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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별이 내리네 / 김정화

별이 내리네 / 김정화

 

 

 

검다. 온통 검은 세상이다. 검은 나무들이 검은 숲을 만들고 검은 하늘이 검은 강물 위에 내려앉았다. 달마저 숨은 그믐밤, 강을 에워싼 맹그로브 숲의 바람도 잠이 들었다. 몇몇 여행자를 실은 나뭇배 사공은 말없이 노를 저었다. 말레이 서쪽 반도 셀랑고르 강을 따라 반딧불이를 찾아가는 중이다.

어릴 때 내가 살던 외딴집 근처 강 숲에는 지천으로 반딧불이가 많았다. 전깃불이 없는 시골집에 강가의 반딧불이가 모여들면 나는 잠도 잊은 채 꼬리에서 반뜩이던 조그만 등불을 눈이 시리도록 올려다보았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개똥별이라고 부르고 윗동네 조무래기들은 까랑이라고 했다. 어른들이 부르는 반디나 개똥벌레가 반딧불이라는 것도 알았지만 동네 광자 언니가 이름 붙인 땅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언젠가 나는 그 이름을 흉내 내어 지상의 별이라는 제목만 근사한 시를 긁적여 보기도 했다.

드문드문 보이던 촌락도 자취를 감춘 지 꽤 오래되었다. 배가 밀림 깊숙이 들어갈수록 물살은 험했고 물은 점점 깊어졌다. 갑자기 배가 휘청거리더니 강 한가운데 턱 멈춰 선다. 문득 아까 나루터에서 원주민 소년이 강에 악어가 산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 입술이 바싹 탄다. 옆자리 중국인 노부부가 서로 바짝 당겨 앉는다. 다들 말이 없다. 정말 반딧불이를 볼 수나 있을까.

오래전 남호주에 있는 와인밸리에 간 적이 있다. 여름 해가 이울도록 광활한 포도 농원의 풍광에 빠졌다가 돌아 나오는 시간을 훌쩍 넘기고 말았다. 황톳길 언덕에는 황량한 바람만 불어댔다. 길을 놓친 여행자에게 불빛만큼 반가운 일이 있을까. 작은 마을길을 들어서자 갑자기 모퉁이가 환해졌다. 신기하게도 크리스마스트리가 커다란 창문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일 년 내내 크리스마스 용품을 파는 가게라고 했다. 한여름의 크리스마스트리도 놀라웠지만 어둠 속에 별빛을 모아놓은 듯한 그 이국의 풍경이 아직도 눈에서 익는다. 이곳 밀림 풀숲에도 땅별의 기적은 일어날까.

사공은 한참 만에 배 바닥에 엉킨 그물을 걷어내었다. 다시 걸쭉한 물살을 가르며 배가 미끄러져 들어간다. 검은 하늘 아래 검은 강 위에 홀로 남겨진 배가 고요를 싣고 흐른다. 마치 암흑천지 세상에 홀로 떠가는 인생처럼. 이 낯선 강의 어둠도 내 인생의 여울목이라고 생각하면 괜찮다. 두려움쯤이야 숨 고르기 몇 번 하면 사라지는 것을. 가슴 밑바닥까지 치는 고요를 만나기가 어디 쉬운가. 내밀한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두 번 없는 기회니까.

얼마쯤 더 갔을까. 줄기를 뻗어 강에 발을 담근 맹그로브 나무뿌리가 희끗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그 위로 어둠을 걷어내는 은빛들이 물결치듯 일렁거렸다. 검은 물, 검은 나무, 검은 하늘 사이로 드러나는 것은 오직 하얀색. 희디흰 반딧불이가 검은 숲을 하얗게 태우고 있다. 한두 마리가 아니다. 수백, 수천 마리가 숲을 뒤흔든다. 경이로웠다. 나의 여행길에서 가장 성스러운 순간이다. 진정 그들이 땅 위의 별이다.

반딧불이들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몸짓도 향기도 아닌 빛으로만 사랑을 속삭인다. 온몸을 밝히고 그 뜨거운 몸을 바쳐 구애를 한다. “그대여, 나에게로 오세요.” 그들에게 주어진 생명은 겨우 열흘 남짓. 일여 년을 풀숲과 땅속에 살다가 날개가 돋으면 비로소 단 한 번의 외출을 한다. 당연히 사랑도 단 한 번뿐이다.

짧은 생이 얼마나 기막힐까. 울 수 있는 시간조차 없기에 스스로 소리마저 삼켜버린 것은 아닌지. 눈물겨운 몸짓, 빛나게 끝나는 사랑이다. 그래서 우리는 반딧불이를 두고 슬픈 발광發光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 빛을 오랫동안 쳐다보고 있으면 당신도 사랑하고 있나요?”라며 그들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별이 내린다. 지난날 호주의 와인밸리에서 보았던 인공의 별빛이 아니다. 검은 하늘의 흰 소낙별들이 모두 이곳 맹그로브 밀림 숲에 머리를 부딪고 산산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 인간의 숨소리조차 감히 끼어들 수 없는 고요.

셀랑고르 강의 별들이 태어나고 또 생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