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사진 / 류영택
골목을 들어서는 아저씨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오늘도 한잔 하셨는가 보다.. 환경미화원 일을 하는 아저씨는 퇴근길에 맨 정신으로 오는 날이 별로 없다. 하루 종일 연탄재를 차위에 던져 올리고 넝마를 줍다 보면 목이 컬컬해 한 잔해야 하고, 굿은 일을 하는 만큼 남에게 안 좋은 소리라도 듣다보면 술 생각이 간절하다. 평소에는 말도 없고 남에게 싫은 짓 않는 사람이 이런 일 저런 일로 술만 한 잔 걸치면 부끄럼은커녕 동네가 떠나가도록 노래를 부른다. 한 번도 끝까지 부르지도, 들어보지도 못한 노래, 홍도야 우지마라. 아저씨의 애창곡이다.
대문을 붙들고 노래를 흥얼거리는 아저씨를 부축해서 집안으로 들어온다. 입에서는 막걸리 냄새가 풍겨오고, 옷에는 악취가 베어난다.
“문간방 류 씨, 방으로 들어가서 술 한잔합시다.”
털털한 웃음에 인정이 넘치는 말 한마디, 한집에 살아서가 아니라 첫인상만 봐도 마음이 끌리는 이웃집 아저씨 같은 그런 모습이다.
하지만 내 임무는 거기서 끝이다. 방문 앞에는 호랑이 눈을 한 아주머니가 턱하니 버티고 섰다. 잠시까지만 해도 기고만장 하던 아저씨도 아주머니 앞에서는 기가죽고 만다.
평소에도 그러했지만 요즘 들어 두 사람 사이는 찬바람이 쌩쌩 분다. 문제의 발단은 결혼식 사진이었다. 중학생 아들을 둔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지금까지 식을 올리지 못했다. 살면서 형편이 나아지면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도 가자. 남편의 그 말을 철썩 같이 믿었건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며칠 전 아주머니는 옥상에 널어둔 빨래를 걷으며 우리 것도 함께 걷어내려왔다.. 그냥 부뚜막에 놓아두고 가면 될 것을 방문 틈새로 밀어 넣었다. 살가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내민 아주머니는 방안을 휘익 둘러봤다. 빈 벽을 바라보며 분명 신혼부부라고 했는데 왜 결혼식사진이 없을까. 혹시 식도 안 올리고 사는 게 아니냐는 눈치였다. 해놓고 사는 게 창피스러워 방 안으로 들어오라는 말도 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던 아내는, 돈이 없어 커다란 사진을 찍지 못했다는 말 대신 작은 사진을 넣어두었던 결혼 앨범을 꺼냈다. 아주머니는 어린 아이처럼 방바닥에 팔을 짚으며 엉금엉금 몇 걸음 더 들어와 앨범을 펼쳤다. 면사포를 쓰고 수줍은 모습으로 내 어깨에 기대선 아내의 모습을 보며 신랑이 더 잘 생겼니, 신부가 숫기가 없어 보인다느니 한참 수다를 늘어놓다 돌아갔다.
아주머니는 일을 나갔던 아저씨가 돌아오자 팔자타령을 했다. 문간방 새댁을 봐라. 얼마나 당당하나, 물 한 그릇 떠 놓고 맞절을 하는 일이 있더라도 식을 올려야 어른행세를 하지. 당장이라도 면사포를 쓰고 싶다며 바가지를 긁었다.
오늘도 고개를 푹 숙이고 방 안으로 들어가는 아저씨를 보니 괜히 우리 부부 때문에 그런 것 같아 뒷머리가 땅겨왔다.
‘와장창’소리에 놀라 밖으로 나갔다. 마당에는 아가리를 쩍 벌린 그릇이 뒹굴고, 한 쪽 다리가 휙 돌아간 밥상이 뒤집혀 있었다. 보아하니 아주머니의 바가지가 심했던 것 같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지, 아픈 곳을 자꾸 찔러대니, 슬슬 부아가 치밀어 오른 아저씨가 밥 먹다 말고 밥상을 패대기친 것이다.
열어젖힌 방안에는 두 사람이 남북으로 돌아앉아 있었다. 내 신세가 왜 이래 됐는데, 아주머니는 치마 끝에 팽하며 코를 풀며 넋두리를 했다.
그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아내와 나는 졸지에 죄인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 집에 사는 다섯 가구 중 우리부부 말고는 결혼식을 올리고 사는 사람이 없었다. 갖가지 사연이야 있겠지만 그들 눈에는 아내와 내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이튿날, 일찍 퇴근한 아저씨는 부러진 상다리를 고치고 있었다. 흘깃 나를 바라보던 아저씨는 계면쩍게 웃으며 옆자리에 앉으라며 턱짓을 했다.
한동안 아무 말이 없던 아저씨는 주위를 살피며 내게 물었다. 식 올리는데 돈이 얼마나 드느냐는 것이다. 그러고는 이내 고개를 흔들며 나이 마흔에 무슨, 가당키나 하냐며 단념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팔을 걷어붙인 아주머니의 모양새를 보니 상다리 네 개가 다 부려져도 이번만은 그냥 못 넘어갈 것 같았다.
며칠 후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사진관에서 양복과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멋진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사진 찍은 기념으로 마당에 조촐한 술자리까지 마련했다.
그동안 얼마나 한이 맺혔던지 커다랗게 확대한 사진을 찾아오던 날 쾅, 쾅, 쾅, 시멘트벽에 못질 하는 소리가 온 집안에 울려 퍼졌다..
그날 이후 아주머니는 달라졌다. 평소와 달리 저 멀리 골목에서 아저씨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면 내가 문 열어줄 새도 없이 달려 나간다. 아내와 내가 손을 잡고 대문을 들어서는 모습처럼, 노래를 흥얼거리는 아저씨의 어깨를 부축하며 코맹맹이소리로, 당신 건강도 생각해야지 아양을 떤다.
'홍도야 우지 마라.'.' 아저씨는 노래를 부르다 말고 저만치 떨어진다.
“이기 무슨 짓이고, 누가 보마 어짤라꼬!”
"우리가 남인교, 사진관에서 사진 박은 정식 부분데."
아주머니는 밉지 않은 미소로 아저씨의 팔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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