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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허공 / 고경서

허공 / 고경서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탁 트인 수평선에 침침한 눈을 씻고 뒤돌아본다. 거대한 빌딩 숲 사이로 타워크레인 몇 대가 허공을 마구 찌르는 현장이 시야에 들어온다. 땅거죽을 쿵쿵, 쾅쾅 내리치는 굴착기의 굉음에 귓바퀴가 얼얼해도, 땅속 깊이 철골을 박는 통증에서 눈썹 하나 끄떡하지 않는다. 새로 짓는 건물로 체적이 줄어들어도 분노하거나 슬퍼하지 않는 허공이다.

허공은 광대무변하다. 어떤 이는 텅텅 비어 막막하다 이르고, 이나 무를 들먹이며 허무의 공간이라는 말도 들린다. 그럴 때마다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제 품안에서 천지만물이 생을 일궈 나가기 때문이다 새들이 날아다니고, 배배 꼬인 넝쿨을 지지대 삼아 뻗는 나팔꽃들, 도둑고양이 울음이 자라는 으슥한 골목도 허공의 영역이다. 왕거미 한 마리가 조감도 없이 바람 모지를 파고, 메우고, 헐어내는 데 정신이 팔려 있다. 정교한 솜씨로 단단히 벽을 세우는 작업에 혀를 내두르다가도 거친 바람을 매만지는 감성파이다. 이렇듯 심덕이 너그러운 허공은 뭇 생명체들의 길이요, 집이다.

땅과 하늘 사이에 광포한 태풍이라도 몰아치면 허공은 중심을 잃고 흔들리기 십상이다. 언제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쳐 무너질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다. 허공은 바닥에 대한 뜨거운 갈망을, 바닥은 지상을 날아오르는 원대한 꿈을 가졌다. 지상에 뿌리내리려는 허공의 결연한 의지가 수직 상승을 꿈꾸는 인간의 욕망과 의기투합해서 만든 게 인간 세상의 구조물이 아닐까. 땅을 열고 파내려간 지하에 강철로 된 뿌리를 심어 우뚝 일어선 것이다. 큰 건물일수록 뿌리가 깊다. 이들은 땅 위에 빼곡히 들어차 허공을 떠받다는 지렛대요, 버팀목인 셈이다.

마천루摩天樓는 이러한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도전 의지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나 두바이의 '브루즈 할리파', 우리나라도 한때 인구에 회자하던 '63빌딩'이나 '롯데월드 타워'가 그것이다. 이름값이 걸맞게 위풍당당하다. 해운대라는 지명도 한자어로 바다 위에 하늘을 떠받칠 구름 기둥을 세우는 형상이니 먼 훗날인 지금, 이곳에 초고층 건물이 군락을 이루리라는 선견지명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세계 도처에서 자랑하는 마천루들은 이렇게 탄생했으며 수세기를 거치면서 진화해 가는 중이다.

허공은 허공만이 아니다. 산이나 강, 들판과 바다 등 자연 그대로를 빼닮은 지형지물도 허공의 영토다. 땅 모양새가 뾰족하고 울퉁불퉁하거나 편평한 지상에 사람들은 자신이 소유한 땅의 크기에 따라 건물을 올린다. 대지의 평수에 비례해 허공을 차지하는 면적이 다르다는 뜻이다. 땅을 많이 가진 부자는 큰 건물을, 땅 한 평 없는 빈자는 허공 한 평도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 쓸모없이 버려진 자투리땅이나 홍수에 유실될 모래땅도 엄연히 임자가 있다. 예로부터 허공의 지적도에 등재된 자만이 그 권한을 행사하도록 성문화成文貨되어 왔다.

내가 이렇게 단정하는 데 편견이나 왜곡이 있다고 시비를 걸거나 반박에 나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고대 잉카제국의 마추픽추나 크메르 왕국의 앙코르와트를 보면 수긍하리라 본다. 허공만이 아는 안데스산맥의 험준한 산봉우리에, 대평원의 밀림지대에 은밀히 뿌리내린 거대한 유적들. 일찍이 땅과 허공이 내통한 흔적이다. 이들은 허물어져 뿌리로 연명하면서 지난날의 영화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곳을 찾아 역사를 캐내는 후예들은 사라진 왕조를 반추하며 '잃어버린 공중도시'라고 명명하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인간이 잠시 점유하다 소유권자인 허공이 환수해 가면서 존재의 시간으로 남겨둔 것이다. 먼 훗날 신화마저 종적을 감추는 사차원의 세계에선 이들을 대신할 유일신은 아마도 허공이라는 생각으로 하늘을 우러른다.

장자의 붕새가 남극 바다로 비상하는 시각이다. 천상과 지상을 두루 품는, 날개 길이가 삼천 리라 하루에 구만 리를 비행하는 새다. 그 날갯짓 틈으로 본 허공의 북망산천에 새로운 행성이 몇 채 늘었다. '성인은 메추라기 둥지 같은 작은 집에서 살고, 병아리처럼 적게 먹으며, 새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고 떠난다.'고 했던 장자처럼 당신 스스로를 길손이라 일컫던 아버지. 곤고한 생을 끝내시고, 허공으로 이사 가서 가택이나 마련하셨을까. 총총 박힌 별무리 속에서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는 저 별은 내가 세상이라는 뿔에 치받혀 상처 입을 때마다 몇억 광년을 달려와 글썽이는 눈빛으로 어루만져주는, 내 가슴에 뿌리내린 아버지의 영원한 안식처다. '새는 둥지가 있고, 짐승도 굴이 있건만 내 평생 집도 없이 외로운 나그네로 슬퍼했도다.'라고 노래한 방랑시인 김삿갓도 죽어서야 당신 명의로 된 빗돌로 문패를 달았을 것 같다.

나는 땅 한 평도 없다. 내가 좋아하는 비파나무, 제비꽃도 진정한 내 소유가 아니다. 이는 벽이나 울타리를 쳐서 구획이나 지번으로 단속할 소유물이 없다는 말이다. 내 몫이래야 고작 두 발을 딛고 선 이 모래사장에서 양팔을 벌린 너비와 높이로 해풍을 마시는 크기 정도다. 몇 헥타르의 토지나 아흔아홉 칸 집의 평수는 인간 욕망의 계측 단위일 뿐 이도저도 허공의 소유물이라는 생각에 이르면 가난도 크게 남루하지 않다. 허공은 내가 마지막으로 고해성사를 하고, 육신을 의탁할 거처이기 때문이다.

허공은 만물의 주인이다. 나는 잠시 그의 문간방에 세 들어 사는 사람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