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처 / 조이섭
눈동자에 비치어 나타난 사람의 형상을 눈부처라고 한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거울을 보지만, 눈동자에 어린 자기 얼굴을 본 적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코를 거울에 닿을 듯이 하고 뚫어지도록 봐야 눈부처가 보인다.
쌍둥이 손녀가 마주 쳐다보고 있다. 둘 다 표정이 김 조각처럼 까만 것이 꽤 심각하다. 마주 보고 서서 무어라 옹알이를 해대는데, 곁에 있는 할애비는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으니 참견도 못 한다. “아니야, 흥!” 하며 고개를 모로 꼬기도 한다. 이윽고 서로의 눈동자에서 눈부처를 찾아낸다.
한 녀석이 “‘아니야’ 하지 말고 ‘응’ 해야지”라고 화해를 청한다. 다른 녀석이 “응, 고마워” 하며 받아들인다. 무언가 모를 타협이 이루어진 듯하다. 금세 목젖이 보이도록 까르르 웃는다.
쌍둥이의 눈부처는 마음을 곱게 물들이나 보다. 맑은 눈에 비친 눈부처에서 자기의 근원을 본다. 제가 조금 크다고 뻐기거나 잘 났다고 고개를 젖힐 일이 아니다. 잘난 척, 아는 척, 괜찮은 척, 있는 척을 해 봐야 쌀알보다 작은 눈부처 안에서는 그게 그거라는 걸 안다.
네 살배기 손녀들이 아는 것을 낡고 닳아빠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상대의 눈에 비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상대도 생각하고 지지해 주기를 일방적으로 바랐다. 그렇지 않으면 섭섭해하고, 사내답지 못하게 험담을 하거나 심지어 절교까지 서슴지 않은 적도 있었다.
손거울을 가까이 대고 나를 본다. 어느새 광배가 된 희미한 눈동자의 홍채 속에 일그러진 얼굴이 들어 있다. 세상 풍진에 찌들고 지친 눈부처 하나.
맑고 깨끗한 쌍둥이의 눈에 비치는 할아버지 모습만이라도 맑았으면 좋겠다. 그 모습을 녀석들이 오래 기억하면 좋겠다는 바람 하나 품어본다. 그러려면 하루하루를 쌍둥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쌍둥이의 마음으로 살아야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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