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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황혼 육아 / 신노우

황혼 육아 / 신노우

 

 

 

매일 아침이면 선물이 현관문으로 들어온다. 눈을 또랑그리며 ‘할아버지!’ 부르며 내 품속으로 달려든다. 금방 적막감이 밀려나고 집안에 생기가 돈다.

오래전, 새벽 운동을 같이하는 분들의 화두(話頭)가 황혼 육아였었다. 교사로 퇴직한 팔십 대 초반의 어르신이 먼저 목청을 높였다. 손주들 육아 때문에 부부가 서울로 올라갔다고 했다. 초등학교 입학 때까지 돌봐주었는데, 그 후유증인지, 부부가 허리 수술과 위암 수술을 하고 내려왔다고 했다. 자기 자식은 스스로 키우도록 하는 게 맞으니 절대 맡지 말라고 일갈했다.

이야기를 들은 육십 대 중반의 할머니가 나는 이렇게 했노라 대쪽같이 나섰다. 아들 부부가 육아를 부탁했다. 내가 건강이 좋지 않아 돌봐주지 못한다고 무 자르듯 잘라 말했다. 차라리 매월 육아비로 백만 원을 보내주고 있다. 그런 탓에 듣고 싶은 강좌를 듣고, 여행도 가고, 매일 운동도 하니 행복하다며 당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앞으로 태어날 손주의 육아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어보았다. 아내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자기 자식에게 투자함이 가장 큰 투자이고 보람도 있을 테니 스스로 키우는 것으로 하자고 했더니, 아내는 알았다고 짧게 대답했다.

큰아들네는 직장 따라 구미에서 살고 있다. 며느리가 출산이 가까워지자 평소 내 생각을 알아챈 듯 전문직종인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하는 선택을 했다. 둘째 아들네는 부부가 같은 직장에 근무한다. 손녀가 태어날 즈음 아들이 집에 들렀다. 한참 뜸을 들이고 도스르다가 손녀가 태어나면 좀 봐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어이쿠, 올 것이 왔구나 싶은 찰나에 한 치 망설임도 없이 아내는 ’알았다‘ 라며 간단명료하게 답을 줘 버렸다. 아들은 고맙다며 달뜬 웃음을 지으며 돌아갔다.

아내에게 자기 자식이니 알아서 키우도록 두자고 그렇게 말했지 않았느냐고 벌침을 쏘았다. 아내는 요즘은 외가 쪽에서 많이 맡아준다고는 하지만, 사돈네 막둥이가 아직 고등학생인데 형편이 되느냐. 그리고 내 손녀이고 아직은 이렇게 건강하니까 내가 키워 주고 싶다고 눙쳤다. 나는 현실적으로 판단했건만 갑자기 나만 비정하고 옹졸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며느리의 육아 휴직이 끝나고부터, 출근길에 손녀는 우리 집에 맡겨졌다. 아내는 분유를 먹이고 안아 둥개질로 연신 벙실거리며 신바람이 났다. 나 역시 입을 꼬물거리며 방긋방긋 웃는 손녀가 귀여워서 강의나 봉사활동이 없는 날에는 같이 맴돈다.

손녀는 조작거리며 걷기 시작하고부터 블록 쌓기, 그림 그리기, 악기 놀이, 지점토 만들기, 병원 놀이, 숨바꼭질을 같이하자고 졸라댄다. 함께 놀아주다 보면 때론 성가시고 지치기도 한다. 그래도 다음 날 아침, 손녀가 올 시간이면 거실 불을 환하게 밝히고, 추울까 봐 전기장판 코드를 꽂은 뒤, TV 어린이 방송 채널로 얼른 맞춰 놓는다.

며칠 전에는 직접 만들었다며 카드를 선물로 내밀었다. ‘할아버지, 생신을 축하드려요’라며 삐뚤빼뚤 쓰였다. 아직 글자도 익히지 않았는데, 싶어 며느리를 바라봤다. 그림카드를 만들기에 ‘할아버지 생신을 축하드려요’를 써서 보여줬더니 몇 번 연습하여 썼단다.

요즘은 손녀의 출생 때부터 성장 과정을 하나하나 사진으로 담는 중이다. 훗날 손녀에게 뜻깊은 선물이 되도록 USB에 차례로 정리하고 있다.

아들 부부가 매일 집에 오니까 좋은 점도 있다. 컴퓨터 고장이나 휴대전화 사용이 궁금하면 즉시 해결해 준다. 필요한 물건 구매나 집에 손 볼 곳이 있을 때도 일사천리로 마무르고 해결해 준다.

여느 날처럼 손녀가 현관문을 들어서며 대뜸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한다. 내일부터는 엄마가 유치원에 데려다준다고 깡충거린다. 동생을 임신한 며느리가 삼 개월 후에 출산이라 회사에서 재택근무로 배려받았단다. 우리 채원이 매일 못 봐서 할아버지는 눈물이 나오려 한다고 했더니, 여섯 살 손녀가 날개 접은 나비가 되어 내 품에 살포시 안기며 주말에 오겠다고 한다.

손녀의 그 말이 귀에 쟁쟁한데, 일요일에 정말 왔다. 나를 주려고 만들었다며 쿠키 하나를 집어 입에 넣어 준다. 손녀의 마음만큼 달보드레한 맛이다. 손녀를 돌보지 않았다면 이런 살가운 행복을 느끼지 못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