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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모기장 / 안도현

모기장 / 안도현

 

 

 

눈을 뜨면 모기장 안쪽 구석에 몇 마리 모기가 봍어 있었다. 낡은 모기장 안으로 밤사이 침입한 괘씸한 놈들. 이들은 배가 터질 듯이 빵빵해서 잘 날아다니지도 못했다. 손바닥으로 이놈들을 잡으면 선홍색 피가 묻어났다. 외할머니가 말했다. 내 아까운 피를 요놈들이 다 빨아 먹었네. 그렇게 한바탕 소란을 피운 뒤에 모기장을 걷었고, 그리고 아침이 왔다.

방충망 대신에 모기장을 치고 모처럼 그 곳에 들어가 보는 건 아주 색다른 경험. 마치 모기장 왕국의 왕이 된 기분이 된다. 모기와 나방과 풍뎅이와 매미는 짐에게 감히 범접하지 못할 것이로다.

엎드려 책을 읽는 일도 왠지 위엄과 기품이 있어 보인다. ,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황당한 착각이라는 것을 잠시 후에 깨닫게 된다. 모기장을 쳤으면 불을 꺼야 하는데 형광등을 켜놓았으니 온갖 날벌레들이 모기장 바깥에 붙어 있다. 나는 겨우 책 몇 줄을 읽고 있지만 그들은 아예 팬티차림의 나를 내려다보며 송두리째 읽고 있는 게 아닌가. 이 무슨 낭패란 말인가. 그렇다면 나는 영락없이 모기장 동물원에 갇힌 한 마리 서글픈 포유류가 아니던가. 모기와 나방과 풍뎅이와 매미에게 포위당해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인간.

책을 덮고 생각해본다. 저 곤충 손님들에게는 내가 모기장 안쪽에 있을까, 모기장 바깥쪽에 있을까? 나는 어떻게든 모기장 안이라고 우기고 싶지만 현명한 곤충 손님들은 이렇게 말할 것 같다. 너는 영원한 바깥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