 튀어나와 꼬물거리게 되고 말았다.

철딱서니 없는 녀석이 일을 냈으니 대책을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볏짚만으론 안 되겠다 싶어 배추밭에 덮었던 부직포와 이불을 개집에 깔고 뽁뽁이까지 둘렀다. 엄동설한을 나기 위하여 보온재들을 깔고 두르자 가뜩이나 협소한 공간이 비좁아졌다. 새끼들을 품고 옹크린 진순이 모습이 갑갑해 보였다. 하루가 다르게 새끼가 커 갈 텐데 큰일이었다. 샌드위치 패널로 큰 집을 짓고 널찍하게 울타리를 쳐 주었다. 아내는 개 값보다 우엣돈이 더 든다며 볼멘소리를 하였다. 말은 그리했지만 우리는 구운 생선이나 통닭 뼈에 일부러 살을 남겨 먹였다. 정육점에서 진순이 먹일 허드레 고기를 얻을 때는 감사하단 인사가 절로 나왔다.

새끼를 낳은 날 저녁이었다. 가로등 희미한 진순이 주위를 흰둥이가 오랫동안 맴돌았다. 풍산이었다. 사람이라면 미역 다발이라도 어깨에 사 걸고 왔을 것이다. 명색이 아빈데 빈손으로 찾아온 심정이 오죽하랴 싶어 측은지심이 들었다. 몸 푼 색시를 볼 양으로 위험한 국도를 따라 2남짓을 걸어온 것이다. 저도 배가고프련만 진순이 미역국엔 입을 대지 않았다. 새끼 낳기 전에는 몇 번이나 진순이 밥을 얻어먹는 꼴을 봤다. 그래도 짐짓 모른 척한 건 가슴 아픈 옛 생각 때문이었다.

아내는 예뻤다. 처녀 적 그녀를 보기 위해 총각들은 끊임없이 처가 될 집을 기웃거렸다. 구판장을 하던 처가는 그 덕에 막걸리 말이나 적잖이 팔았다. 양조장 배달이 늦어지거나 술꾼이 많다 싶으면 맹물을 슬쩍 탈 줄도 알았다. 그러긴 해도 대쪽 같은 장인은 자나 깨나 딸내미를 지키느라 애를 태웠다.

그러던 어느 날, 처가를 기웃거리던 장터 사는 총각이 똥통에 빠졌다. 장인의 호통에 화들짝 놀라 도망치다가 발을 헛디딘 것이었다. 육군 병장 말년 휴가를 나온답시고 각 세운 사지 바지며 불 광 올린 워커가 후줄근 절벅거리며 구린내가 진동했단다. 할 말은 아니지만, 그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인연은 참말로 하늘이 정하는 것인지, 그 처녀와 몰래 정분이 났다. 머리끝이 쭈뼛하는 벼랑을 지나 질매질 고개를 넘어 그녀 집이 있었는데, 그 길이 5(2)였다. 해가 떨어지면 인적이 끊어지기 일쑤이던 첩첩산중이자 개호지가 흙을 퍼부으며 따라오더란 길이기도 했다. 산짐승이 불을 겁낼 거란 생각으로 연신 담뱃불을 이어 붙이느라 목이 칼칼했다. 그런 곡절 끝에 딱 한 번 나눈 사랑으로 아기가 들어서자 우리는 야반도주를 감행했다. 애당초 자격에 못 미치는 뱃놈으로서 언감생심 꿈꿀 수 없는 처가였으므로 하책下策을 쓴 거였다. 벼랑 끝에 몰린 절박한 처지였으나 캐 세라 세라(Que Sera Sera), 될 일은 될 거란 패기만만한 젊은 날이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듯이,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대쪽 장인이 손주를 보듬어 안기까지는 4년이 걸렸다. 분노와 실망이 세월에 엷어지자 딸내미 아픈 마음을 헤아려 당신을 누그러뜨리셨을 것이다. 애써 참았던 만큼 우리들을 향한 사랑이 애틋하셨다.

요즘 들어 중국드라마 사마의, 미완의 책사를 다시 본다. 사마의의 처제 곽조가 조조의 아들 조비의 첩을 자청하는 것 또한 사랑에 눈이 멀었기 때문이다.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격이라며 한사코 말려도 단행하고야 말았다. 2천 년 전의 곽조나 우리 부부 그리고 진순이와 풍산이에 이르기까지 짝짓고 사랑하는 본질이 다를 게 없다.

곽조는 정실부인 못지않은 호사를 누리다 갔다. 나는 말년을 귀향해서 살아가니 뿌듯하고 산 너머가 친정인 아내 또한 활짝 핀 모습이다. 진순이 새끼 중 수컷 한 마리는 우리가 키울 요량이다. 새끼들이 제 어미를 빼다 박을지 풍산이를 닮을지 아니면 짬뽕이 될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얼마나 행복할지는 살아봐야 알 것이고.

그렇다. 걷다 보니 길이었고 살다 보니 삶이었다. 어차피 정해진 대로 펼쳐질 생일진대 사랑, 그까짓 것 한번 거하게 해 보고 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