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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5

[좋은수필]파종 / 손훈영

파종 / 손훈영

 

 

도타운 햇살이 땅 속 생명들을 깨우고 있다. 바야흐로 텃밭 걸음이 잦아질 때다. 허름한 바지에 긴 장화를 신고 끈 달린 밀짚모자를 쓴 남편은 제법 농사꾼 티가 난다. 손에는 호미 한 자루 밖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텃밭지기 남편의 어엿한 조수, 제일 중요한 씨앗 봉지를 주머니에 넣고 뒤를 따른다.

산을 끼고 있는 아파트라 뒷문만 열고 나가면 바로 등산로 입구다. 그 어름에 작지만 윤기 나는 우리의 텃밭이 있다. 오른쪽 골에는 상추씨를 뿌리기로 한다. 왼쪽 골에는 쑥갓을 위쪽으로는 부추를 뿌리면 맞춤 맞을 것 같다. 적당한 간격으로 씨를 흘려 넣는다. 텃밭 가꾸기는 딱히 수확을 내야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순전히 뿌리고 가꾸는 재미다. 조금씩 솎아 먹는 즐거움도 제법이지만 막 올라오는 새순들의 풋풋함은 그 자체가 하나의 경전이다.

달랑 딸 하나 키우고 사는 우리 부부를 보고 사람들은 종종 왜 하나만 낳았느냐고 묻곤 했다. 시집 쪽 어른들은 고추밭에 터 팔아라라는 말로 딸아이를 압박하기도 했고 남편이 외동아들이라는 것을 들먹이며 대를 끊어 놓으면 조상 볼 면목 없지 않겠느냐며 점잖게 회유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겉으로는 애매하게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결코 낳지 않겠다는 생각을 더 확고히 했다.

대 잇기는 얼마나 막연한 말이었던가. 실감으로 와닿지 않는 남의 일일 뿐이었다. 내 코가 석자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발등에 불이 떨어지는데 아들 타령이 다 무엇인가. 아들을 낳아 대를 잇는다는 관습은 나에게는 실로 한가한 무엇이었다. 조상은 멀고 팍팍한 일상은 너무 가까웠다. 아들을 생각하기에는 이미 자식이 너무 많았다. 나에게 의존하고 있는 병든 친정식구들이 내가 돌봐야 할 나의 아들딸들이었다. 신경증을 앓고 있는 동생과 그 여파로 생의 의욕을 잃고 시들 거리는 부모가 다 내 몫이었다.

남편은 유난히 아이를 좋아했다. 입버릇처럼 세 명 이상은 낳아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남편의 말에 동의하기에는 이미 등에 진 짐이 너무 무거웠다. 돌 하나만 더 던지면 울컥 넘쳐 날 것 같은, 불안과 피해의식으로 가득 찬 시커먼 웅덩이가 바로 나였다. 절대로 더 낳을 수가 없었다. 젊은 시절 아이 문제는 남편과 나 사이의 유일한 불협화음이요 줄다리기였다. 다른 밭에는 얼씬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무슨 불문율처럼 만들어 놓고 자신의 밭에는 더 이상 씨를 뿌리지 못하게 한 것은 명백히 반칙이었다.

씨와 밭으로 어우러지는 남녀 간의 이치가 새삼 오묘하다. 씨는 생명체의 시발점이다. 하나의 생명은 씨로부터 출발한다. 아무리 밭이 좋아도 씨를 뿌리지 않으면 밭은 그냥 밭 일 뿐이다. 또한 아무리 씨가 튼실해도 밭이 없으면 장한 생명이 되지 못한다. 기름진 밭에 될성부른 씨앗이 뿌려질 때 최상의 생명체를 약속받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별 신통찮은 밭이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남들이 탐낼만한 기름진 토질도 아니었고 절로 씨눈이 터지는 햇살 좋은 밭도 아니었다. 옆으로 흐르는 작은 개울 하나 없어 그저 무심한 하늘만 바라봐야하는 막막한 천수답이었다. 주변에서 감아드는 칡넝쿨로 인해 숨조차 쉴 수 없는 밭이었다. 사방으로 드리워진 짙은 그늘은 그 어떤 강한 종자라도 깊이 뿌리 내릴 수 없게 했고 밭머리 위를 맴도는 역한 공기는 억센 잡초조차 자라지 못하게 했다. 물기 없이 파삭한 쓸모없는 박토였다.

부실하기만 했던 밭에 암이라는 희대의 태풍이 들이닥쳤다. 밭은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태풍의 힘은 강력했다. 물기 없는 박토에 군데군데 웅덩이를 만들어주고 칭칭 감겨 있던 칡넝쿨도 단숨에 싹둑 쳐내주었다. 숨조차 쉴 수 없던 탁한 공기를 밀어내고 산소 가득한 푸른 공기를 불어넣어주었다. 어찌할 수 없던 병든 뿌리를 단숨에 훑어내고 생명의 순수한 원형질로 환원시켜 주었다..

악몽에서 깨어나 문득 내게 남은 시간들을 헤아려본다. 척박한 밭으로서의 미안함을 만회할 시간이 얼마쯤 남아 있는지 계산해 본다.. 헤아려 볼 겨를조차 없었던 남편의 꿈을 생각해 본다.. 싹조차 틔워보지 못한 미완의 꿈들을 되새겨본다. 한 여자와 연이 맺어지는 그날부터 생을 향해 뿌리고 싶었던 그의 씨앗들을 떠올려본다.

비단 자식만 이었을까. 누구보다 다감한 성격의 그가 가졌던 생의 목록들이 엔딩 크리딧처럼 올라간다. 그 많은 꿈의 씨앗들을 뿌리기에는 가진 땅이 너무 좁고 팍팍했다. 박토와 함께 하는 그의 나날들은 이따금 쓸쓸했을 것이고 때때로 버거웠을 것이다. 못내 포기한 것이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 그의 꿈에게 미안하다.

남편에게 아직 뿌리 내리고 싶은 꿈이 있다면 최상의 밭이 되어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마음 밭부터 정비해야 한다. 아직도 와그락거리는 돌부터 골라내야 한다. 돌을 골라내기 위해서는 단단하게 엉켜있는 흙을 부드럽게 부수어내야겠다. 우선적으로 혼돈과 지연이라는 푸석한 돌을 잘게 바수어 고운 흙으로 만들어야 한다. 아집이라는 돌과 인정욕구라는 돌, 얼토당토않은 오만이라는 돌을 가차 없이 골라내야 한다. 의무감이라는 녹슨 돌도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 막연한 두려움이라는 무거운 돌도 힘껏 던져버려야 한다.

검고 푸르게 빛나는 알토란 같은 밭이 되고 싶다. 가지런히 돋우어진 마음 밭에 씨 뿌릴 준비를 한다. 열정이라는 녹비를 넣고 애정이라는 목초액을 뿌린다. 지혜라는 생명수를 한 동이 준비하고 지구력이라는 호미도 닦아놓는다.

꿈 하나 뿌려본다. 지금껏 한 번도 뿌려 보지 못했던 꿈의 씨앗을 정성스레 뿌려본다. 꿈을 파종하기에 늦은 시간이란 없다.