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마당에 푸른 달빛이 / 유호영
마을 사람들은 우리를 '꼼꼼히네'라고 불렀다. 윗마을 아랫마을 사람들 모두 그렇게 불렀다. 바깥양반이 부지런하고 빈틈없어 우리 집 마당에선 풀 한 포기도 자라지 못한다고들 했다.
아버지는 지나치게 완벽주의자였다. 짚단을 묶을 때만 해도 그랬다. 한 단 한 단 단단하게 묶어 그 밑동을 땅에 탁탁 내리치셨다. 그러면 짚 밑동이 밀가루 국수 다발처럼 가지런해졌다. 그렇게 묶은 짚단을 차곡차곡 마당에 쌓았다. 지붕 높이까지 네모반듯하게 쌓아올린 후 아버지는 사다리를 타고 천천히 내려오셨다. 그러고는 흐뭇한 표정으로 낟가리를 한참 동안 바라보고는 마당에 떨어진 지푸라기를 쓸어 모으셨다.
나뭇단을 쌓을 때는 더 정교했다. 나무 밑동을 두 줄로 맞대어 안쪽으로 들어가게 하고 가지는 바깥쪽으로 나오도록 길게 엮어 높이 쌓았다. 땔감 양이 겨울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되면 이엉으로 덮고 새끼줄로 단단하게 묶었다. 가로세로로 묶은 새끼줄의 간격이 일정했다. 아버지는 들쑥날쑥 삐져나온 나뭇가지를 이발사처럼 낫으로 다듬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균형과 정제의 아름다움, 평생 바라보면 좋겠다 싶을 모야잉었다.
동네 사람들은 우리 집 앞을 지날 때마다 나뭇가리를 바라보며 한마디씩 했다.
"오메! 예술이 따로 없구먼."
"저걸 아까워서 헐어 떄기나 허겠소?"
"보는 것도 아깝네그려!"
매일 아침 아버지는 형수를 위해 땔나무를 부엌까지 날라주셨다. 금세 아궁이 속으로 들어갈 나무인데도 장작개미 하나 흐트러짐 없이 네모반듯하게 쌓아놓으셨다. 아버지도 형수도 모든 것들이 정돈되어 있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으신 모양이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형수를 어머니보다도 더 좋아하셨다.
지금도 고향집 아래채에 딸린 창고 처마 밑에는 아버지가 쌓아놓은 장작이 남아 있다. 40년 가까이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장작더미는 작두로 자른 짚단처럼 앞면이 반듯하다. 길이뿐만 아니라 굵기도 일정하다.
보리나 타작할 때도 아버지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났다. 다 끝내지 못해서 다음 날 타작해야 하는데도 마당 설거지를 말끔하게 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멍석을 뒤집어 탈탈 털어내고 둘둘 말아 헛간 시렁에 올려놓고, 토방에서 마당까지 짚 부스러기 하나 없이 비질했다. 동트자마자 다시 어질러질 마당인데도 꼭 그렇게 뒷마무리를 하시곤 했다. 그런 아버지를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깔끔한 그 성격이 식구들까지 고달프게 했기 떄문이다.
비 오는 날만 빼고 나는 마당을 쓸어야 했다. 여덟 살 때부터였다고 기억된다. 해가 질 때면 좌불안석이었다. 공부하다가 미처 마당을 쓸지 못하기라도 하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리고 그날 저녁은 굶어야 했다.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
아버지의 이데올로기였다. 그래서인지 우리 집 마당에서는 가끔 장터가 서곤 했었다. 같은 물건도 우리 집 마당에 펼쳐 놓으면 더 빛이 났으니 장사꾼들이 선호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달 밝은 밤이면 아버지는 가끔 마루에 걸터앉아 있곤 하셨다. 입을 반쯤 벌리고 앉아 있던 아버지의 옆모습, 지푸라기 하나 없이 깨끗하게 쓸어놓은 마당 위에 쏟아지던 달빛, 그리고 모든 것을 남김없이 삼켜버린 밤의 정적, 아버지는 그렇게 달빛을 감상하고 계셨던 것이다.
어느 가을밤, 그날도 달이 밝았다. 아버지가 앉아 있던 그 마루에 나도 아버지처럼 걸터앉아 보았다. 티끌 하나 없이 정갈한 마당에 달빛이 쏟아져 내렸다. 푸른 달빛이 안개처럼 소리 없이 퍼지고 있었다. 아니, 그 푸른빛이 땅에서도 스며 나오는 것 같았다. 나는 그제야 아버지가 매일 마당을 쓸라고 한 뜻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30년 전에 돌아가셨다. 나는 아버지처럼 살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지나치게 빈틈이 없으면 나도 피곤하고 주변 사람들도 고달플 테니까. 그런데 언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아버지 행동을 내가 답습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현관에 신발이 헝클어져 있으면 그냥 두고 볼 수가 없다. 손주들이 와 금방 바깥으로 놀러 나갈 상황이라 해도 앞코를 맞추어 정리한다. 책상도 책이나 필기구가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아버지의 아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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