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호細虎 / 김재희
무덤의 표지 석물인 망주석에는 묘한 형상의 조각물이 있다. 언뜻 다람쥐 같지만 특정 동물이 아니라 상상의 동물이란다. 그 형상이야 어떻든 명칭만은 분명히 세호細虎다. 가늘게 새긴 작은 범이라는 뜻.
봉분 좌우 망주석에 새겨진 세호의 머리 방향은 서로 반대이다. 한쪽은 위로 올라가는 방향이고 한쪽은 밑으로 내려오는 방향이다. 그 이유는 여러 설이 있는데 올라가는 세호는 영혼이 바깥세상으로 나들이 나오는 것이고 내려가는 세호는 다시 무덤으로 돌아가는 뜻이란다. 또는 망자 집안이나 나라의 기운이 너무 뻗치면 내려 눌러주고 너무 저조하면 높여주기 위한 상징이란다. 어떻든 세호는 액과 잡귀를 막거나 음양 조화의 장치물로 해석하면 큰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그저 무심히 보아왔던 망주석의 형상에 대한 의미가 요즘 들어 아주 크게 마음에 와닿는다.. 정말 망주석 세호 역할이 그런 것이라면 우리 역사 속에서 수없이 많은 인물들의 망주석 세호들은 지금 어떤 일들을 하고 있을까. 이리 뒤죽박죽인 세상을 멍하니 지켜보고만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리 저리 하자는 의견을 모아 실행하는 중일까.
가끔은 눈과 귀와 입이 거추장스러울 때가 있다. 보고 싶지 않고 듣고 싶지 않고 말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수없이 많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시간이 지나다 보면 새로운 일들에 묻혀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그저 역사의 한 점 획으로 남아 흔적만 남을 뿐이다. 그렇게 이어지는 역사 속에 어떤 식으로 남는 흔적일지는 모를 일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이 혼탁한 정세속인지정세 속인지 순탄한 정세 속인지는 후대에 가서야 알려질 일이니 지금의 나로서는 알 수 없다. 그렇다면 누구든 그 시대를 살아가는 본인의 마음가짐이 어떤지에 따라서 나름대로 혼탁과 순탄의 길이 가늠되지 않나 싶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에 덧붙여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생각이 씨가 된다.'는 말은 어떨까. 어떤 일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느냐 긍정적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운명과 집안의 안위와 나라의 흥망이 결정된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시끄럽다고 했던 지난해에도 나는 조용한 흐름을 보고 있었다. 그 많은 촛불 집회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은 집회로 끝을 냈다. 한숨 입김이면 꺼질 수 있는 촛불이 조용한 빛이면서도 거대한 빛이었음을 온 지구 사람들은 알고 있다. 이것을 어찌 혼탁이라는 말로만 대신할 수 있는가.
사드 보복으로 생기는 경제적 손실이 크다고 걱정들이다. 물론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안타까운 일이지만 한편으론 우리나라의 자연이 잠시 숨을 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우리나라 곳곳이 온통 중국말로 범벅이 되었다고 하고 중국인들이 사들인 땅으로 중국인 가게를 만들어서 중국인의 거리가 되어가고 있다는 말에 마음이 편치 않았었다. 그런데 요즘은 예전처럼 한가한 풍경을 볼 수 있고 그 자리를 우리나라 사람들이 발걸음 하고 있단다. 내 나라 풍경이 내 것으로 다시 돌아온 것 같아 얼마나 다행인가.
평창올림칙으로 인한 남북한의 교류도 희망적으로 변하고 있다. 북한의 움직임이 경제적 불균형으로 인한 다급한 처세인지, 아니면 미리부터 짜놓은 작전인지는 모르겠지만 갑작스러운 변화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그런 알 수 없는 일들 속에서 어렴풋이 느껴지는 것은 '통일'이라는 단어가 연상된다는 흐름이다. 어느 면에서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또 얼마의 기간이 지나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길이 보인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다. 그렇게 흘러갔으면 좋겠다. 물론 사람들의 생각이 다 같을 수는 없지만 긍정의 힘이 어떤 것인지를, 그 기운이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인지를 안다면 결코 소홀히 넘어갈 일이 아닌 듯하다. 문제는 그 힘을 어떻게 얻어내느냐이다. 잘나고 높은 사람들의 힘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어느 한 사람의 힘도 아닐 터이다. 아주 미세한 안개 입자가 모여 하나의 물방울이 되고 비가 되어 강물, 바닷물로 이어지듯 비록 아주 작은 존재일지라도 나부터 시작해서 무리 지어진 일일 것이다. 그 무리의 가장 기본적인 알갱이로 존재하고 싶다면 지혜로워야 할 일이다. 그 일이야말로 가장 우선적인 일이고 최소한의 일이면서도 최대의 가치를 발휘하는 기본이 되는 일이지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위한 세호 하나쯤 만들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죽고 나서 다른 사람의 손에 만들어지기보다는 살아생전 마음에 만들어 두고 스스로를 다스리도록 하면 좋을 듯싶다. 그래도 된다면, 나의 세호에게는 이런 부탁을 하고 싶다.
가장 낮은 곳에서 사는 사람들처럼, 정말 힘들고 어려운 경지를 겪어 본 사람들처럼 작은 일에도 감사할 줄 아는 그런 따뜻한 눈을 갖게 해달라고. 거대한 그림을 완성시키는 아주 작은 모자이크 한 조각만으로 살아도, 그 위치가 비록 그림자에 속하는 곳에 있을지라도 충분히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내가 스스로 내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표현하고자 하는 그림이 될 것이다. 그것이 나를 위하고 가정을 위하고 더불어 밝은 사회의 밑그림이 되는 원천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의 가장 기본적인 바탕은 긍정적인 힘이리라.
나와 나라의 세호(?)에게 그 힘을, 기운을 받아 내리고 올리는 일에 게을리 하지 말아 주기를 간곡히 염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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