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 2 / 김영관
마침 일요일이었다. 강릉에서 새벽같이 집으로 돌아왔다. 보름 동안 비워둔 집은 엉망이었다. 종일 청소에 매달렸다. 아이도 쌕쌕거리며 잠을 자고 오랜만에 집사람이 해주는 하얀 쌀밥에서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이젠 살 것 같았다. 이것이 사는 재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집사람은 저녁밥을 몇 술 뜨지 못했다. 난 머릿속이 복잡했다. 보름 동안 제대로 먹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마음고생이 심해서일까, 아니면 어디가 큰 탈이라도 났단 말인가?
“소화제 사 올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겨울 동 잠바를 걸치고 면 소재지로 뛰었다. 산모퉁이를 돌아가는데 겨울 강원도 산간 밤바람은 상상 그 이상으로 차가웠다.
약방에서 활명수 한 병과 소화제 몇 알을 사서 문을 나서다 옆 가게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찐빵에 눈이 갔다. 나는 집사람에게 새로운 걸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빵 두 개를 샀다. 활명수와 소화제 그리고 가슴에 품고 온 빵을 권했다. 아내는 빵 한 개를 다 먹지 못하고 연신 하품을 하다 스러질 듯 자리에 누웠다. 측은한 마음에 나도 누워 집사람의 손을 꼭 잡았다. 전에 없이 손이 차가웠다. 종일 추위에 일해서인가 보다 생각했다.
얼마를 잤을까? 잠결에 ‘으-음’하는 신음이 희미하게 들렸다. 아내의 손을 더듬었다. 손이 얼음장처럼 싸늘했다. 다리를 툭툭 쳤다. 장작처럼 뻣뻣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내를 흔들어 깨웠으나 신음만 가늘게 낼 뿐이었다. 나는 어찌해야 좋을지 막막했다. 다급하게 주인아주머니를 깨웠다. 아주머니가 아내를 살피고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이 때문에 그 고생을 하다 집에 온 하루 만에 또 이런 일이…” 아내를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에 무작정 회사 사무실로 뛰었다. 밤새 내린 폭설에 발목까지 빠졌다. 탄식이 절로 나왔다. 도대체 난 전생에 무슨 큰 죄를 지어 이런 시련이 닥칠까? 이게 운명이란 말인가? 아니면 신이 나의 인내를 실험하고 있단 말인가? 몇 번이나 두 눈을 훔쳤다.
우여곡절 끝에 회사에서 픽업 차량을 배차받았다. 차를 운전 집으로 오는데도 몇 번이나 후진과 전진을 거듭해야 했다. 작은 화물차는 아내를 뉘는 것도 비좁았다. 할 수 없이 아이는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부탁했다.
폭설이 내린 대관령 고갯길은 차가 전진하기엔 위험 그 자체였다. 그러나 나는 가야 했다. 이를 악물었다. 전진하다 헛바퀴가 돌면 타이어 앞의 눈을 치우느라 대관령 고개의 매서운 눈바람 속에서도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다. 이 세상에 나 혼자뿐이었다. 도움을 요청할 수도, 도움을 줄 그 누구도 없었다. 나를 도와줄 아내는 의식을 잃고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세 시에 진부를 출발한 차량이 삼십여 킬로미터 떨어진 강릉에 도착하자 먼 산에 동이 트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아내는 의식이 없었다. 병원 문을 두드렸다. 의사가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세 번째 병원에선 반 소란을 피웠다. 오직 아내를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이 층 창문이 열리고 잠을 덜 깬 간호사의 말이 더디게 내려왔다.
“원장님께 물어볼게요.” 난 이 층 창문을 향해 몇 번이고 절을 했다.
오십 전후의 원장은 서두르는 것이 없었다. 온몸이 백지장이 된 아내를 느리게 진찰을 하곤 복부 사진을 찍으라 했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의 기다림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감내하기 힘이 들었다. 나는 아내 곁에 앉자 두 손을 모으고 알고 있는 모든 신을 들먹이며 주문을 외우고 외웠다.
“급성 췌장염입니다. 입원해야 합니다.” 입원실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나에게 젊은 직원이 다가와 냉정하게 말했다.
“입원 수속하세요.” 그리곤 진찰비, 검사비, 입원보증금 등을 조목조목 외웠다. 나는 잘못을 저질러 선생님 앞에 불려간 초등학생처럼 주눅이 들어있었다.
“돈은 집에 가서 가져올 테니 입원만 좀 시켜주세요.” 사원증을 내밀며 되풀이 애원하자 그가 원장실로 들어가고 나는 손을 가슴에 얹었다.
입원 병실은 온돌이었다. 그러나 환자 이불이라곤 낡아 헤진 군용 담요 두 장이 전부였다. 의아해 간호사를 쳐다보자 입원 환자가 드문 병원이라 그 담요도 자신들이 덮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점퍼를 벗어 아내의 몸을 덮었다. 조급한 나의 마음과는 달리 잠을 설친 간호사는 굼벵이처럼 꾸물꾸물 거렸다. 몇 번의 독촉 뒤에야 환자의 팔에 주삿바늘이 꽂혔다. 난 아내 곁에 앉아 두 손을 모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아내 얼굴에 핏기가 오르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신 괜찮아?” 눈을 맞추자 아내는 아이 이름을 입가로 흘리며 두리번거렸다. 그제야 진부에 두고 온 아이가 생각났다.
순간 나는 앞뒤가 없는 전차처럼 어느 쪽이 더 시급한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두리번거리다 시계를 봤다. 어느새 시침이 열 시를 넘고 있었다. 나는 원장실 문을 밀고 들어가 다짜고짜로 말했다.
“우리 집사람 괜찮겠습니까? 갓난애를 데리러 가야 하는데요.”
“두고 봅시다.”
진부로 돌아오는 길은 제설작업을 하고 있었지만 험하고 멀었다. 방문을 열었다. 아이는 콧물, 눈물, 범벅이 된 채 지쳐 잠들어 있었다. 머리맡 밥그릇엔 누런 옥수수차에 침전된 희멀건 분유가 한가득 이었다. 주인아주머니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아이가 물 한 모금도 받아먹지 않았다고 했다.
아이를 이불 보자기에 싸안고 회사로 들어갔다. 이미 나의 이성은 반쯤이나 날아간 상태였다. 사무실 문을 열고 아이를 안은 채 직원들 사이를 지나 경리과장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 몇몇 직원들이 바라보고 있었지만, 주위의 눈치를 살피는 건 사치였다.
“봉급, 가불 좀 해주세요.”
느닷없는 모습과 뚱딴지같은 말에 경리과장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당직 근무를 했던 직원이 달려와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경리과장은 금고를 열었다. 구세주였다.
시외버스 안에서 엄마 젖을 찾아 보채는 아이를 달래며 나는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했다. 이 아이와 아내를 꼭 지켜내야 한다고.
아이를 아내 곁에 누이자 바로 젖을 물렸다. 아내와 아이가 안도하는 모습에 형광등 불빛이 물결처럼 일렁거렸다. 둘이 곤히 잠이 들자 일순 공허감이 밀려왔다.
안의 내가 밖의 나에게 술 한 잔을 대접하고 싶었다. 병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재래시장 골목 끝에 있는 중국집으로 갔다. 늦은 점심 겸 이른 저녁으로 볶음밥과 고량주 한 병을 주문했다. 밥이 나오기 전 고량주 한 잔을 목 안으로 부었다. 식도는 짜릿함으로 고량주의 이동 위치를 알려주었다. 두 끼를 굶은 빈속에 고량주 한 병이 들어가 만드는 작품은 가관이었다. 목이 화끈거리고, 심장은 벌렁거리며, 모든 것에 불가능은 없다고 여겨졌다. 술이 좋았다. 이 정도 시련쯤이야 하는 대담함이 고무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가물 가물거리는 정신을 붙잡으며 볶음밥을 두어 숟가락 우물거리다 불현듯 생각났다. 내가 없으면 안 되는 두 사람이 지금쯤 나를 찾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탁자를 짚고 일어섰다. 순간, 사방 벽이 거미줄처럼 빙빙 돌아가다 그만 쓰러졌다. 누군가가 부축해 주는데 힘입어 겨우 중국집을 나서다 필름이 끊어졌다.
머리가 아프고 심한 갈증에 눈을 떴다. 팔에 링거를 꽂고 아내 옆에 누워있었다. 밤중이었다. 병실 점검을 온 간호사가 말했다. 내가 병원 안으로 뿔뿔 기어들어 와 의식을 잃었다며 덧붙였다. 검사를 더 해봐야 하겠지만 심한 빈혈과 찰과상 등으로 며칠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가족 모두가 하루의 시차도 없이 연이어 병원 신세를 져야 한다는 말에, 뜬금없이 중국집을 나설 때 햇살이 눈이 부시도록 따뜻하다는 기억 한 점이 뇌리를 스쳤다.
잠시 후 문밖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렸다. 아내와 난 동시에 앗-, 하고는 몸도, 입도, 굳어 꼼짝할 수가 없었다. 방문 앞에 석고처럼 서 있는 키 큰 여인은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누운 채로 “장모님…,” 하고 부르자 그제야 여인은 퍼석 주저앉으며 울음 반 한마디를 내뱉었다.
“살아 있어 고맙다.”
그날 장모님은 전남 광양시 진월면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순천으로, 순천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서울에서 택시를 타고 강릉까지 종일 달려오면서 차멀미로 물 몇 모금으로 버티시고도 누워서 인사하는 자식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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