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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아버지 / 박재완

아버지 / 박재완

 

 

첫 제사다. 동생이 술잔에 술을 채웠다. 술잔이 향 연기를 넘어갔다. 아버지는 향 너머에 계셨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직 ‘삶’‘삶’ 쪽에 가까웠다. 기억의 윤곽들이 아직 선명했다. 한 순간의 죽음이 한 사람의 삶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다. 특히 자식에게 부모의 존재부재는 살아 있음과 죽어 없음으로 간단히 치환되는 것이 아니었다. 서로의 삶이 서로의 삶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절을 올렸다. 내가 절을 마치자 동생이 잔을 거둬왔다. 다시 동생이 술잔에 술을 채웠다. 다시 향 연기 위로 술잔이 넘어갔다. 조그만 제사상 안에 두 개의 세상이 있었다. 술잔만이 넘어 다닐 수 있었다. 멀었던, 아버지. 죽음이 삶을 더 분명하게 짚어줬다. 오늘 같은 날엔. 아내와 자식보다는 본인의 삶에 훨씬 더 집중했던 남편과 아버지. 남편보다는 남자로서의 인생이, 아버지의 자리보다는 흔들리지 않는 자존심의 가 우선이었던. 시대가 눈감아준 일탈들. 덕분에 끝까지 남편일 수 있었고, 아버지일 수 있었던 삶. 아버지의 삶에서 떠오르는 문장들이 아버지를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어려서는 무섭기만 했던 아버지. 끝까지 무섭기라도 했다면 차라리 좋았을 것을. 무서웠던 시절은 차라리 찬란했다. 더 이상 무섭지 않은 아버지. 그때부터 아버지는 먼 사람이었고, 그때부터 가족들은 힘들었다. 죄인은 아니었지만 충분하지 않았던 게 슬픔의 뿌리였다. 아버지의 자리보다 자신의 자존심을 더 걱정했던 가장은 경제적 빈곤을 명쾌하게 해결하지 못했고, 남편보다는 남자로서의 인생에 집중했던 가장은 가정의 윤리와 질서에 관여하지 못하게 됐다.

동생과 함께 절을 올렸다. 절을 마치고 다시 동생이 잔을 거둬왔다. 나와 열 살 넘게 나이 차이가 나는 동생은 어릴 적에 나에게 매를 맞았고, 내 앞에서 울었다. 아버지에게 매를 맞지 못했고, 아버지 앞에서 울어보지 못했다.

어머니가 국을 물리고 냉수에 젯메를 말며 말했다.

내년 제사 땐 아버지 사진 좀 바꿔야겠다.”

시대가 눈감아준 사람을 어머니가 어쩔 것인가. 어머니는 단념이었다. 단념으로 사는 삶은 함께 서 있는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외로운 사람을 바라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때 알았다. 침묵의 말들을 알아들어야 했고, 보이지 않는 어머니를 늘 보고 있어야 했다. 어머니를 바라보는 일도 아버지를 바라보는 일 못지않게 힘들었다.

마지막 절을 올렸다. 아버지는 향 너머에 계셨다. 그리고 그를 사랑하지 못했던 가족들은 그가 남긴 밥을 먹기 위해 모여 앉았다. 어머니가 음복을 했다. 어머니는 술잔을 당신 앞으로 당겨 놓고 세 번에 나눠 잔을 비웠다. 잔을 비운 어머니가 아버지의 사진을 챙기며 다시 말했다.

아버지 사진 바꿔야겠다.”

돌아가셨을 때 급하게 만든 영정이었다. 말년의 모습이라 싫으신 것 같다.

말년의 아버지는 하루하루 부서지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때의 아버지 모습이 그 사진에서 떠오르는 것 같았다. 당뇨라는 병은 사람을 나뭇잎처럼 갉았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 새벽이었다. 타들어가는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병원 좀 가야겠다.”

아버지는 이미 많은 합병증으로 퍽퍽 쓰러지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소변을 볼 수가 없다. 병원에 가야겠다. 너무 힘들다.”

소변을 빼내고 병원 침대에 누워계시던 아버지가 말했다.

미안하다.”

나는 그 미안하다는 말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병원에 가자고 한 일이 미안할 일인가. 자식 앞에서 아픈 몸이 미안할 일인가. 나의 아버지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가세요.”

나는 집에 돌아와 아버지의 방문을 닫으며 후회했다. 유언처럼 들리던 그 미안하다는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던 것이 후회스러웠다. 그러고 나서 아버지는 며칠 못 사셨다. 가을이 시작될 때 가셨다.

첫 번째 제사를 모셨다. 나도 열일곱 살 딸을 둔 아버지다. 나도 남편보다는 남자로서의 인생이 더 걱정될 때가 있다. 아버지의 자리보다는 알량한 자존심이 지켜주는 의 자리에 더 집중하고 싶을 때가 있다. 딸아이의 자아가 쑥쑥 자라는 것을 볼 때, 나는 두렵다. 내가 꾸린 가정의 윤리와 질서에 관여할 수 없는 날이 올까 봐 두렵다.

, 갈게요.”

동생 내외가 일어섰다. 내년 제사엔 아버지 사진을 다른 사진으로 바꿔야할 것 같다.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의 기침소리가 아버지와 닮았음을 알았다.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의 두상이 아버지와 닮았음을 알았다. ‘아버지로 사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