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의 흔적 / 하택례
태어나면서 예고된 죽음을 향한 걸음이 삶이라고 한다. 삶과 죽음이 혼재된 중환자실이다. 수많은 기계 속에 생사가 구석구석 스며있는 고통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을까? 희미한 빛줄기의 희망을 바라보며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을 이겨내는 오빠가 안타까웠다. 한 호흡 차이로 이생에서 저승으로 건너가는 것을 바라보는 내 심장은 바싹바싹 타 들어갔다.
오빠는 나하고 아홉 살 차이가 난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냉혹한 사회로 떠밀렸다. 어린나이에 무엇 하나 녹록한 게 있었을까. 가난의 멍에를 벗기 위한 가장 노릇을 했다. 식구들 배고픔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학교 갔다 오면 여름에는 아이스케키 장사를 하였다. 산새들이 깃을 내리고 둥지로 돌아오는 황혼녘이면 동생들과 나는 마을 뒷산 마루에서 오빠를 기다렸다. 남은 얼음과자를 먹기 위해서 였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라 늦게까지 팔고 남은 것은 저녁으로 먹어야 했다. 다 팔고 온 날이면 쌀이나 반찬을 사와서 식구들이 맛있게 먹는 상상을 해본다. 동생과 나는 밥보다는 얼음과자가 더 좋았다. 내 친구들은 무척 부러워하며 조금만 달라며 다 먹을 때까지 쳐다보았다. 다 팔고 온 날은 속상해서 우는 철부지였다.
겨울에는 군밤과 군고구마 장사를 해서 식구들을 먹여 살렸다. 따라다닌다고 야단쳤지만 나는 오빠가 가는 곳이면 기를 쓰고 함께 다녔다. 오빠 친구들하고 노는 것이 내 친구들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자, 딱지, 구슬, 제기차기는 보통 남자들보다 잘했다.
과일이 많이 나는 충청도 논산이 고향이다. 복숭아, 배, 사과, 딸기 서리는 오빠 친구들과 함께하였다. 내 친구들하고 과일 서리를 하면 주인한테 잡히기 때문에 안 했다. 엄마가 알면 혼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남자들 하고 놀아 거칠어진 모습을 싫어했지만 항상 내 편이 되어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쌓은 정이 깊을수록 슬픔도 그만큼 컸다.
백마부대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용감한 군인이기도 했다. 술을 좋아해서 가족들한테 미움도 받았다. 올케언니는 늘 불만이었지만 술로 상한 몸을 온갖 정성으로 보살폈다. 화도 낼 만한데 언제나 오빠를 위해서 온몸으로 헌신하였다. 세상에서 제일 잘 생기고 멋이 있다고 한다. 이 정도 살았으면 단점이 많이 보이고 콩껍질도 벗겨질 때도 되는데 언니의 사랑이 대단하다. 사랑을 듬뿍 받아서 그런지 항상 당당하고 자신 있게 살았다. 사람들은 처복이 많다고 부러워했다. 내가 보기에는 언니보다 나을 것이 없지만 항상 큰소리치며 살았다.
술을 많이 먹은 날도 어김없이 직장에 출근했다. 어려서부터 가장으로 무거운 짐을 내려놓지 못한 세월의 고단함을 말해주는 것일까? 아픈 사연, 쓰라린 고통과 애절한 사연을 드러내지 못하고 혼자서 감당하였기 때문일까? 오빠하고 가슴을 열고 진실한 대화를 못한 것이 후회가 된다.
두 아들은 누구나 부러워하는 좋은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근무를 하고 며느리들도 잘 보았다. 큰며느리가 근무하는 대학병원에서 입원하고 죽어서도 귀한 대접을 받는 모습이 안타깝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이렇게 두고 아니 아까워서 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자신보다 더 귀하게 키웠고 든든한 울타리로 자랑하며 지난 삶을 보상받는 마음으로 감사하며 살았다.
항암, 방사선도 효과 없는 요즈음 생기는 변종 암이라 했다. 감기도 잘 안 걸리고 지금껏 아프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왜 이런 병이…. 켜켜이 다져진 삶의 아픈 흔적이 퇴적암으로 쌓여 질곡의 시간들을 버텨낸 결과물인가? 올케언니는, 성격이 별나서 특이한 암 세포도 주인 닮아서 특종 암이라며 신세 한탄을 한다.
죽음도 그 사람 성격대로 죽나 보다. 걸어 들어와 병원에 입원했고 불과 한 달도 안돼서 이렇게 누워서 말 한마디도 못한다. 담담한 심정을 글로써 표현하며 살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못하고 아무 감정표시도 없이 누워 있는 것이 애처롭다. 더는 마주 보고 할 말이 없다. 얼마 후면 의식을 잃고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거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이런 오빠가 죽음의 공포 한계선에서 머물고 있지만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마음이 아프다 못해 뼛속까지 시리게 했다. 유년시절 추억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오빠에게 닿는다. 머문 자리는 늘 추억이고 그립다. 항상 내 곁에서 어려운 일이 생길 때에는 함께 나누며 아파했다.
삶과 죽음을 통한 오빠의 흔적은 추억이 되어 남아있는 가족들 가슴에 남기고 더 넓은 영원세계로 돌아 올 수 없는 강을 건너갔다. 안개는 사라지면서 찬란한 햇빛을 주고 가지 않는가. 오빠는 가족들에게 슬픔만 주고 가지 않았을 것을 믿는다. 오빠의 차디찬 손을 잡으며 뜨거운 눈물로 다음 생에서 다시 만남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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