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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4

[좋은수필]무명작가의 죽음 / 박범수

무명작가의 죽음 / 박범수

 

 

 

예식이 있어 서울행 전철을 타고 시청역에 내렸다. 덕수궁 대한문 앞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구호를 외치는 군중들이 보인다. 탄핵 무효와 법치주의 수호를 외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무리 속에는 나이가 들어 보이는 군복 차림의 사람들도 있다. 그들의 표정은 무겁고 진지하다.

동아일보사옥을 지나 광화문에 가까이 가자 적폐 청산을 주장하는 촛불시위대가 보인다. 단상에서는 경쾌한 음악과 구호가 흘러나온다. 축제 같다. 더 좋은 민주주의와 사회개혁을 요구하는 깃발과 팻말이 보인다. 젊은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밝고 역동적이다. 그들을 지나쳐 예식장이 있는 건물로 향한다. 두 무리의 풍경과 구호로 머리는 점점 혼란스러워진다.

결혼식 내내, 자유로운 토론이 불가능해 보이는 두 무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둘 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한국을 내세우고 있다. 순간 몇 년 전에 생을 마감한 선배가 떠올랐다. 그 형은 자신이 살아온 척박한 삶과 오늘의 사태를 어떻게 얘기할까.

19693월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면서 형을 만났다. 공무원 임명장을 받고 간 첫 근무지에서 공문 작성과 민원인을 상대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나이가 여섯 살 위인 형은 자상했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형은 자신의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들려주었다. 국문과를 수료했고 작가가 되는 것이 희망이라고 했다.

글을 쓴다는 것, 작가가 된다는 것이 너무나 멋있어 보였다. 중견 공무원인 부친과 가족 이야기를 들을 때는 형이 부러웠다. 달동네의 내 생활과 비교되었다.

전근 발령을 받고 첫 근무지를 떠난 후에도 형을 자주 만났다. 공무원 생활과 야간 대학을 병행하며 힘들게 생활하는 나는 형을 만나서 세상 이야기를 듣는 것이 즐거웠다.

군에 입대하기 며칠 전에 청장 부속실에서 근무하는 형을 만나러 갔다. 훤칠하고 다부진 체격, 부리부리한 눈에 광대뼈가 약간 튀어나와 사람을 압도하는 멋이 있었다. 형은 내 손을 억세게 잡으며 여행 떠나는 사람에게 하듯 호쾌하게 말했다.

"잘 다녀와. 네가 제대하는 3년 후에는 난 이름난 작가가 되어 있을 거다."

제대하고 제일 먼저 형에게 갔다. 그러나 형은 퇴직을 했고 어디에서도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전직을 하고 많은 풍파를 겪으면서 형을 잊고 살았다.

1980년대 전반, 출장을 간 곳에서 형의 동생을 우연히 만났다. 그는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었다. 명함을 교환하고 형의 근황을 묻자, 어두운 얼굴로 대답을 피했다. 형 소식은 신동아 잡지를 보면 안다고만 했다.

도서관에 가서 그가 적어 준 신동아월간지를 봤다. 형의 글이 신동아논픽션 우수작으로 실려 있었다. 글을 읽고 충격에 빠졌다. 격심한 탁류에 휩쓸린 한 사람의 이야기였다.

다시 동생을 만나 형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들었다. 형은 술자리에서 유신헌법을 근거로 발동한 긴급조치를 비판했고, 누군가의 고발로 그 자리에서 끌려갔다. 불명예 퇴직을 당했고 부친은 좌천되었다. 이혼하고 아들과 같이 살면서 가족들과 왕래가 끊겼다고 했다.

내가 전방에서 군대 생활을 하는 3년 남짓한 시간 동안 자유롭고 발랄한 형은 결혼해 가정을 이루었고, 퇴직 당했고, 이혼했고, 가족과 발을 끊었다.

얼마 후 형이 있다는 주소지로 찾아갔다. 마포구 변두리에 있는 고물상 야적장이었다. 폐품들이 쌓여 있는 마당에서 한 남자가 물건들을 옮기고 있었다. 형이었다. 바싹 말라있는 뒷모습이었지만 한눈에 알아봤다. 가슴이 먹먹했다. ", 범수예요, !"

형은 내 손을 잡고 웃었다. 얼굴이 검게 타 있어 삶에 찌들어 보였다. 마을 입구의 구멍가게로 내려가 형과 막걸리를 마셨다. 형은 이내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예전처럼 덧없는 세상 이야기와 문학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했다. 나는 군 입대 하기 전의 아우처럼 다소곳하게 들었다.

술이 들어가자 형은 완전하게 옛날 모습이 되었다. 내 어깨를 치면서 호탕하게 웃고 시국 현황과 울분을 토해냈다. 형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허허로웠다. 형을 이렇게 망가트린 그 무엇에 대한 강한 분노가 불같이 일어났다.

그날 이후 형은 간헐적으로 전화를 했다. 술에 취한 목소리로 근황을 들려주었다. 고물을 수집하면서 잡지에 짧은 글도 싣고, 자서전도 대필해준다고 했다.

형을 다시 만난 것은 세월이 한참 흘러간 2000년대 전반이었다. 출장 중에 여직원의 전화를 받았다. 남루한 복장의 남자가 찾아와서 나를 찾는다고 했다. 행색이 너무 안 좋아 보여서 돌려보내려고 했더니 나를 꼭 만나야 된다며 고집을 부리고 있다고 했다. 이름을 물어보라고 했다. 형이었다. 급하게 일을 마치고 복귀했다. 형을 보자 안타까운 마음이 일었다.

형은 도움을 청했다. 어렵게 키운 아들이 뒤늦게 대학에 입학했는데 학자금 융자를 받기 위해 보증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간절한 목소리였다. 전철을 타고 서울 종각에 있는 은행으로 함께 갔다. 가는 내내 우리는 상념에 잠겨 말없이 창밖만 응시했다. 형은 어느새 삶에 지쳐버린 60대 노인이 되어 있었다. 형의 얼굴을 마주하기가 편치 않았다.

몇 해 전 겨울,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형의 아들이 보낸 부고였다. 모든 일을 제쳐두고 형에게 갔다. 좁은 방 한 칸에 시신이 모셔져 있고 그 옆 작은 소반에 성모상이 세워져 있고 촛불이 타고 있었다. 문학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자유로운 삶을 꿈꿨던 형이 세상을 떠났다. 적막하게.

민주화 이후 유신헌법의 긴급조치는 위헌으로 판결되었다. 형은 지금의 두 무리가 주장하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하여 어떤 말을 할지 무척 궁금하다.

"어떤 정치가가 위대한 업적을 이룩했다고 해도, 국가는 국민의 인권과 존엄성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국가 권력의 범죄는 민주주의의 적이다."라고 얘기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