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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눈부처 / 조이섭

눈부처 / 조이섭

 

 

 

눈동자에 비치어 나타난 사람의 형상을 눈부처라고 한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거울을 보지만, 눈동자에 어린 자기 얼굴을 본 적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코를 거울에 닿을 듯이 하고 뚫어지도록 봐야 눈부처가 보인다.

쌍둥이 손녀가 마주 쳐다보고 있다. 둘 다 표정이 김 조각처럼 까만 것이 꽤 심각하다. 마주 보고 서서 무어라 옹알이를 해대는데, 곁에 있는 할애비는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으니 참견도 못 한다. “아니야, !” 하며 고개를 모로 꼬기도 한다. 이윽고 서로의 눈동자에서 눈부처를 찾아낸다.

한 녀석이 “‘아니야하지 말고 해야지라고 화해를 청한다. 다른 녀석이 , 고마워하며 받아들인다. 무언가 모를 타협이 이루어진 듯하다. 금세 목젖이 보이도록 까르르 웃는다.

쌍둥이의 눈부처는 마음을 곱게 물들이나 보다. 맑은 눈에 비친 눈부처에서 자기의 근원을 본다. 제가 조금 크다고 뻐기거나 잘 났다고 고개를 젖힐 일이 아니다. 잘난 척, 아는 척, 괜찮은 척, 있는 척을 해 봐야 쌀알보다 작은 눈부처 안에서는 그게 그거라는 걸 안다.

네 살배기 손녀들이 아는 것을 낡고 닳아빠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상대의 눈에 비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상대도 생각하고 지지해 주기를 일방적으로 바랐다. 그렇지 않으면 섭섭해하고, 사내답지 못하게 험담을 하거나 심지어 절교까지 서슴지 않은 적도 있었다.

손거울을 가까이 대고 나를 본다. 어느새 광배가 된 희미한 눈동자의 홍채 속에 일그러진 얼굴이 들어 있다. 세상 풍진에 찌들고 지친 눈부처 하나.

 

맑고 깨끗한 쌍둥이의 눈에 비치는 할아버지 모습만이라도 맑았으면 좋겠다. 그 모습을 녀석들이 오래 기억하면 좋겠다는 바람 하나 품어본다. 그러려면 하루하루를 쌍둥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쌍둥이의 마음으로 살아야 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