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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인생 초보 / 이장희

인생 초보 / 이장희

 

 

면허를 따긴 땄는데.’라는 문구에 웃음이 났다. 어느 날 신호 대기 중에 내 눈에 들어온 초보운전 차에 붙인 패찰을 보는 순간 마치 내 삶의 고백인 듯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휙휙 스쳐가는 차량을 살피며 쩔쩔매던 초보시절이 엊그제 같다. 시동을 꺼트리는가 하면 야무지게 주차하려다 전봇대를 박은 적도 있다. 남의 차에 긁혀 보상받고 돌아서서 다른 차를 스쳐 물어줘야 했을 때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짐칸 문 닫는 소리를 승차한 후 문 닫는 걸로 오인하고 출발해 아내를 다치게 한 실수는 두고두고 원망을 들었다.

초보라는 이실직고는 정직한 자기고백이며 하소연이 아닐까. 서툴기 때문에 양해를 바라는 방어수단이며 혹은 타인에게 피해주더라도 절대 고의가 아님을 증명하는 일이다. 나 자신 남다른 인생초보의 길을 달려왔다.

가정형편이 기울어 열 살을 갓 넘기자 학교를 쉬어야했다. 소년가장 노릇하다 이태 후 6학년에 복학했을 때 머리 속은 텅 비어 있었다. 배운 건 다 까먹었으니 실력이 밑바닥 수준이라 성적순 좌석의 맨 끝 분단에 앉았다. 동생 또래들보다 덩치는 커도 주눅이 들어 고개가 연방 숙여졌다.

기초학력을 회복하는데 꽤 오래 걸렸지만 몇 달 후 똘똘한 아이들 옆에 앉았던 감격을 잊지 못한다. 틈틈이 만화책을 보고 그린 끼를 살려 중학교 미술반활동을 이어 간 것은 덤이자 도전이었다.

고졸 후 취직해 밥은 굶지 않겠다 싶을 때 군대영장이 나왔다. 훈련병 시절엔 어릴 때 배곯은 이력과 근시안이 고생을 부풀렸다. 누더기 훈련복에 뛰고 달리는 게 힘에 부대꼈다. 과녁을 향한 정조준이 빗나가기 일쑤라 쪼그려 앉은 자세로 산을 오르는 벌칙을 감내해야했다. 그것도 철모 위에 M1총을 거꾸로 세워 들고서였다. 혹시 꾸물대다가는 몽둥이세례가 이어졌다.

결혼을 하고 아내는 온 시내를 누벼 살 집을 찾아 헤맸고 살림을 일으키려 구멍가게도 했다. 아들 둘을 업고 걸리며 고생해 집을 사기도 짓기도 했지만 나는 살림에 문외한이라 거들기에도 초보였다. 하필이면 손 없는 날 이사한다하면 근무일이거나 출장, 연수와 맞물려 아내가 도맡았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마당에 텃밭을 가꾸거나, 빈터에 나무를 심어도 난 그저 선머슴처럼 시키는 일만 한 것 같다. 집을 지어도 어떤 구조로 설계할지 완공 후 무슨 가구를 들여 놓을지 아내의 안목을 따를 뿐이었다. 색깔이나 디자인을 어찌했으면 좋겠다는 조언이나 하면 다행이었다. 건물관리나 청소도 아내가 맡기면 거들긴 했지만 그것도 퇴직 전후 몇 년에 불과했다.

직장에서는 나름 중책을 맡았고 등급 높은 정부포상도 받았지만 퇴직 후의 생활 역시 완전 초보였다. 직장 일을 성실히 했던 만큼 가사 도우미 노릇이 쉬울 줄 알았다. 십년이 덧없이 흐른 지금까지 아내의 눈높이에서 보면 만년 초보를 벗어나지 못했으니 하나부터 열까지 제자리걸음 한 게 아닌가 싶다.

나이 들수록 눈귀가 어둡고 민첩하지 못하며, 잘 잊는 것 모두 노화현상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때그때 직면하는 위기마다 슬기롭게,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다. 소소하고 어쭙잖은 일에도 거듭 시행착오를 거쳐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공부 안하고 놀다 고생을 사서하는 내가 그 짝이었다.

전자제품만 해도 디지털시대에 대처해 잘 적응해왔다고 믿었다. 제때에 업데이트 했기에 컴퓨터나 내비게이션, 블랙박스도 친구처럼 편했다. 그런데 요즘 낯선 말썽들이 나를 괴롭힌다. 아들 집에선 안 되던 핸드폰 충전이 집에 오니 괜찮았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은행사이트에서도 인증서 비밀번호 외에 인증번호를 또 요구한다. 컴맹인지 확인이라도 하는 것처럼 긴장이 연속된다.

깨알 같은 제품설명서의 글씨, 첨단 작동 시스템에 미숙해 두 손 들 때가 있다. 급변하는 모바일시대에 대처하지 못한다면 젊은이 없이 어떻게 살아갈까 두려워진다.

지금 우리는 고령화 사회에 살고 있다. 요즘 주위의 친구들도 매사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 신세대에게 밀리고, 급변하는 환경과 낯선 문화제도에 물 흐르듯 흘러가지 못하는 것이다.

오늘 본 그 초보운전자는 처음 한동안 더듬거리고 서툴지만 차차 익숙해질 것이다. 그러니 나 자신도 제2인생 초보 등급에서 속히 벗어나야겠다. 아무리 과해도 후회하지 않는다는 공부도, 여행도, 봉사활동도 더 알차게 열심히 넓혀간다면 웃으며 인생 초보를 면할 때가 올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