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돌고기 안주 / 박문하

돌고기 안주 / 박문하

 

 

 

여름 한철 동안은 병원의 진료시간이 낮과 밤이 서로 뒤바뀌는 경우가 많다. 시원한 틈을 타서 환자들이 아침이나 밤중에만 병원에 몰려들기 때문에 더위가 한창인 대낮에는 병원이 텅텅 비워져 있을 때가 많다. 이러한 한낮이면 나는 여름 방학 동안에 집에서 놀고 있는 열 살짜리 막내딸인 민옥이를 데리고 곧잘 가까운 시냇가로 나간다.

포장이 잘된 시외도로를 버스로 약 30분 동안만 달리면 두구동과 양산 사이 경계선을 끼고 흐르는 큰 시냇가에 다다른다. 천변川邊 속에서는 한가로운 매미의 울음소리가 한창이다. 지금은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고행풍경이 되살아 난 것 같다.

훌훌 옷을 벗어 던지고 맑은 시냇물 속에 풍덩 뛰어들면 그 상쾌한 맛이란 해수욕장에 비할 바가 아니다. 내가 이렇게 여름철에 북적거리는 바다보다도 조용한 시냇가를 더 좋아하게 된 것은 근년에 와서 차차 사람대하기가 싫어지는 반면에 수목이나 수석 같은 자연물레 정을 붙이게 된 때문이다. 나무 기르기보다도 수석 취미는 나같이 게으른 사람에게는 더욱 안성맞춤이어서 일단 채집만 해 놓으면 수장收藏하는 데는 힘이 들지 않아서 좋다. 그래서 몇몇 동호인들과 함께 우리나라에서는 제일 먼저 대한수석회라는 단체를 만들어서 2회에 걸쳐서 수석전시회를 가진 바도 있다.

수석이란 용어는 산수경석山水景石이란 말을 줄인 말인데 그 산지에 따라서 산석山石 천석川石 해석海石은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 돌을 빼 놓고서는 별로 신통한 것이 없기 때문에 여름철의 채석採石은 비가 자주 내려서 냇물이 범람하여 물속에 파묻힌 돌이 노출되고 또 냇가의 돌이 깨끗이 씻어지는 천석川石이 가장 좋다.

금년 여름 들어서 벌써 10여 차례나 이곳 두구동 냇가를 찾았으나 번번이 빈손으로만 돌아갔건 것이 오늘은 간만에 꿈이 좋았던 탓인지 물고기 모양의 근사한 물형석物形石 한 개를 주었다. 너무나 마음이 흡족해서 천변가 주막에 들려서 돌을 술상 위에다 올려놓고 막걸리 한 잔을 청했다. 40대 주모는 돌 모양을 알아보았는지 진짜 고기는 잡지 않고 돌 고기를 잡았군요.”하고는 웃는다.

돌 고기 한번 쳐다보고 술 한 잔 마시고 술 한 잔 마시고는 돌 고기를 어루만지는 내 모습이 하도 우스웠던지 주모 아주머니는 옛날에 진주 자리꼽재가는 그래도 생선이라고 사서 달아 놓고 그것을 바라보면서 밥을 넘겼다는데 돌덩어리만 쳐다보고 술 마시는 사람은 내 생전에 처음이야!” 하고는 투덜거린다. 그러나 오늘따라 술맛은 한결 더 풍미롭고 돌을 어루만지는 내 마음속에는 한 여름의 무더위쯤 간곳이 없고 다만 시원한 청풍만이 오락가락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