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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수필의 가치 / 정목일

수필의 가치 / 정목일

 

 

 

수필이 자기의 삶과 철학을 진솔하게 드러내는 문학이라 해서 진실성을 폭로나 노출이라는 의미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 수필의 진실성은 독자를 위해서가 아니며, 더군다나 작가 자신을 위해 있지도 않다. 진실성은 수필을 위해서, 나아가 그 자체의 미덕을 위해서 존재한다. 얄팍한 인기를 끌기 위하여 노출을 솔직성으로 잘못 이해한다면 그는 수필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나르시시즘적 글쓰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문학은 결코 삶보다 우위에 있을 수 없다. 인생이 있고 문학이 있으며, 수필가가 있고 수필이 있다. 작품이란 삶의 반영에 불과하다. 그래서 진지한 삶의 외곽에 안주한 사람들이 함부로 쏟아내는 노출화된 수필에 문학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래서 수필에 무한한 자유를 허용하면서 동시에 진실성이라는 한계를 지워주는 것이다.

다음으로 수필이 제재 중심 또는 주제 중심의 문학이라는 뜻은 서정과 서사를 말한다. 문학으로서 수필이 지닌 효용은 즐거움이나 교훈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즐거움은 심미적 즐거움으로서 먹고 마시고 구경하는 감각적 즐거움과 달리 정서적 즐거움을 말하는 것으로 제재를 중심으로 아름답게 감동적으로 묘사할 때 이루어진다. 반면에 주제 중심의 문학이란 수필의 교훈적 효용성을 말한다. 아무리 수필 문장이 완벽할지라도 작가와 독자가 함께 인식할 수 있는 인생관, 자연과, 종교관, 사회관, 철학관이 담겨 있지 않으면 수필로서의 문학적 가치가 사라져버린다. 하지만 모든 수필이 두 요소를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좋은 수필에서는 즐거움과 가르침이 균형을 이루어야 하지만 일정 수준의 수필에서는 어느 한쪽에 충실하고 그 결과 다른 부분이 소홀할지라도 수필의 본질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니다.

 

 

글쓰기의 목적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가 글을 쓰는 목적은 어떤 방식으로든 읽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연서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감동을 주거나 마음을 열게 하거나 오해를 풀게 하거나 하는 목적이 있다. 어떤 글이든 목적이 없는 글은 없다. 목적 없는 글이라면 그것은 무의미한 글이다. 글은 최소한의 목적이라도 있어야 한다. 읽는 이들에게 교훈을 주거나 성찰을 하게 하거나 어떤 유익한 정보를 주거나 그 중에 해당하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적어도 위에서 언급한 것 중에 해당하는 것이 있다면 이미 마음을 움직이는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

마음을 움직이는 글쓰기라고 하지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글을 읽는 이를 유도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글쓰기의 기교에 관심을 갖는 것이며, 다른 이들은 어떻게 쓰기에 잘 쓴다는 소리를 듣는지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물론 거짓말도 하면 는다는 말이 있듯이 연습을 하면 분명 실력은 향상된다. 그러니까 마음을 움직이는 글쓰기에서 제일 기본 조건은 많이 써 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다음이 그 글에 무엇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의 문제이다. 따라서 글도 다른 사람에게 읽히기 위한 목적인 한에 있어서는 사람들이 잘 이해할 수 있는 글, 사람들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써야 한다.

무엇을 쓸지를 생각할 때 뭔가 대단한 것, 거창한 것, 특별한 것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줄거리들이 사라진다. 특별한 글, 그것은 바로 자신의 삶을 쓰는 것이다. 세상에 정말 고유한 일은 자신의 일이다. 세상에 자신과 닮은 사람은 있을지라도 자신과 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자신의 글, 자신이 체험한 일이나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일을 쓰는 것이야 말로 가장 특별한 글이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글을 써야 한다.

물론 자신의 삶을, 자기 체험을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일단 남들에게 자신의 내밀한 일, 자신의 그렇고 그런 생각들을 남들이 엿보는 것이 두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엔 인생 뭐 있어아니면 사람이 잘나면 얼마나 잘나고 못나면 얼마나 못나하는 생각으로 일단 솔직하게 자기의 세계를 열 수만 있다면 글을 쓰는 일은 쉽게 풀릴 수 있다.

 

 

글감은 어디에

 

글감은 어디에?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거리를 가지고 있다. 글감에서 가장 독창적인 소재는 자기 이야기를 쓰는 일이며, 내가 내 이야기를 쓰지 않으니까 쓸거리가 안 나오는 것이지 쓰려고 마음먹고 시작하면 나올 것이 얼마든 있다는 것을 앞에서 이야기 했다. 그러면서 그 거리를 남에게 이야기하거나 글로 써서 보여 줄 수 있는 용기만 가지면 된다고 했다. 그럼에도 용기가 없다면 남의 이름을 내세워서 쓸 것을 권했다.

이 정도만 실천한 순간 나는 이미 나 지신의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 그 다음에는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러면서 나는 그들이 내 이야기 중 어느 이야기를 좋아할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때부터 나는 내 이야기 중에 남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선택하기 시작했다. 그 다음엔 내가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하면 내 글을 읽을 친구가 끝까지 읽어 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과정이 결국 좋은 글을 쓰는 과정이다.

글의 소재는 특별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현장에 있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또는 생활 자체가 소재이다. 먼저 나로부터 시작해, 나의 가족과 친구와 이웃들의 사연, 그 모든 것이 소재이다. 물론 가장 쓸거리가 많은 것이 자신의 경험이며, 가장 쓰기 수월한 것이 자신의 이야기이다. 삶의 현장에서 글감을 찾기 원한다면 항상 생각하며 생활해야 한다. 여기에 왜라는 물음을 얹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어떤 대상뿐 아니라 일을 하면서, 고생을 하면서도 생각을 해야 한다. 요컨대 생각하며 고생하는 것은 돈 주고도 못 사는 값진 것이지만 생각 없이 하는 고생은 개고생이다. 생각 없이 하는 고생은 늘 시행착오를 겪게 만들어 평생을 힘들게 살게 만든다. 하지만 생각하면서 하는 고생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고, 그것을 재산으로 삼을 수 있다.

또한 우리 집에서 키우는 동물 또는 식물, 곤충 등, 내가 외출을 하며 마주치는 사람들, 사물들, 식물, 동물들 모두가 글의 소재이다. 그것들을 이제껏 보아왔던 생각의 각도와 다르게 보면 곧 글의 재료가 된다. 식물들이, 곤충들이 우리처럼 생각을 하는 존재라고 생각해 보라. 아니면 내가 그 식물이라면, 내가 저 곤충이라면 하는 식으로 감정 이입을 그들에게 해 보라. 처음에는 우스꽝스럽고 엉뚱한 것 같지만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다 보면 나중엔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 좋은 글들은 모두 그런 곤충의 마음에, 식물의 마음에 작가의 마음이 들어가 있다.

이렇게 글의 재료는 외부를 보는 시각에서 비롯되지만 원래의 씨앗은 마음에 있다. 미음에 대상을 불 수 있는 그런 씨앗을 만들면 대상들이 글감으로 다가온다. 글의 소재는 내 마음에서 나온다.

내가 늘 사용하는 식기 또는 도구, 필기도구, 주방용품 등 내 눈길이 멎는 곳에 있는 사물들, 내가 늘 또는 가끔 찾는 물건들, 또는 주변에 있는 돌이나 길 등 무엇이든 소재이다. 이런 죽어 있는 사물들에게 내가 들어가면 그것이 곧 글이 되어 돌아온다. 그러나 오늘부터 당장 설거지를 하면서 그릇들에게, 수세미에게, 수돗물에게 말을 걸어 보라. 아니면 스스로 그것들이 되어 보라. 이런 것들과 교감을 나눌 수 있게 된다면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다.

남들도 충분히 생각할 일이라고 자신의 생각을 무시할 것이 아니라 그 생각을 글로 써보자. 독자는 모르는 것에 대한 관심보다 일상적인 것, 평이한 것, 또는 자신이 잘 알고 있는 것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자. 사람은 아는 것에 더 관심이 많으며, 모르는 것에 호기심을 갖는 사람은 그보다 적다. 자신의 생각을 잘 정리만 한다면 어떤 것이든 다 좋은 글감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자신의 생각이든 타인의 생각이든 자심만이 가진 틀에 따라 잘 정리한 것이 글이다.

남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상대의 말이 멋있다고 생각되면 바로 메모를 했다가 글로 쓰라. 상대는 무심코 하는 말이지만 그 말이 멋진 글의 재료가 될 수 있다. 그 말을 한 사람은 무심코 한 말이기 때문에 자신이 그 말을 해 놓고도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다보면 그럴 듯한 말, 좋은 말들이 얼마든지 잡을 수 있다. 이렇게 글을 쓰는 사람은 항상 관심의 안테나를 켜고 있어야 한다.

책에서 읽은 내용 중 기억에 남는 이야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으면 그것을 자기 방식대로 정리하거나 그대로 인용하고 자기 나름의 코멘트를 달아보자 책을 읽다가 멋진 구절이 있다면 그것을 옮겨서 정리한다. 이이에도 TV를 보다가, 영화를 보다가, 신문을 읽다가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기억했다가 정리해 보자 그러한 것들이 좋은 글감이 된다.

나에게 찾아와서 조언을 구했거나 위로를 받은 사람의 경우를 글로 써 보자. 익명으로 쓰거나 가상의 이름을 써서 쓰자. 육하원칙의 항목대로 써 보자.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를 쓰되 순서는 구애받지 말고, 이 항목들이 모두 들어가 있나 체크해 보자.

조심할 것은 사랑, , 미움, 행복, 그리움 등 관념적인 것, 추상 명사로 분류되는 것들은 쓰지 말고 뒤로 미루자. 그런 것들로 글쓰기는 조금 어렵기 때문에 숙달이 된 뒤에 쓰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