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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시련 1 / 김영관

시련 1 / 김영관

 

 

1975년 시월이었다. 나는 근무지를 울산시 언양면에서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산골이라 쉽게 집을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백일을 갓 넘긴 아이와 산후조리가 부실한 아내를 데리고 근무지로 향했다.

어렵사리 농가의 문간방 하나를 구했다. 시월 하순인데도 대관령 산골의 밤은 남쪽에서 듣고 온 것보다 훨씬 추웠다. 낮 기온은 15도까지 올라갔지만, 밤 기온은 영하 3도까지 내려갔다. 낮과 밤의 기온 차가 심해 보온이 부실한 농가 문간방은 어른도 견디기가 버거웠다.

아이가 이틀째부터 기침을 시작했다. 진부면에는 병원이 없었다. 약방에서 약을 사 먹였지만, 기침은 점점 심해갔다. 코일형의 전기난로를 샀다. 밤낮없이 아이의 곁에 난롯불이 켜져 있었지만, 일주일이 지나자 아이의 고열과 기침 때문에 아내와 나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만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틀에 한 번씩 병원이 있는 강릉을 오가기로 했다. 두 시간에 한 번 있는 급행 버스는 비포장과 포장도로를 번갈아 운행, 편도 한 시간 반이나 걸렸다. 버스가 진부에서 대관령 고갯길을 오르는 비포장도로에선 버스 꽁무니에 뽀얀 먼지를 길게 달았다. 의자 밑에선 돌멩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고, 이따금 머리가 버스 천장에 닿도록 엉덩방아를 찧기도 했다.

병원 갔다 온 날 밤엔 아이는 기침을 더 심하게 했고 산후조리가 부실한 아내는 칠월 가뭄의 수숫대처럼 축 늘어져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세 번째 병원에 가는 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침에 밥 한술도 뜨지 않던 아내 얼굴이 떠올라 불안감을 더해주었다. 점심때 회사로 전화가 왔다.

폐렴이 너무 심해 당장 입원해야 한 대요.” 수화기 너머에서 울먹이는 아내의 목소리가 나를 긴장시켰다.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뛰었다. 숨을 헐떡이며 버스 시간표를 확인했다. 한 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는 시간이 나를 고문했다. 쫓기는 사람처럼 서성거리며 분침과 시침에 눈총을 수없이 쏘았지만 시침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자리걸음만 걷고 있었다.

터미널에서 병원까지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지만 나는 택시를 탔다. 이 층 병실 문을 밀고 아내 얼굴부터 살폈다.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평소 약한 아내의 몸이 요 며칠 동안 더 수축해져 울먹이는 어깨가 겨울 찬바람에 움츠린 갈대처럼 가늘게 흔들렸다. 병상으로 다가가 아이를 내려다봤다. 얼굴이 창백하고 작은 손등에 주삿바늘이 꽂혀 있었다. 마음이 아팠다.

아무것도 안 먹었지?” 아내는 울먹였다. 짬뽕 두 그릇을 시켜 아이의 병상 침대 아래에 펼쳤지만 둘 다 절반도 못 먹고 젓가락을 놓았다. 우리의 병원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난 병원에서 씻고, 자고, 먹으며 왕복 세 시간이나 걸리는 시외버스로 출퇴근을 해야 했다.

입원 팔 일째, 아이의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퇴원을 요청했다.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나와 아내는 우리의 딱한 처지를 설명하며 퇴원을 간청했다. 한참을 망설이던 의사는 조건을 달았다. 일주일은 매일 병원에 와서 주사도 맞고 약도 타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병원에서 조금 떨어진 골목 안 여인숙에서 일주일을 버티기로 했다. 여인숙 방은 좁긴 해도 우리들만의 공간에다 따뜻한 방바닥에 등도 녹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병원비를 아낄 수 있어 좋았다.

다음 날 아침 화장실을 찾았다. 여인숙 대문 옆 허름한 창고 앞에 두 사람이 쌍을 찡그리고 서 있었다. 난 직감적으로 그곳이 공동 화장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전쟁에 끼어들면 영락없이 지각할 수밖에 없겠구나!’ 난 터미널 화장실을 이용하기로 했다.

여인숙 생활 엿새가 지나자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아침 버스에서 눈을 감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병원비는, 아이의 분윳값은 그리고 이 지루한 생활은 언제쯤끝나게 될지 캄캄한 동굴 속을 헤매고 있는 것 같았다.

퇴근길 술이라도 거나하게 취해보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며 여인숙 방문을 열었다. 아내가 오랜만에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의사 선생님이 내일부터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단다. ‘이렇게 기쁠 수가!’ 우리는 그날 직장 동료에게서 빌린 돈으로 순대도 사고 아이의 분유도 두통이나 샀다. 백만장자가 부럽지 않았다.

오랜만에 입맛이 돌아온 나는 젓가락질에 열중하다 아내를 건너다봤다. 집사람은 몇 숟가락 떠다 말고 트림을 계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